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인딩 기어 게임즈(GGG) ‘패스 오브 엑자일 2’가 0.4 패치 ‘최후의 드루이드’를 통해 엔드게임의 개편에 나섰다. 핵심은 명확하다. 번거로움을 덜어내고, 핵앤슬래시 본연의 가치인 ‘전투와 파밍’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대규모 구조적 개편이 차기 버전으로 미뤄진 상황에서, 이번 패치는 내실을 다지기 위한 개발진의 고심이 엿보이는 지점이다.
가장 고무적인 성과는 엔드게임 진입 장벽의 완화다. 과거 유저들의 발목을 잡았던 복잡한 지도 준비 과정은 한층 직관적이고 간결하게 변모했다. 아틀라스 지도를 배회하며 타워를 조작하고 매 판 환영을 주입하던 물리적 피로도가 사라지며 이전 시즌에 비해 상당히 쾌적한 플레이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적 진보와는 대조적으로, 리그의 주역이 되어야 할 시즌 콘텐츠는 뼈아픈 실책으로 남았다. 난해한 메커니즘과 일관성 없는 보상 체계, 그리고 잦은 기술적 결함은 유저들에게 즐거움보다는 피로를 안겼다. 시스템의 ‘편의성’이 유저를 불러모았다면, 시즌 콘텐츠의 ‘빈약함’은 유저를 다시금 돌려세우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결국 이번 0.4 패치는 POE2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극복해야 할 과제를 동시에 확인시켜 주었다. 본지에서는 지도 준비 과정의 혁신과 성능 개선의 성과를 짚어보는 한편, 유저를 지속적으로 머물게 할 ‘매력적인 즐길 거리’에 대한 부재 등 이번 패치는 명확한 빛과 어둠이 존재했다.
쾌적해진 맵핑 준비, 엔드게임이 편해졌다
이번 리그는 엔드게임 진입의 핵심 요소인 지도 준비 과정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데 집중했다. 특히 유저가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변화는 복잡했던 사전 준비 단계를 대폭 완화하여 게임의 템포를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대대적인 구조적 개편이 차기 패치로 연기된 아쉬움을 어느 정도 상쇄할 만큼 고무적인 변화로 다가온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혁신은 그간 많은 불편을 초래했던 ‘타워 서판 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편이다. 기존 시스템에서는 유저가 타워와 직접 상호작용하여 주변 지도의 서판 효과를 활성화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타워가 중첩되는 지역을 일일이 찾아다녀야 했던 비효율적인 동선은 엔드게임의 피로도를 높이는 주된 원인이었다.
하지만 이번 개편을 통해 타워와 상호작용해야 할 필요성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유저는 경로석 옵션 개수에 따라 최대 3개까지 서판을 지도에 직접 삽입할 수 있게 됐다. 더 이상 효과 중첩을 위해 아틀라스 지도를 배회하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유저가 오로지 파밍 그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경로석 시스템의 변화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번 시즌부터는 경로석에 ‘환영 주입’을 할 수 없도록 변경되었다. 지난 시즌 환영 주입은 강력한 보상을 제공하는 기능이었으나, 매 지도마다 이를 유지하기 위한 준비 과정 자체가 플레이어에게는 매우 고역스러운 작업이었다. 개발진은 이러한 ‘환영작’ 과정을 과감히 삭제함으로써 반복 조작의 피로를 덜어냈다.
단순히 기능을 삭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보상의 균형을 맞춘 점도 긍정적이다. 환영 주입 기능이 사라진 대신 기본 서판의 효과를 대폭 상향하여 전체적인 보상의 가치를 유지했다. 이는 유저들이 복잡한 사전 작업 없이도 충분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조치로, 엔드게임 콘텐츠의 접근성을 한 단계 높인 영리한 설계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번 시스템에서도 나름의 긴장감은 유지된다. 서판의 최대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는 모든 지도를 ‘6옵션(0 목숨)’ 상태로 공략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점의 보상을 노리는 유저들에게는 여전히 높은 난이도와 집중력이 요구되지만, 과거의 불편했던 물리적 준비 과정이 생략되었다는 점은 이를 충분히 감내할 만한 요소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이번 0.4 패치는 엔드게임의 ‘준비 시간’을 대폭 단축시켜 플레이의 연속성을 확보했다. 지도를 하나 돌기 위해 소요되던 불필요한 공정들이 경로석과 서판의 직관적인 결합으로 대체되면서, 유저들은 전 시즌 대비 훨씬 빠르고 쾌적하게 엔드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빈약한 시즌 콘텐츠, 리그는 바뀌었으나 여전히 ‘심연’을 돈다
엔드게임의 편의성 개선과는 대조적으로, 이번 시즌 콘텐츠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못지 못하다. 지난 18일 적용된 버프 패치 전까지 유저들 사이에서는 “바알 사원을 플레이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라는 회의론이 많다. 투자 시간 대비 보상이 턱없이 부족해 사실상 무의미한 콘텐츠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원인은 지나치게 복잡한 메커니즘과 직관성 결여에 있다. 콘텐츠의 구조는 난해하지만, 정작 그 안에서 유저가 학습할 수 있는 일정한 규칙이나 패턴은 부재했다. 특히 경로 타일의 이동 방향이나 각 방의 연결 구조는 일관성을 찾아볼 수 없어 플레이어에게 깊은 피로감과 혼선을 야기했다.
