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유승하 작가는 ‘인형이 되기를 거부한 영원한 신여성, 나혜석’에 관한 한 권의 만화책을 출판하였다. 책 소개를 좀 보자.
유 작가의 관심은 항상 사람에 관한 것인 듯하고, 사람들의 감정과 함께 하는 작업 등에 매혹되는 이유인 듯하다. 그래서 ‘나혜석’의 이야기에 바로 작가 본인의 모습이 담겨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 이유이다.
2005년도에 윤범모 선생님이 <화가 나혜석>이란 책을 냈어요. 그때는 (제가) 여섯 살, 두 살 애들을 업고 안고 (살림도 서투른데) 작업하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힘들었던 시기였어요. (그런데) 그 책은 여태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나혜석을 완전히 반전시켜 놓았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었던 나혜석은 ‘센 여자’, ‘이혼해서 나쁜 엄마’, ‘불행한 말년’. 나에서는 콤플렉스(처럼),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면서 약간 모범적으로 자꾸 해보려고 하는 그런 게 있었어요. 이 책을 보는 순간 나혜석은 정말 솔직하게 그 시대를 잘 돌파한 사람이고, 용감하고 용기 있는 삶을 살았고, 또 이혼하고 나서 결코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니라 자기 길을 계속 포기하지 않은, 죽음도 자기 선택에 의한 것….
너무 우리가 단편적으로만 이해를 했고, 사람들이 이렇게 알고 있는 것으로만 계속 구전돼서 남아 있었구나. 좀 미안했던 거죠. 이 삶도 너무 괜찮은 삶이었어. 저희 할머니 정도 나이의 여성들이었을 거예요.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여성의 삶을 살았을 텐데, 그렇다면 어머니는 단지 이혼하지 않은 나혜석이었을 뿐 … (그러다보니) 만화를 꼭 그리고 싶었어요.
이 주제를 가지고 처음 13년도에 만화를 그렸고, 두 번째는 내가 나혜석의 나이만큼 됐을 때 비로소 그 죽음이 정말 얼마나 우리가 생각하고 성찰할 게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조금 더 깊게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18년도 이후에 나혜석에 대한 책과 자료들이 많이 나왔거든요. 너무 아쉽다. 나혜석은 저거 말고 더 얘기할 부분들이 많은데. 최초의, 최초의, 여러 가지 우리나라의 최초였는데, 정말 이 만화가 이렇게 환대받는 시대에 최초의 여성 만화가로서도 꼭 그리고 싶다.
그래서 다시 도전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나니까 ‘또 그리고 싶지 않을까? 더 장편으로?’ 뭐 이런 생각도 좀 들기는 해요. 이번에 만화하면서도 많이, 한 30회 정도를 걸러냈거든요. ‘내가 나혜석이라면…?’ 이러한 마음으로 계속 관통해 나왔던 것 같고요.
어머니의 삶이 무엇보다 나혜석이랑 많이 비슷했어요. ‘법률’하던 남편 그 다음 ‘예술’하시는 나 부인 … 그 소통되지 않는, 행복하지만 어딘가에 채워지지 않는 나에서의 갈증이라든가. 나중에 파킨슨병으로 고생했었을 때 그 절망감 … 이런 것들 저런 것들이 저한테는 어머니와 여성 만화가에 대한 헌사와 같은 작업이었다고.
어머니가 되고 나서, 어머니의 삶을 돌아보고 그 모습과 기억에 나혜석의 일생을 투영함으로써 지금의 나를, 내 마음과 생각 속의 편견을 돌아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너무 개인적이고, 일상적이기에 더욱 생생하고, 진한 이미지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럼 유승하 작가는 어떤 이야기로, 누구를 만나고 싶은 것일까?
자잘 자잘하게 새싹이 돋듯이 자라나고, 이게 한 번에 확 뿌리를 깊게 내리고 키워지는 것처럼 그 이야기와 내가 또 만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살면서 이 이야기는 꼭 내가 해야 돼. 그리고 내가 저거 잘할 수 있어. 내가 저런 만화, 왜 우리나라에 저런 만화가 없을까 했을 때 만나는 지점 그런 게 있는데….
