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무료로 즐기고 더 다양한 걸 하고 싶으면 돈을 내라’ 개념의 프리 투 플레이는 최근 라이브 서비스 게임의 기본적인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았다.
초창기에는 수익성에만 의존해 게임의 매력을 해치는 일도 많았지만 요즘은 게임이 추구하는 재미와 함께 가는 BM을 자주 볼 수 있다. 비슷한 장르의 게임이라면 BM도 유사해지며 일종의 템플릿이 되기도 한다.
물론 검증된 BM 템플릿이 있어도 게임이 추구하는 재미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은 여전히 필요하다. 거기서 어긋나면 게임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유저들은 지갑을 열지 않는다.
24일 출시된 카카오게임즈의 가디스 오더가 딱 그런 사례다. 게임은 정말 재밌다. 퍼펙트 패링과 닷지의 손맛, 귀여운 도트 디자인 등 게임의 매력은 넘치고 넘친다. 하지만 BM과 성장 요소는 “정말 고민을 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매력적인 게임성을 BM이 완전히 억누르고 있다.
■ 재미와 분량, 유저 편의성까지 챙긴 스토리

가디스 오더는 카플란 왕국의 왕녀이자 기사인 리즈벳이 동료들과 파멸의 예언을 저지하기 위한 모험을 그린다. 이야기 자체는 판타지 RPG의 친숙한 플롯이지만 디테일 면에서는 여타 모바일 게임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스토리 진행에 따라 NPC 대사가 바뀌거나 필드 상황이 변하고, 필드 곳곳에서 캐릭터나 사건에 대한 트리비아를 수집해 세계관과 스토리에 대한 흥미를 돋운다.

대화창의 바스트업 일러스트는 단순히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표정/크기/배치 변경으로 캐릭터의 성격이나 행동을 연출한다. 도트 캐릭터 역시 작은 사이즈임에도 다양한 액션과 표정으로 스토리에서 풍부한 표현을 보여주어 몰입도를 높인다.
여기에 메인 스토리가 새로운 국면으로 바뀌는 액트 전환 타이밍에는 앞으로의 이야기를 요약한 듯한 오프닝 애니메이션이 나와 기대감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사이드 스토리는 분량이 너무 많아 지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 분량이 방대하다. 특히 캐릭터의 개인 이야기를 담은 오리진 스토리는 메인 스토리 진행과 연계해서 보도록 개방 타이밍까지 신경 썼다.

그렇다고 스토리를 억지로 들이밀기만 하지는 않는다. 강제로 봐야 하는 구간은 없고 전 구간 스킵이 가능하다. 인상적인 건 1.5 배속 옵션이다. 텍스트 표시 속도에 컷신 진행 속도까지 빨라지지만 꼭 집중해 주었으면 하는 부분에서는 1.0 배속이 되며 음성을 들려주는 방식이다.
가디스 오더의 스토리는 부족함이 없다. 몇몇 대사, 개그 코드가 조금 오래 됐나 싶은 부분이 있지만 그것마저도 ‘옛날 RPG는 이랬지’하는 느낌으로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다. RPG 감성 넘치는 이야기를 즐기고 싶다면 가디스 오더가 제격이다.
■ 태그와 링크, 패링으로 구현한 깊이 있는 횡스크롤 액션

전투는 스토리와 함께 가디스 오더의 핵심 콘텐츠이다. 3명의 캐릭터로 파티를 구성해 간단한 조작으로 캐릭터별 고유 액션과 클래스/속성에 따른 다양한 전투를 즐길 수 있다.
적들의 구성을 보고 태그로 조작 캐릭터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이다. 잡몹 위주면 빠르게 전장을 정리하는 돌격 클래스로, 보스가 나오면 빠르게 아머를 브레이크하는 제압 클래스로 태그하는 게 수월한 식이다.
난도가 높아지면 보스와 원거리 공격형 잡몹의 조합처럼 적들의 공격 형태나 조합도 생각해야 한다. 좌우 이동만 할 수 있고 적에게 충돌판정이 있어 유리한 위치를 잡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땐 적을 통과하는 기술을 가진 캐릭터로 구석으로 가서 제압 클래스로 태그해 모든 공격을 패링하며 자리를 지키는 게 유효하다. 물론 원거리 공격을 가진 캐릭터로 잡몹을 먼저 정리해도 된다. 방법은 파티 조합만큼 무궁무진하다.

