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고 상처가 나면 연고를 바르듯, 마음이 아플 때도 치료가 필요합니다. ‘마음리뷰’는 흔들리는 감정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마음의 주인으로 서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음주량을 스스로 조절하기 어렵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다. [출처: Gettyimagesbank]](https://i0.wp.com/livingsblog.com/wp-content/uploads/2025/12/31619_33378_535.jpg?resize=600%2C400)
퇴근 후 마시는 술 한잔. 입안에 번지는 씁쓸함과 함께 하루의 스트레스가 녹아내린다. 하지만 잔을 내려놓는 순간, 마음 한켠에는 또 다른 씁쓸함이 남는다. ‘혹시 나, 알코올 사용장애일까?’
마음이 힘들 때마다 술이 먼저 떠오른다면 한 번쯤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이 술은 정말 내 의지로 마시는 걸까?’ 술이 없으면 불안하고 숙취로 일상이 흔들린다면 자신의 선택이 아닌 중독된 뇌에 이끌린 결과일 수 있다. 술자리가 잦아지는 연말연시,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노성원 교수의 도움말로 알코올 사용장애의 위험 신호와 치료의 의미를 짚어본다.
웃어넘긴 술버릇, 알고 보면 뇌 손상 신호
알코올 사용장애는 과도한 음주로 정신적·신체적·사회적 기능에 장애가 나타나는 질환이다. 단순히 술을 즐기는 것과 이 질환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은 ‘조절력’이다. 알코올 사용장애 환자는 스스로 음주량을 통제하기 어렵다. 계획했던 양을 번번이 넘기고 숙취로 일상에 지장이 생긴다.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 더 많은 술이 필요해지는 ‘내성’과 술이 없으면 잠들기 어렵고 불안·초조해지는 ‘금단 증상’도 중요한 신호다. 금단 증상의 경우, 심하면 손이 떨리거나 식은땀도 난다.
술자리에서 무용담처럼 이야기되는 ‘블랙아웃’도 주의해야 할 신호다. 술자리에 있었던 정황을 들으면 어렴풋이 기억나는 경우도 있지만 기억이 통째로 사라진다면 알코올의 신경 독성으로 기억 중추인 해마가 손상됐다는 의미다. 블랙아웃이 반복되면 알코올성 치매 위험도 커진다.
이 같은 위험 신호가 나타나도 ‘마음만 먹으면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50대 남성 A씨는 입원 치료를 마치고 퇴원할 때마다 “다시는 술을 입에 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다짐을 24번 반복했고 현재는 25번째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이 사례는 알코올 사용장애가 의지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술? 잘못된 연결고리 끊어야
‘익명의 알코올중독자(AA)’ 모임이 있다. 알코올 사용장애에서 회복 중인 이들이 서로의 버팀목이 되는 자조모임이다. 이 모임의 출발점은 “나는 술 앞에서 무력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노성원 교수는 “이러한 인정이 치료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술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내려놓고 병원을 찾으면 해독 치료가 진행된다. 갑작스러운 금주로 생길 수 있는 금단 증상을 막고 알코올로 손상된 몸과 뇌의 회복을 돕는 과정이다. 이후에는 술에 대한 갈망을 낮추는 항갈망제를 통해 금주 상태를 유지한다.
상담과 심리치료도 함께 진행된다. 대표적인 치료가 인지행동치료다. ‘힘들면 술을 마신다’, ‘축하하는 자리에는 술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굳어진 생각과 행동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쉽게 말해 생각을 바꿔 행동을 변화시키는 치료다.
술을 끊겠다는 의지가 충분하지 않다면 동기 강화 치료가 필요하다. 이 치료는 결코 술을 끊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의료진이 “간 수치가 올라가 있는데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가족들이 걱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와 같은 질문을 건네며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돌아보도록 돕는다. 노 교수는 “환자 내면에 변화에 대한 동기가 있다는 것을 믿고 그 동기를 끌어내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치료 이후에도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노 교수는 알코올 사용장애 치료를 자전거 타기에 비유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페달을 밟아 속도를 내면 잠시 멈춰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방심해 페달을 밟지 않으면 결국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 치료는 이 페달을 꾸준히 밟아주는 과정이다. 실제로 단주에 성공한 이후에도 수년째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있다. 술을 끊지 못해서가 아니다. 술 없는 행복한 삶을 지키고 싶어서다.
알코올 사용장애에서 벗어나기 위한 무기는 많을수록 좋다. 스스로 조절이 어렵다면 혼자 버티려 하지 말고 치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한양대병원 노성원 교수가 전하는 조언
“연말연시 술자리에 가기 전 오늘은 어느 정도 마실지, 언제 자리를 정리할지 미리 정해두는 게 중요합니다. 만약 주변에서 술 때문에 잔소리를 자주 듣는다면 자신의 음주 습관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또 술 없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도 연습해야 합니다. 막막하다면 일단 밖으로 나가 걸어보세요. 걷다 보면 세로토닌 분비가 활성화되면서 마음이 안정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