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최근 지인으로부터 필적과 관련한 책을 빌려 읽고 있다. 구본진씨가 쓴 <글씨로 본 항일과 친일 – 필적은 말한다.>이다. 필자는 이 책이 범죄수사를 할 때, 필적을 비교하여 글의 주인을 찾는 방법과 관련 에피소드들이 담긴 책인 줄 알았으나, 몇 장 넘겨 보니 이 책은 필적으로 사람의 성격을 분석할 수 있다는 주장이 담긴 책이었다. 몇 페이지가 넘기다 보니 생각이 사람 보는 방법으로 이어졌다.
얘기가 좀 장황해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무릅쓰고 생각을 펼쳐보면, 필자는 사주팔자나 점도 별로 믿지 않는 편이다. 띠와 별자리에 따라 사람의 성격과 미래를 점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당연히 심드렁하다. 타로카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MBTI는 물론이고 심리학자 윌리엄 마스턴이 만들어 지금도 다양한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는 성격유형 검사인 DISC 검사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다. 조금 더 얘기를 확장하자면 퍼스날 컬러나 감성지수(EQ), 도덕지수(MQ), 사회지수(SQ), 소통지수(CQ), 공존지수(NQ)와 같이 사람 성격의 다양한 요소를 수치화하려는 여러 테스트와 그 결과에 대해서도 대체로 무심한 편이다. 그러니 필적의 주인을 찾는 걸 넘어 그 사람의 성격까지 판단할 수 있다는 저 책의 논의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알려는 욕구
살면 살수록 사람이 어렵다.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아마 다들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그렇다고 사람이 사람을 안 보고 살 수는 없으니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만들어 활용해 보려는 욕구가 생기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이 당연함이 관련한 것들의 지속적인 개발로 이어지는 것은 그 도구들이 사람을 파악하는데 미흡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 하나의 원인일 테고, 세상이 복잡해지면 사람도 따라 복잡해져 과거의 도구로는 지금의 사람과 미래에 올 사람의 성격 유형을 판별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새로운 도구 개발의 또 다른 원인일 것이다.
덕분인지, 때문인지, 명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여하간 이 지속적인 개발과 창안은 과거의 도구와 현재의 도구 모두 그 신뢰도에 대한 의심을 불러왔고 불러 온다. 당연한 것 아닌가. 오늘의 새로운 도구는 같은 구실을 했던 과거의 도구가 가진 한계와 단점을 지적하고 그것의 극복을 자신하면서 나오는 것이니, 당연히 새것은 세상에 나오는 순간 과거의 것을 폄하해야만 하는 운명을 가진 것 아니겠나. 이런 이유로 앞서 얘기한 것처럼 과거의 방법은 물론이고 지금의 방법 또한 그 유효함과 신뢰성을 의심받는 것이리라.
사람이 사람을 알려는 욕구엔, 당연히 합당한 이유가 있다. 연애에도 그 앎이 필요하고 마케팅과 영업에도 그 앎이 필요하다. 지인처럼 교육 사업에 종사하는 이에게도 그 사람에 대한 “앎”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더 넓고 얇게 그 범위를 넓혀 보면 밤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춘에게도 이 “앎”은 필요하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의 행태로 그 손님의 진상 여부를 파악하면 매일 밤이 조금 더 수월하고 평안하지 않겠나. 좋은 직원 구하기가 요즘처럼 힘들었던 적이 있었나. 성실한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눈을 못떼고 있다. 이력서로는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없어 직접 면접까지 하는데, 그 면접도 부족하다 여겨 대기업에서는 1차, 2차, 3차까지도 하지 않던가. 그러나 그렇게 뽑아 놓은 사람이 내 맘 같지 않아 내쫓아 버리고 싶은 마음은 또 얼마나 자주 들었던가. 어렵게 뽑은 “알바생”이 오밤중에, 문자와 카톡으로 안녕을 고하며 잠수를 타 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 얼마나 많은 자영업자들이 밤잠을 설치는가.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라 보니 결국 사람에 대한 “앎”이 필요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해 보인다. 그러니 결국 관건은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일일 테고, 더 나아가 그 방법의 실효성을 파악하여 유용하게 쓰는 것이리라. 그러면 다시, 앞에 언급한 방법을 재평가하여 그 쓸모를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아니면 앞으로 정확한 방법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우리는 이제까지 해왔던 선택과 실수, 충성과 배반, 사랑과 이별의 당혹스러운 교차의 역사를 반복해야만 하는 걸까? 그렇다. 별수 있는가.
