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바이오산업의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키워드는 ‘속도’와 ‘전환’이다. 인공지능(AI), 세포 치료제, 유전자 편집, 마이크로바이옴 등 차세대 신규 기술이 본격적으로 개발 단계에 진입하면서 신약 개발 방식 전반에 변화가 일었다. 가능성 평가 수준에 머물렀던 기술들이 이제는 후보물질 발굴과 임상 단계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규모는 작지만 기술력이 돋보이는 바이오 스타트업이 자리한다. 설계·발굴·플랫폼 구축 등 과거 대형 제약사가 전담하던 초기 영역 분야를 스타트업이 빠르게 흡수하면서 개발 시간 단축과 임상 성공률 향상이라는 산업 구조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특히 AI 기반 설계 기술과 차세대 항암 플랫폼 등은 초기 개발 단계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신약 개발의 효율성을 크게 높이고 있다.
희귀·난치성 질환처럼 미충족 의료 수요가 큰 분야를 겨냥한 기업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국내 스타트업이 글로벌 신약 개발 생태계로 본격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는 국내 바이오 스타트업의 혁신이 ‘아이디어 단계’를 넘어 ‘개발 단계’로 진입한 전환점으로 기록되는 분위기다.

AI로 설계 혁신…신약 개발 성공 가능성 제고
AI는 신약 후보물질의 탐색 속도를 높이고, 임상 실패율을 낮추는 데 기여한다. AI 기반 신약 설계 플랫폼 ‘갤럭스 디자인’을 개발한 갤럭스는 드노보 항체 설계 기술을 기반으로 항암제, 대사 질환, 희귀 질환 등 다양한 모달리티에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포트래이 역시 AI를 활용한 신약 표적 발굴 기업으로, 공간전사체 등 다중 생체 데이터를 통합 분석해 바이오마커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두 기업 모두 신약의 설계 단계에서 혁신을 이끄는 대표적인 기술 스타트업이다.
차세대 항암제 개발 위한 기술력 향상
국내 항암 스타트업의 기술 다변화도 눈에 띈다. 마루테라퓨틱스는 자체 개발한 ’upCAR-iNK’ 플랫폼으로 교모세포종의 종양 미세 환경 혈관을 타깃한 차세대 면역항암제를 개발 중이다. 트리오어는 기존 항체-약물 결합체(ADC)의 한계를 개선한 신규 링커-톡신(Linker-Toxin) 시스템으로 차세대 항암제를, 트윈피그바이오랩은 독자적인 TAMpep™ 플랫폼 기반의 펩타이드-약물 결합체(PDC)와 TAMpep™-ADC 기술을 활용해 간암, 유방암 등을 표적으로 하는 차세대 면역항암제를 개발하고 있다.
천연물을 활용하는 항암제 개발 기업도 있다. 재인알엔피는 천연물 복합 성분을 활용해 면역 기능 개선과 항암 효능을 입증해 주목받고 있다.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에 혁신 기술 접목
미생물, 줄기세포, 융합 항체 기술을 활용해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바이오텍도 있다. 바이오미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생균 치료제로 TMAU(생선냄새증후군)과 같은 희귀 질환 및 항생제 내성으로 치료가 어려운 감염 질환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엘피스셀테라퓨틱스는 복합줄기세포를 이용한 중증 하지 허혈 및 혈관 재생 치료제 개발로 당뇨·하지 허혈 치료의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하고 있다. 메디맵바이오는 융합 항체 플랫폼 기술 MediLink™을 기반으로 자가면역 질환 치료제와 면역 항암제를 개발하며 글로벌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미지 영역 ‘뇌 질환’ 치료 분야에 도전장
뇌 질환 분야에서도 신약 개발을 위한 노력이 이어진다. 인테론코리아는 신경 면역 시스템을 조절해 자폐스펙트럼장애(ASD)를 치료하는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큐어버스는 저분자 신약 물질 설계 노하우를 가진 저분자 기반 신약 개발 기업으로 알츠하이머·파킨슨 등 뇌 질환 치료제를 필두로 다양한 적응증으로 파이프라인을 확장 중이다. 프레이저테라퓨틱스는 자체 표적 단백질 분해(TPD) 기술인 SPiDEM® 플랫폼을 활용한 신약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있으며, 퇴행성 뇌 질환 신약 및 항암 신약 개발을 진행 중이다.
창업 지원 플랫폼이 바이오 생태계 지원
이들 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연구와 임상, 투자와 사업화를 연결하는 바이오 생태계가 있다. 서울 홍릉의 바이오·의료 창업 지원 플랫폼인 서울바이오허브는 이러한 생태계의 한 축으로, 창업기업에 연구 인프라와 협력 네트워크를 제공하며 혁신의 흐름이 멈추지 않도록 뒷받침한다. 치료의 미래를 설계하는 스타트업의 도전은 이러한 생태계 속에서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