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애드온 강제 수술, WoW ‘한밤’ 순정 게임 될 수 있을까?


블리자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서비스 20주년을 넘어서며 새로운 전환점에 섰다. 최근 블리자드는 게임 내 UI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애드온의 사용을 기술적으로 제한하는 등 이른바 ‘애드온 다이어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외부 도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모든 유저에게 평등한 게임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20년간 애드온을 게임 플레이의 본질로 삼아온 유저들 사이에서는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배경에는 복잡해진 레이드 기믹과 이를 파훼하기 위한 애드온 사이의 끝없는 ‘군비 경쟁’이 있다. 하지만 블리자드가 제시한 순정 인터페이스의 개선 속도가 유저들이 쌓아온 20년의 노하우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현장에서는 심각한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정교한 협동이 필수적인 신화 난이도에서는 애드온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유저들이 직접 외부 데이터를 수동으로 입력하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등, 정책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은 ‘세팅의 피로도’라는 새로운 진입 장벽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 20년의 노하우, 순정 인터페이스가 넘기엔 너무 높은 벽

API 제한 정책으로 인해 위크오라의 핵심 기능이 대폭 축소 및 제한됐다 (사진=Liguid Maximum)
API 제한 정책으로 인해 위크오라의 핵심 기능이 대폭 축소 및 제한됐다 (사진=Liguid Maximum)

와우 역사에서 애드온은 단순한 편의 도구를 넘어 게임 플레이의 본질을 정의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공격대의 필수품인 공격대 경보 시스템은 보스의 기술 시간을 초 단위로 계산해 경고를 제공하며, 유저 커스텀 툴인 위크오라는 복잡한 데이터 속에서 핵심 정보만을 추출해 화면 중앙에 배치하는 혁신을 보여줬다. 지난 20년간 전 세계 유저들이 집단지성으로 쌓아 올린 이 노하우는 레이드 공략의 표준 가이드라인이 된 지 오래다.

문제는 블리자드가 시도 중인 개편이 이 20년의 세월을 담아내기엔 역부족이라는 점이다. 블리자드는 최근 몇 년간 편집 모드 도입과 가방 통합, 유닛 프레임 개선 등 대대적인 순정화 작업을 진행했지만, 유저들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실제 레딧에서 ‘좋아요’ 388개의 큰 공감을 얻은 한 게시글은 “과거에는 위크오라 문자열 하나 복사하면 끝날 일이, 이제는 기능을 쪼개놓은 6개의 서로 다른 애드온을 일일이 설치하고 설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블리자드의 정책이 오히려 진입 장벽과 세팅 피로도만 높였다고 꼬집었다.

파티원의 생존을 책임지는 힐러들에게 이번 애드온 제한이 더욱 치명적이다. 지난 수년간 와우의 기본 공격대 프레임은 힐러가 필요로 하는 핵심 정보를 처리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힐러가 필수적으로 사용하던 커스텀 프레임 애드온들은 이번 정책의 직접적인 타겟이 되어, 아군에게 투사된 정보의 가시성을 강제로 낮추게 됐다. 

아울러 최고 난이도인 신화 난이도의 차단 순서 정하기나 특수 기믹 할당처럼 정교한 협동이 필요한 구간에서 기본 인터페이스는 여전히 무력하다. 이로 인해 유저들은 외부 프로그램을 사용해 공략 정보를 수동으로 입력하는 고행을 자처하고 있다. 수천 가지 옵션을 제공하는 전문 애드온의 깊이를 기본 시스템이 단숨에 대체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위크오라 기능이었던 타임라인도 별도의 애드온으로 분리돼 설치만 번거롭다 (사진=WoWhead)
위크오라 기능이었던 타임라인도 별도의 애드온으로 분리돼 설치만 번거롭다 (사진=WoWhead)

 

■ 유저들은 막아도 길을 찾기 마련이다 

스프레드 시트를 이용하는 등 정보에 따른 유저 격차는 더욱 덜어지는 상황 (사진=MRT spread sheet)
스프레드 시트를 이용하는 등 정보에 따른 유저 격차는 더욱 덜어지는 상황 (사진=MRT spread sheet)