지금은 단편으로 ‘강주룡’ 만화를 만들고 있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 농성했던 여성 노동자 ‘강주룡’을 30페이지짜리 단편으로 하고 있고, 또 하나는 제가 <1987 그날>이라고 87년 610항쟁을 그린 적이 있는데, 그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잖아요.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그래서 그 이후의 이야기들에 대한 만화를 그리자는 얘기들이 조금씩 있었는데, 누가 제일 잘할까를 계속 찾다가 얼마 전에 내가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하하!
역사 속 풍경과 사람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 이야기를 계속 그리고, 엮고 있는 유승하 작가이다. 유 작가가 계속 그리게 만드는 만화는, 영화나 애니메이션, 소설과 같은 문학 등 같은 서사를 중심으로 하는 다른 예술과 다른 독특함이 있을까?
작가와 독자가 1 대 1로 되게 직접적이고 강하게 만나는 매체 같아요. 거기서 독자가 누릴 수 있는 그 능동성이라는 게 영화랑 다르다?!
영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독자가 같이 흐름을 타고 간다면, 만화는 독자가 능동적으로 내가 읽고 싶은 부분을 더 많이 읽고…. 저는 되게 결론이 궁금해요. 그래서 매번 못 기다려서 (결론을) 조금 본 다음에 ‘아! 이제 됐어.’ 하면서 (그때부터 다시 앞부분부터) 천천히 보거든요. 또 보다가 앞부분에서 어떻게 됐지 하고 다시 넘어가는 식이 제가 보는 방식이에요. 그러면 소설이나 문학하고 또 뭐가 다를까? 소설은 재미있으면 막 빨리 빨리 빨리 읽게 되잖아요. 근데 만화는 그 칸과 칸 사이를 이렇게 왔다 갔다 입체적으로, 내 눈이 어디 가 있는지도 모르게. 그리고 또 좋아하는 장면에서, 좋아하는 그 문장 어느 부분에서 멈춰서 계속 보고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그게 만화를 읽는 기쁨이라고, 만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유승하 작가가 처음 만화를 시작할 때와 많이 다른 시대이기는 하다. 유승하 작가는 이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혹시 그들(예비 작가나 독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
만화가 좋아서 시작을 했고, 만화로 생활을 하고 있는 작가인 제가 만화를 하면서 또 하나 인생에 다른 의미를 깨달은 게 있어요. 굉장히 어렵고 힘든 일들이 있었을 때 제가 그것을 만화로 그려냈을 때 너무나 위안을 받고 좋았던 기억들이 있었어요. 회화 같은 경우는 조금 추상성이 강하니까 그게 안 되는데, 만화는 말과 그림이 입체적으로 막 연동이 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자유롭게 넘나들기 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
정말 내가 이 어려운 일을 겪었고, 지금 당장 너무 슬프고 막 무덤 속에 있지만 이게 만화로 풀어졌을 때는 회복이 가능하고, 또 하나 만화에 있는 그 유머, 재미… 이것 때문에 나의 어두웠던 어려움이 승화될 수 있는 그런 좋은 장점이 있는 매력적인 매체라고 생각하게 돼요.
어릴 적 어두웠던 기억이라든지 갈등이나 주변의 어려움 뭐든지 만화로 다 풀어낼 수 있기에 만화 치료가 최고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또 못 그렸든 잘 그렸든 그것은 자기만의 매력에서, 또 자기만의 언어로서 가능하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가능한 멋진 매체 재미난 직업이 만화의 세계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만화라고하면 어느 순간 웹툰을 지칭하는 것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유승하 작가는 여전히 출판만화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 차이와 변화는 아마 만화가에게 새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제가 웹툰을 너무 좋아하는 친구들한테, 젊은이들한테 “왜 이렇게 좋아하니?” 그랬더니 바로바로 작가랑 소통을 할 수 있다고 답하는 거예요. ‘아~소통! 나 너무나 좋아하는데, 난 바로바로 댓글 달고 그거 너무 좋아하는데.’ 그래서 내가 해봐야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이 드는데, 아쉬운 점이라기보다는 내가 자족적으로 지금 출판만화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만약에 부양가족이 많고 더 많은 그러니까 벌이를 생각해서 웹툰을 해야 되지 않을까 이런 아쉬운 점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에 ‘강주룡’ (작품)도 일단 웹툰으로 시작을 하고 출판을 나중에 하기로 했어요.
