내년 5월 9~12일 베를린에서는 독일에서 가장 성대한 만화축제인 코믹인베이전베를린(ComicInvasionBERLIN, CIB)가 열린다. 특히 2026년은 한국이 주빈국으로 선정되었고, 그 프로그램인 ‘틀을 벗어나 : 만화, 베를린에 가다’의 일환으로 한국을 소개하는 간단한 영상이 제작되고 있다. 위클리툰은 그 영상 제작을 지원하면서 그 속에 담긴, 영상으로 풀어내지 못한 작가와 공간과 시간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소개해보고자 한다.
두 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이자 첫 번째로 소개하는 작가는 유승하 만화가이다. <십시일反>, <사이시옷> 만화를 함께 만들었고, 최근에는 <내 마음 하나 잊지 말자는 것이다 : 만화로 읽는 나혜석> 만화책을 출판하였다.
성남 사기막골의 유 작가의 작업실은 깔끔하다. 여러 프로젝트의 협업 만화를 진행한 경험 때문인지, 남편이자 만화가인 최호철 작가와 함께 작업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연습장과 작품들 그리고 다양한 그림들을 배경으로 만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첫 번째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하였다.
다른 작가들은 되게 비슷할 것 같아요. 어릴 적에 만화를 좋아하다 보니까 그냥 무조건 따라 그리는 게 아주 자연스러웠어요. 딱 그때 소년중앙 시절이었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잡지가) 오면 열심히 읽고 넘기고, 거기에 소년만화부터 스포츠 만화, SF, 순정 만화도 즐겨서 봤었어요.
그리고 당시 신문만화 《고바우》(같은) 시사만화를 너무 좋아했었고…신문 만화는 굉장히 기억에 많이 남더라고요. 역사적인 사건이랑 연결이 되니까.
(나중에는) 미대 가려고 열심히 그린… 지금처럼은 아니고 이제 저희는 입시 미술이라고 하는 게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했고, 저는 조금 늦었어요. 다른 친구들 비해서 그냥 자연스럽게 집에서 그냥 혼자 그린…. (그런데) 미대를 막상 들어가서는 우리가 원하는 미대의 모습하고는 조금 다른. 개인의 어떤 전시 그리고 또 자기의 존재와 물적인, 철학적인 부분에서 우리가 그림을 좋아했던 거랑은 많이 다른…. 내가 생각하는 이런 게 아니다 하고 있을 때에 마침 만화나 일러스트에 자연스럽게 … 졸업하고서 좀 다른 길을 가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고, (지금은) 만화를 선택하면서 정말 잘했다. 처음부터 만화가로 갔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지만, 그 못지않게 굉장히 다른 경험들을 쌓아서 좋았던 것 같아요.
모든 만화가에게는 인생만화라는 게 있지 않았을까? 만화가 좋아서 정신없이 보고, 또 그 그림을 따라 그리면서 점차 만화가로 성장했던 경험들이 모두에게 있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유승하 작가에게는 어떤 작품이 기억에 남아 있을까?
너무 너무 다 좋아해서. 뭐 엄마 좋아 나 좋아 이런 거지만. 그래도 사춘기 때 <캔디 캔디>와 <올훼스(오르페우스)의 창>과 <베르사유의 장미> 3인방이 딱 들어오셨는데. 외웠죠 뭐 저희는 그때. 교과서 안에다가 딱 만화책 펼쳐 놓고, 귀퉁이에 그림 그리고 그러면서 계속 움직이게 하고 …. <캔디 캔디>를 성인이 돼서 다시 읽어보니까 너무 많은 영향을 미쳤구나. 어린 애가 걱정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유승하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그려내고 싶었던 것일까? 작가로서 본인을 성장시켰던, 작품을 그릴 때 가장 우러나오는 그런 결 같은 게 있었을까?
저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에요). 어떤 것에 내가 집중을 하고 그리고 있는지를 생각을 해봤는데, 어릴 적 만화들 중에서도 사람들의 어떤 감정 표정 그리고 관계와 거기에 얽힌 갈등 이런 것에 관심이 굉장히 많았던 것 같아요.