콘텐츠의 확장에 따른 보상의 스케일링 또한 완성도가 떨어졌다. 사원을 반복할수록 맵의 크기는 비대해지지만, 보상의 가치는 이에 비례하지 않았다. 심연 지하 2~3번은 다녀올 정도로 넓다. 더욱이 10개 이상의 방을 공략했음에도 보상이 고작 ‘퀄리티’나 ‘제왕의 오브’ 제작대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사원 진입 후 포탈 이용 시 복귀가 불가능한 버그는 물론, 보스 방 입장 아이템에 대한 사전 안내가 전혀 없어 많은 유저가 헛걸음을 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유저들은 게임 내 설명이 아닌 외부 커뮤니티나 검색을 통해서야 비로소 상세 조건을 파악할 수 있었다.
더욱이 방마다 체크포인트가 부재하고 이동 경로가 무작위로 설정되는 탓에, 단순 이동에 소요되는 시간만으로도 효율성이 크게 떨어졌다. 낮은 보상 체계와 긴 호흡의 동선이 맞물리면서, 유저들에게는 시즌 콘텐츠를 즐기기보다 차라리 일반 지도를 하나 더 도는 것이 이득이라는 인식이 확산됐고, 결국 시즌 콘텐츠는 플레이 선택지에서 외면받았다.
패치 타이밍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대대적인 개편이 이루어진 시점은 이미 상당수의 유저가 시즌 아웃을 선언한 뒤였다. 통상적으로 시즌 1주차를 전후해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장르 특성을 고려할 때 개편된 바알 사원을 즐긴 유저 비중은 그다지 많을 것 같진 않다.
프레임 최적화의 진전, 그러나 여전한 기술적 불안정성
엔드게임의 변화와 더불어 이번 패치에서 가장 체감되는 지점은 성능 최적화의 진전이다. 개발진은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 거의 모든 환경에서 초당 프레임 수(FPS)를 전 시즌 대비 25% 이상 개선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시즌까지는 고밀도의 지도를 공략할 때 극심한 프레임 드롭으로 인한 캐릭터 사망이나 게임 크래시 현상이 빈번했다. 그러나 이번 시즌은 개발진의 공언대로 한층 쾌적해진 구동 환경을 보여주었다.
이는 엔드게임 개편 과정에서 지도 등급 상승 시 몬스터 무리 규모를 늘리는 대신, 비-고유 몬스터의 보상 효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변경해 연산 부하를 줄인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러한 개선이 기술적 결함의 완전한 해결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빈도는 줄었으나 원인을 알 수 없는 텍스처 왜곡이나 크래시 현상은 여전히 플레이를 방해했다. 일례로 기자는 ‘타락한 연결부’ 공략 중 게임이 종료되는 현상을 겪었으며, 재접속 시 모든 포탈이 소실되어 진행 상황을 잃는 허탈한 상황을 마주하기도 했다.
패치 이후 발생하는 고질적인 실행 오류도 여전하다. 업데이트 마다 ‘일부 파일 전송 실패’ 문구와 함께 게임이 실행되지 않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당장 23일 오전 패치 이후에도 같은 현상을 겪었다. 이는 서비스 초기부터 지적되어 온 고질병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아 유저들의 피로감을 가중시킨다.
실제로 유저들이 직접 ‘업데이트 오류 자동 수정 도구’를 제작해 배포할 만큼, 매 패치 시 수차례 재실행을 반복해야 하는 현 상황은 정상적이라 보기 어렵다. 쾌적한 플레이 환경을 위해 성능 최적화에 공을 들인 만큼, 이제는 퍼블리셔 차원에서 이러한 클라이언트 실행 오류에 대한 명확한 개선책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