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은 뇌신경 세포의 과도한 전기 신호로 발작을 유발하는 만성질환이다. 특별한 유발요인 없이 발작이 두 번 이상 발생하면 뇌전증으로 진단한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거나 눈앞이 멍해지고 몸이 떨리는 증상이 반복된다면 뇌전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과거엔 ‘간질’로 불렸지만, 사회적 낙인을 줄이기 위해 최근엔 ‘뇌전증’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신경과 문혜진 교수는 “5분 이상 발작이 멈추지 않거나 연이어 발작이 발생해 환자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는 ‘뇌전증 지속상태’로 간주한다”며 “이는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응급상황으로 신속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뇌전증은 연령과 관계없이 발생한다. 특히 5세 이하 소아와 65세 이상 고령층에서 발병률이 높다. 소아에서는 유전성 질환이나 출산 전후 뇌 손상, 대사 이상, 신경계 기형이 주요 원인이다. 성인기 이후엔 뇌졸중, 뇌종양, 외상성 뇌손상, 치매, 뇌염 및 수막염 같은 감염성 질환이 위험 인자로 꼽힌다.
진단의 핵심은 발작 양상에 대한 병력 청취다. 환자 본인의 기억이 불완전한 경우가 많아 보호자나 목격자의 진술이 중요한 단서가 된다. 또한 뇌파검사(EEG)로 이상 전기 활동을 확인하고, 뇌 MRI나 CT를 통해 구조적 원인을 평가한다. 필요시 장시간 뇌파 감시 검사나 혈액검사, 소변검사, 뇌척수액 검사도 함께 시행한다.
뇌전증 발작은 2017년도 세계뇌전증퇴치연맹(ILAE) 분류 기준에 따른다. ▶대뇌 양측 광범위한 부위에서 동시에 시작되는 ‘전신 발작’ ▶국소 부위에서 시작되는 ‘국소 시작 발작’ ▶발작 시작 부위를 알 수 없는 ‘불명 시작 발작’으로 나뉜다. 뇌전증은 실신, 공황장애, 틱장애, 기면증, 야경증 등과 혼동되기 쉬워 정확한 감별 진단이 필요하다.
꾸준한 약물치료·관리로 일상 유지 가능
치료의 기본은 항뇌전증 약물 복용이다. 약은 뇌신경 세포의 과도한 방전을 억제해 발작을 조절하며, 꾸준히 복용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환자의 약 70%는 약물치료만으로도 발작이 잘 조절된다. 하지만 나머지 30%는 약물에 반응하지 않는 난치성 뇌전증이다. 이 경우 뇌 수술이나 뇌신경 자극술(미주신경자극술·심부뇌자극술), 케톤생성식이요법 등을 고려해야 한다.
생활 습관 관리도 치료만큼 중요하다. 정해진 시간에 약을 규칙적으로 복용하는 건 필수다. 수면 부족이나 과음은 발작은 유발할 수 있으므로 피해야 한다. 생활 리듬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도움된다. 일부 약물이나 건강보조식품은 항뇌전증 약제 효과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복용 전 전문의와 상담해야 한다.
뇌전증은 전염병도, 정신질환도 아니다. 대부분 유전되지 않으며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비교적 흔한 질환이다. 1년 이상 발작이 없고 치료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면 운전도 가능하고, 취업과 결혼 등 일상생활에도 법적 제약은 없다. 다만 공공 교통수단의 운전이나 중장비 조작 등은 안전을 위해 제한될 수 있다. 문 교수는 “뇌전증은 조절 가능한 만성질환이다.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가 한 팀이 돼서 포기하지 않고 치료를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영경 기자 shin.youngk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