대학 들어가서 리얼리즘 만화 이런 거 보면서 막 펑펑 울기도 하고 했는데, 전문적인 용어는 모르겠고 신파 <엄마 없는 하늘 아래>, <미워도 다시 한 번> 이런 거(처럼) 어딘가 내재돼 있는 그런 것에 대해, 슬픈 만화 결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사람들의 슬픈 감정 그리고 또 갈등, 결핍 이런 것에 관심을 두다 보니까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좀 세련되게 전달을 해 볼까. 얘기하지 않으면서 얘기를 전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또 ‘나’라는 독자와 이 주인공의 사이에 있는 뇌가 그것을 어떤 식으로 조절을 할 것인가를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해요.
그때그때 사실 다르죠.
유승하 작가의 작품들은 공동작업이 많다. 어쩌면 작가의 특징이기도 하고, 인간으로서의 단면이 드러나는 지점이 아닐까? 당연히 묻게 된다. 어떻게 공동작업을 하게 되었는지?
저희가 인권 만화를 총 3권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거기에 제가 다 포함돼 있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87년 대통령 직선제로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치적으로는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사회 요소요소에 공기처럼, 너무나 습관, 인습, 관습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차별과 혐오 이런 것들이 많았어요.
국가인권위가 생기면서 ‘인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사람들한테 다가가 보자. 인권이 너무 딱딱하게 느껴지고 법률, 법문화된 그 문안만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것 가지고 부족하다. 사람들한테 이 사이사이에, 어떻게 하면 이걸 좀 재미있게 만들어 볼까 하다가 만화라는 매체가 참 적당하다고 얘기가 나왔어요.
그랬는데 학교 선생님들하고 학생들 사이에서 이게 급속도로 퍼져 나가면서. ‘이 책은 절대 재판 못 찍을 거야!’ 하면서 그렸는데 상상 의외로 사랑을 많이 받아서 자연스럽게 10대 학생들을 위한 두 번째 인권 이야기를 해보자. (그렇게) 두 번째 권이 아주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제가 왜 이 협업을 좋아할까를 바로 작년에 고민을 해봤어요. ‘나는 왜 협업을 좋아할까?’ 그러다가 얼마 전에 우연히, 굉장히 우연히 라이오넬 리치랑 마이클 잭슨이 ‘위아더월드 We are the world’를 85년도에 만들게 된 과정을 그린 그 영화(다큐멘터리)를 봤어요.
라이오넬 리치, 사실 무슨 노래 부르지 이 정도 약간의 존재감이었는데, 영화 보는 내내 너무너무 재밌었던 거예요. 제가 라이오넬 리치의 마음을 너무 잘 알겠고, 사람들이 모여서 할 때 그 기쁨이 굉장히 충만해졌어요.
저는 오히려 혼자 책을 내서 홍보하러 다니는 게 너무 부끄러운 데, 우리가 이런 책을 만들었어요 할 때는 굉장히 열심히 홍보하고 얘기하고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저 라이오넬 리치랑 나랑 뭔가 비슷할 거야. MBTI는 모르지만 뭔가 나는 저런 작가가 되고 싶었어. 그래서 막 중간에 신디 로퍼의 그 장면 보면서 ‘아, 내가 협업을 좋아하는 건 바로 저거였어.’
그러니까 뭔가 막 운전대를 잡고 강한 생각으로 나의 주제를 말하는 것보다는 그냥 우리 이렇게 해서 이런 걸 한번 해볼까 그럴 때가 무한한 에너지가 많이 (생기는.)
세상은 참으로 많이 달라졌다. <캔디 캔디>나 ‘위아더월드’ 그리고 출판만화에 관한 이야기는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로 시간도, 세상의 변화도 놀라울 정도가 되었다. 흔히 격세지감을 말하지만 여전히 유승하 작가는 출판만화를 그리고 있다. 요즘 웹툰시대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제가 만화 한다고 그랬을 때 느낌이 어땠었냐면 집에다 ‘가수 할래요!’, 그러면 기타 부셔버렸다는 그런 집안 얘기들 많잖아요. 그 반발감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서 가수가 되기도 하고….
저희는 어머니 아버지가 다 자유로우신 분들이었지만, ‘만화할래요’ 했을 때 그 죄송스러움은 정말. 대학까지 보내주셨는데 ‘니가 왜?’ 그런 마음이.