![[사진=이톡뉴스AI]](https://i0.wp.com/livingsblog.com/wp-content/uploads/2026/01/416150_219798_3618.png?resize=900%2C672)
선택과 위험, 사람다움과 탱고
독자들은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예전에 <더 기버>라는 영화로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얼마 전 그 영화의 원작 소설인 <기억 전달자>를 정독할 기회가 있었다. 그 소설에선 색깔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주인공 조너스는 자신에게 기억을 전달해주는 기억 보유자에게 이런 하소연을 한다. “하지만 전 색깔을 원해요! 모든 게 색깔이 없다는 건 진짜로 잘못된 일이에요!”, 이 말을 들은 기억 보유자가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모든 게 똑같으니까 선택할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아침에 일어나 옷을 입을 때 제가 옷을 고르고 싶어요! 파란 옷을 입을까, 빨간 옷을 입을까 하고 말이에요.”, 이 얘기를 다 들은 기억 보유자는 잘못된 선택의 가능성과 그 위험성에 대해 설명한다.
그러나 이 소설의 메시지가 그렇듯, 이 선택의 가능성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고, 잘못된 선택의 가능성이 품고 있는 잠재적 위험성이 우리의 삶을 삶답게 만든다. 역으로 말하면 선택의 가능성이 박탈된 사람은 사람다움을 상실할 수밖에 없으며 삶에서 모든 위험이 제거된 인생은 삶다운 삶이라 말할 수 없다. 물론 위험, 즉 리스크를 추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제거할 필요도 없다. 아니 제거는 불가능하다. 확률의 오르내림이 있을 뿐, 삶에서 위험의 가능성은 늘 잠재되어 있다.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사람이 사람을 알려고 하는 것도, 연말연시에 새해의 운을 알려고 하는 것도 잘못된 선택의 가능성을 최소화하려는 의지의 발현이다. 정초의 사주팔자를 알아보고 운세를 찾아보는 것은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가장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돈과 명예와 사랑을 쟁취할 수 있는 선택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서이고, 그 길을 찾기 위해 미래의 운을 미리 알려는 것이다. 또, 되도록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앞서 말한 온갖 방법들을 동원하고 사주팔자를 분석하고 궁합도 보는 것이다. 내가 나무면 땅이나 물인 사람을 찾고, 불이면…….. 여하간 나를 제대로 알고 이를 바탕으로 남도 알아 만남에 웅크리고 있는 불화의 가능성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말하고 있지 않나? 저 수 많은 기술과 방법과 도구들이, 역설적이게도 웅변하고 있지 않나. 우리의 삶에서 마주칠 모든 일과 사람에게 잠재 되어 있는 위험의 가능성을 최소화하려는 그 모든 시도의 “헛됨”을 말이다.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라고 했던 <여인의 향기>의 주인공, 맹인 퇴역 장교 슬레이드의 말을 상기해 보자. 본인의 책 곳곳에 잘못된 배송, 오배(誤配)로 인해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과 조우 할 수 있다는 일본의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의 주장도 생각해보자. 계획했던 대로 하지 않아서 만날 수 있었던 좋은 사람과 뜻밖의 장소를 떠올려 보자. 붙었던 두 학교 중 어느 하나를 선택했기에 만날 수 있었던 그, 혹은 그녀와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가는 친구들을 생각해보자. 스텝이 엉킨 덕분에 더 멋졌던 어느 인생의 순간을. 그 모든 우연이 겹치고 겹쳐서 만들어낸 이 멋진 나를, 그리고 인생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