다만 유승하 작가는 출판만화 그리고 연필로 그리는 그림의 손맛을 잊지 못한다. 인터뷰가 끝나고, 유 작가는 나혜석 만화와 이전 작업을 둘러보면서, 바스락 거리며 그림을 넘기고, 배열표와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정리한 작업물을 사랑스럽게 보여주었다. 그때 그 그림들을 짚으며 설명하면서 애정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는 작가의 모습에서 출판만화와 손그림이 이어지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요즘은) 거의 다 처음부터 끝까지 디지털로 작업해요. 만화가 이제 작업이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어시스트를 쓸 것 아니면 컴퓨터가 해주는 게 (편하죠). 이제 양이 많아지면서 이러한 시간과 스캔을 받아서 색칠한다는 그게 부담이 되는 건데, ‘아 정말 여유 있게 작업을 한 장 한 장 이렇게 한 번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
이번에 하고 싶은 만화전에 갔더니 옛날 만화 선을 그렸던 거를 더 이렇게 애틋해하고 봐주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나 손으로 잘할 수 있는데…’ 손으로 했을 때 그 쾌감! 맞아요. 짜릿함은 손맛이라고 그러죠. 그게 또 그립죠. 연필에 필요한 값을 컴퓨터가 한 1에서 10까지 낼 수 있다면 연필은 더 다양하게 자기 느낌을 내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리는 순간순간 컴퓨터가 쓱쓱 지나가고, 자동차로 지나가는 거라면 연필은 걸어가면서 느낄 수 있는 풍경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연필로 했을 때 이 풍성함도 물론 있지만 그리는 작가도 그 감정과 대사에 더 몰입을 하게 되죠. 연필로 해서 채색을 하는 게 가장 편안하고 기쁘다고 해야 될까요?
사각거리는 그 느낌, 소리.
아주 어렸을 때 제일 처음 잡았던 게 연필이고, 계속 평생 친구로 지내왔기 때문에 연필을 깎는 과정도 이 느낌이 나무를 깎는 작은 기분 좋은 쾌감이 있고 그 향도.
아이가 울고 있는 장면을 그렸을 때도 이 컴퓨터를 그렸을 때는 이렇게 그냥 쓱쓱 쓱쓱 우는 표정, 집중, 전달, 끝! 이렇게 됐을 텐데, 이때는 어떻게 올까 얼마큼 더 눈을 부풀릴까 외로운 자세에 대한 어떤 느낌들. 그리는 순간순간 더 몰입을 하게 되는.
마지막으로 유승하 작가는 자기 작품에 대한 생각, 거기에 담고 싶은 이야기를 하나의 단어로 표현해주었다.
우리가, 내가 왜 갈등을 좋아하고 자꾸 이걸 그리고 싶어 할까에 이런 운명도 있을 것 같다. 계속 이렇게 평화라든지 평등, 공존 …. 여기에 막 관심이 가니까.
근데 정말 혼자 자문하면서 도대체 내가 원하는 그 ‘모토’는 뭘까? 나는 그냥 ‘싸우지 마!’ 네 글자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러고 보니까 평등, 평화, 이렇게 굉장히 원했던 것 같다.
길지 않은 시간, 참으로 많이 이야기가 오간 듯하다. 한국의 현재, 만화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한국에서 여성으로서의 삶, 그리고 연필이 사각거리며 그려낸 작가의 그림까지. 그건 따뜻함이자, 우리의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독일을 비롯해 세계의 만화계에 “우리 작가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이런 방식으로 민화를 만들고 있어요!” 라고 크게 말할 수 있을 듯하고, 더불어 곧 세상에 나올 ‘강주룡’ 만화를 기대해본다.
유승하 만화가는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졸업했으며, 1994년 신한새싹만화상 대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엄마 냄새 참 좋다>, <날마다 도서관을 상상해>, <1987 그날>을 펴냈고, <십시일反> ,<사이시옷>, <어깨동무>, <섬과 섬을 잇다>, <내가 살던 용산>, <떠날 수 없는 사람들> 등에 참여했다. 2010년 부천 교양만화상을 수상했으며, <내 마음 하나 잊지 말자는 것이다 : 만화로 읽는 나혜석> 만화를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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