(그런데) 요즘은 뭐 완전히 반대가 돼서 만화가라고 그러면 다들 너무 좋아해 주시는 거예요. 저도 제 직업을 얘기할 때 너무 행복하고. 무엇보다 만화가 잘 되니까 뭐 굉장히 업계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좋죠. 기분 좋은 일이죠.
이제 걱정은 완전히 주류 문화가 되면서 양적인 질적인 확대에 따른 그 책임감 어떻게 하려고? 우리가 골방에서 막 휘득휘득하면서 좋아하던 예술이 이렇게 대표적인 예술로, 주류 예술로 갔을 때 어떤 책임감, 책임감이 맞겠네요. 그것이 만화가 잘 해나갈 수 있을까 그런 오지랖 걱정도 되고요.
오지랖이 아니라 당연히 먼저 생각해야 할 과제가 아니었을까? 만화는 항상 시대의 언어이고, 상상과 풍자로 세상을 노니는 예술이었으니까. 유승하 작가의 너무도 당연한 대답이 어쩌면 우리가 상업화, 산업적인 생태계를 먼저 고민하면서 이런 고민을 조금 사치스럽게 만들어버린 게 아닌지 문득 생각해보게 된다.
그럼 이런 변화, 문화적이고 산업적인 변화 그리고 기술적인 변화를 유승하 작가는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있을까?
제일 어려운 시험 문제더라고요. 저는 출판 만화를 시작했었고, 출판은 시작할 당시에도 약간 영세업이라고 생각을 했던. 그래서 시대가 바뀌면서 매체가 막 확산 변화하면서 업종을 좀 바꾸고 웹툰을 해보라는 충고를 많이 들어요.
(하지만) 출판이라는 장르는 굉장히 나의 몸에 딱 맞는, 아주 적당한 그런 매체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게다가) 서양 산업이 되더라도 안 하고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충고는 고맙죠. 저희가 회화 쪽에서 왔기 때문에 또 저는 일러스트를 조금 병행을 했기 때문에 출판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남다르고요. 뭔가 이렇게 만화라고 했을 때 너무 인생 같은 거예요.
다음 장을 넘겼을 때 알 수 없는 이 두근거림, 불안함, 넘겼을 때 확 펼쳐지는…. 내 인생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과제가 던져졌을 때 내가 막 이걸 해치고 나가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아요. 그리고 어쨌든 한 권이 다 끝나면 내 인생도 이제 마감이 되는 그 느낌이 되게 좋아요.
(만화책을) 그렸을 때 나의 이 행복감과 충족감 이거는 어떻게 채워줄 것인지 잘 모르겠고, 제가 회화 쪽에서 왔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이렇게 넘나들 수 있는 그 한계, 나의 가능성은 출판에서 아직 펼치지 못한 게 너무 많다, 해보고 싶은 게 많아요. 조금 더 제대로 된 그래픽 업을 하고 싶고. 늘 우리는 이렇게 쪼개서, 쪼개서 하다 보니까 과연 내가 나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정말 몇 년 동안 애써서 (대표작이) 그게 있을까?
그럴 때는 아직, 아직 조금 더 … 이런 생각이 많이 들죠.
또다시 젊은 친구들이 다시 출판을 이렇게 반겨하는 것을 보고 굉장히 놀랐어요. “뭐지? 우리 이제 다 물러날 준비하면서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아, 어떤 면에 있어서는 이게 진입 장벽이 좀 낮구나. 자기가 그림 그리고 글 쓰고 해서 바로바로 책을 낼 수 있는 거기까지가 굉장히 또 다른 매력이 있는 매체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두 번째 인터뷰기사가 이어집니다.]
유승하 만화가는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졸업했으며, 1994년 신한새싹만화상 대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엄마 냄새 참 좋다>, <날마다 도서관을 상상해>, <1987 그날>을 펴냈고, <십시일反> ,<사이시옷>, <어깨동무>, <섬과 섬을 잇다>, <내가 살던 용산>, <떠날 수 없는 사람들> 등에 참여했다. 2010년 부천 교양만화상을 수상했으며, <내 마음 하나 잊지 말자는 것이다 : 만화로 읽는 나혜석> 만화를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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