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적인 로컬라이제이션이라면 흔히 해외 유저가 마치 특정 나라의 게임처럼 자연스럽게 느끼는 경험을 떠올린다. 하지만 넥슨의 신작 ‘우치 더 웨이페어러’ 트레일러 현지화는 조금 달랐다.
한국 고전 소설 전우치전을 기반으로 한 작품인 만큼 목표는 ‘현지화’가 아니라 ‘한국적인 감각의 세계화’였다. 즉, 한국의 정서를 각국의 언어로 얼마나 신선하고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느냐가 핵심 과제였다.
이번 트레일러는 대사가 많지 않지만, 한국 민속 신앙의 세계관과 맞닿은 시조풍 ‘경문(經文)’ 형식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넥슨 글로벌커뮤니케이션팀은 이를 7개 언어(영어,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등) 로 옮기기 위해 각국 원어민 번역자들과 협업했다. 단순히 단어를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 각 언어권의 문학적 전통 속에 원문의 리듬과 상징을 어떻게 녹여낼지가 관건이었다.
현지화의 출발점은 ‘이해’였다. 외국인 번역자들에게 전우치전과 무속 신앙은 매우 낯선 영역이었다. 이를 위해 한국인 팀원 한마루가 관련 자료를 수집해 문학적 맥락과 장면의 감정선을 자세히 설명하며 이해를 도왔다. ‘이룡(螭龍)’, ‘열네거리’처럼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단어가 문화적으로는 깊은 상징을 지닌 표현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세심한 해석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한국 원문에서 ‘이룡’은 ‘용이 되지 못한 존재’라는 아쉬움을 담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이룡’이 길상의 상징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중국어 번역에서는 의미를 조정해 ‘蟒龙(망룡)’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또한 ‘열네거리’는 문자 그대로의 거리 개념이 아니라 망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굿의 절차를 뜻한다. 이 부분은 중국어로는 ‘幽途(유도)’로, 일본어로는 ‘まつり(마츠리)’로 번역돼 제례적 분위기를 살렸다.
이처럼 각 언어권 담당자들은 원문의 의미를 해치지 않으면서 각국의 문화적 맥락에 맞게 해석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언뜻 같은 단어라도 문화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미묘한 뉘앙스를 정교하게 조율할 수 있었다.
현지화의 또 다른 난제는 바로 ‘운율’이었다. 원문의 경문은 시조의 리듬을 따라가는 4음 4보격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단어와 구문을 바꾸더라도 이 고전적 울림을 유지해야 했다. 한국어권에서는 사극체 말투가 익숙하지만,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포르투갈어처럼 로망스어군에서는 고풍스러운 표현이 오히려 낯설고 인위적으로 느껴졌다.
이에 따라 이들 언어권에서는 현대어를 사용하되, 시조의 리듬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 문장을 4~5음절 단위로 나누어 배치하고, 절제된 어휘를 사용해 간결하지만 울림 있는 리듬을 만들어냈다.

반면, 중국어는 고전 문학의 정형시인 한시(漢詩)의 구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문장 끝소리의 반복과 성조의 높낮이를 이용해 리듬감을 살렸으며, 문장 끝에 ‘也(야)’와 같은 고어 어미를 더해 고전적인 여운을 남겼다. 이런 세밀한 조율을 통해 원문의 운율과 감정선을 각 언어의 감각으로 되살릴 수 있었다.
이 과정은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감각의 전달’이었다. 언어는 문화의 산물이며, 각 나라가 가진 상징 체계와 미학이 다르다. 그래서 제대로 된 현지화는 원문이 가진 온도와 리듬, 감정을 새로운 언어 속에서 다시 피어나게 하는 창작 행위에 가깝다.
봉준호 감독이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을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현지화는 서로 다른 문화와 감각을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한국의 역사와 전통을 온전히 이해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치 더 웨이페어러 의 글로벌커뮤니케이션팀은 언어의 벽을 넘어 한국 고전의 미학을 세계로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의 정교한 손끝에서 태어난 문장은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한국의 전통이 세계의 언어로 살아 숨 쉬는 순간이다.
넥슨은 이번 시도를 통해 한국의 서사와 감각이 글로벌 무대에서 어떻게 공감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그리고 그들의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 우치 더 웨이페어러 티저 트레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