블리자드 개발진은 애드온 없이도 공략이 가능한 게임을 만들겠다고 공언해 왔다. 실제로 최근 레이드에서는 과도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시각적 전조를 강화하는 시도가 이어졌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의 반응은 차갑다. 유저들은 1%의 실수라도 줄이기 위해 가장 확실한 길을 선택하기 마련이며, 블리자드가 특정 기능을 차단하면 곧바로 이를 우회하는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최상위권 공격대의 사례는 더욱 극단적이다. 블리자드가 아군 추적 기능을 막자, 이들은 게임 밖 구글 스프레드시트에서 초 단위로 짠 공략 데이터를 추출해 게임 내 메모장 애드온에 수동으로 복사하고 붙여넣는 데이터 동기화 작업을 필수 관문으로 삼고 있다. 

차기 확장팩 한밤에서도 블리자드는 특정 객체를 추적해 시각 정보를 투사하는 기능을 추가 차단하는 등 강도 높은 청정 레이드 환경을 예고했다. 하지만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강화 및 약화 효과 속에서 기본 인터페이스만으로 우선순위를 판단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리퀴드 공대장 맥시멈은 애드온 제작자들과 진행한 유튜브 콘텐츠에서 현재 블리자드의 행보에 강한 우려를 표했다. 그는 “게임 내부의 정보를 차단한다고 해서 상위권 팀들이 공략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결국 우리는 화면의 픽셀을 분석하거나 외부 소프트웨어를 동원하는 극단적인 우회로를 찾게 될 것이고, 이러한 기술적 격차가 일반 유저와의 거리를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벌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본 기능으로 편입된 와우의 핵심 '대미지 미터기' 역시 부족한 점이 많다 (사진=WoWhead)
기본 기능으로 편입된 와우의 핵심 ‘대미지 미터기’ 역시 부족한 점이 많다 (사진=WoWhead)

 

■ 단순 제한보다는 포용과 진화

제한 이유는 분명 합당하나 기본 기능의 성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사진=와우 공홈)
제한 이유는 분명 합당하나 기본 기능의 성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사진=와우 공홈)

현재 와우가 겪고 있는 진통은 단순한 인터페이스의 호불호 문제가 아니다. 블리자드는 단순히 애드온을 제한하는 데 그치지 말고, 유저들이 왜 특정 기능에 열광하는지를 깊이 분석해야 한다. 위크오라의 논리를 기본 시스템에 더 유연하게 녹여내거나, 레이드 프레임의 시인성을 현대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보스 설계에 있어서도 애드온의 타이밍 알림에 의존하는 방식이 아닌, 유저가 상황을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직관적인 기믹을 배치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최근 경쟁 게임인 ‘파이널판타지14’의 ‘아르카디아 선수권 헤비급’ 4층 기믹 설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핵심 기믹인 ‘아르카디아 드림’은 보스의 동작이나 전장의 시각적 변화를 통해 유저가 스스로 상황을 추론하게 유도한다. 유저는 경고음이 아니라 보스의 손동작이나 사물의 위치를 보고 직관적으로 안전지대를 찾으며, 공략 성공 시 내가 직접 판단해서 피했다는 성취감을 극대화한다.

애드온 다이어트의 목적은 유저의 손발을 묶는 것이 아니라, 애드온 없이도 즐거운 게임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20년을 지탱해온 와우의 힘은 유저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커뮤니티의 노하우에서 나왔다. 블리자드가 이 소중한 자산인 애드온 문화를 어떻게 건강하게 흡수하고 개선해 나갈지, 전 세계 와우 유저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복잡하게 얽힌 퍼즐임에도 외부 툴 없이도 충분히 할 수 있어 호평을 받은 파판14 (사진=Xenosys Vex)
복잡하게 얽힌 퍼즐임에도 외부 툴 없이도 충분히 할 수 있어 호평을 받은 파판14 (사진=Xenosys Vex)

실생활에 유용한 정보를 쉽고 정확하게 전하는 생활정보 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