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언어학을 가르치며 단어를 연구하던 영화 ‘스틸 앨리스(Still Alice)’의 주인공은 50세 생일 즈음, 자주 쓰던 말이 생각나지 않아 강의 도중 멈칫합니다. 요리법도 기억나지 않아 인터넷을 뒤적이던 끝에 받은 진단은 ‘초로기 알츠하이머병’. 젊은 나이에 찾아온 치매였습니다.
65세 이전에 생긴 치매를 ‘초로기(初老期) 치매’라고 부릅니다. 전체 치매 환자 10명 중 1명은 65세 미만인데 전문가들은 실제로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증상이 미묘해 갱년기나 단순 피로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초로기 치매의 증상은 다양합니다. 기억력은 멀쩡하지만 성격이 돌변하거나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고, 언어 표현이 서툴어집니다. 예를 들어 평소 차분하던 사람이 갑자기 욱하거나 대화 중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식입니다.
이런 건 뇌의 ‘전두엽(감정·판단)’과 ‘측두엽(언어)’이 손상되면서 생기는 변화입니다. 가족력이나 유전적 요인(APP, PSEN1, PSEN2 유전자 등)이 있는 경우 40~50대부터 발병할 수 있습니다.
생활습관도 큰 영향을 줍니다. 과음과 흡연, 운동 부족, 고칼로리 식습관, 비만과 고혈압 등 혈관 질환들이 뇌혈관을 손상시켜 ‘혈관성 치매’의 씨앗이 됩니다.
술은 전두엽을 가장 먼저 손상시키는 독성 물질이에요. 음주 후 성격이 변하거나 공격적이 되는 사람은 ‘알코올성 치매’ 초기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초로기 치매는 진행 속도가 빠릅니다. 신경학적 검사, 뇌 MRI, 혈액검사 등을 통해 원인을 구분해야 합니다. 갑상샘 질환, 비타민 결핍, 약물 부작용, 우울증 같은 다른 원인도 감별해야 합니다.
유전적 요인이나 뇌혈관 위험인자(고혈압, 당뇨, 고지혈증)가 있다면 “나는 아직 젊으니까 괜찮겠지”가 아니라 ‘지금부터 관리해야 한다’가 정답입니다.
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기본 원칙은 ▶혈압·혈당·콜레스테롤을 정기적으로 점검 ▶술·담배 줄이기 ▶규칙적인 운동과 수면 ▶지중해식 식단 등 균형 잡힌 식사 ▶독서·악기·외국어처럼 뇌를 자극하는 취미입니다.
초로기 치매는 일·가정·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조금씩 사라지는 병입니다.주변의 관심과 이해, 조기 발견이 어떤 약보다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