전장에 캐릭터를 최대 3명까지 꺼낼 수 있는 링크는 전투에서의 선택지를 늘려준다. 링크로 나온 캐릭터는 일정 시간 동안 자동으로 전투에 나서며 적의 공격을 받지 않는다.
또 ‘지원기’라는 이름의 링크 상태 전용 기술을 사용한다. 알아서 조건을 만족해서 쓰는 경우도 있지만 조작 캐릭터의 행동에 반응하는 경우도 있어 미리 파악해놔야 링크 캐릭터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링크 캐릭터는 한정된 시간 동안만 나와 있으므로 타이밍도 중요하다. 링크 게이지가 차 있으면 태그 시 무조건 링크가 되기에 어떤 캐릭터를 링크할 지도 빠르게 판단해 미리 태그해놓는 등 미세 조작이 필요할 때도 있다.

기사단 그랑프리는 태그와 링크의 중요성을 쉽게 체감할 수 있는 콘텐츠다. 직접 조작은 불가능하지만 태그, 링크, 궁극기 타이밍만 개입하는 반자동 비동기 PvP로 상대는 정해진 순서로 태그, 링크, 궁극기를 사용한다.
플레이어는 적 파티에 따라 시작하자마자 태그를 해야할 때도 있고 링크 순서를 바꿔야 할 때도 있다. 링크 캐릭터가 무적인 점을 이용해 아슬아슬할 때까지 버티다가 링크를 사용하는 것도 전략이다.

패링은 가디스 오더 전투의 꽃이다. 파란 안광, 장판 공격을 제외한 모든 공격을 패리할 수 있다. 잡몹의 공격도 표시만 없을 뿐 타이밍을 맞추면 패링이 된다. 좌우 이동만 가능한 만큼 적을 피해 없이 제압하려면 패링에 익숙해져야 한다.
초반에는 붉은 안광, 장판으로 타이밍을 잡으면 되지만 중반부터는 예고 없는 연속 공격, 타이밍 흐리기, 패리 불가능 공격 섞기 등 다양한 패턴이 나와 암기를 요구한다.
가디스 오더의 전투는 단순해 보였지만 플레이할수록 그 깊이가 느껴졌다. 이해도가 부족했던 초반과 원하는 대로 캐릭터를 움직일 수 있게 된 중반 이후의 게임 플레이는 완전히 달랐다. 좋은 캐릭터, 파티 구성은 있지만 반드시 정답이 되는 파티 구성이 없다는 것도 그만큼 액션을 중시한 게임이기에 가능한 일이라 본다.
■ 가디스 오더 매력 상실의 근원 ‘BM’

가디스 오더는 핵심 스토리 콘텐츠 외에도 대부분의 콘텐츠에 스토리가 엮여 있다. 대충 넘겨도 무방한 기사단 그랑프리에도 세계의 멸망을 막아야 하는 리즈벳이 왜 여기서 싸우게 되는지 알려주는 스토리를 준비했다.
전투에서는 3명의 캐릭터로 파티를 구성해 펼치는 태그/링크로 전략성을 극대화했다. 패링으로 적들의 공격 패턴을 다양화해 공략하는 재미를 살렸고 이 모든 걸 간단한 조작으로 구현해 진입장벽도 낮췄다. 캐릭터별 개성이 명확해 파티 시너지도 다양한 만큼 일정 수 이상의 캐릭터 풀이 마련되면 다양한 파티를 시도해보며 연구하는 깊이도 상당하다.
정성 가득한 스토리, 깊이 있는 전투가 강점인 가디스 오더에는 스토리 진행에 따라 등장하는 SR 캐릭터를 명함으로 제공하면서 SSR 캐릭터는 뽑기로 푸는 방식이 이상적인 BM일 것이다.
스토리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직접 사용하니 몰입도가 높아지는 건 물론 늘어난 캐릭터 풀로 다양한 파티 조합을 체험할 수 있다. 북부 전선처럼 특정 속성이 강요되는 고난도 콘텐츠의 적정 레벨 클리어도 노려볼 수 있다.

당장 서비스사가 동일한 ‘가디언 테일즈’가 그랬다. 스토리 진행에 따라 스토리에 등장하는 4성 캐릭터를 지급했다. 스토리와 동일한 파티를 꾸릴 수 있어 스토리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성능이 아주 좋지는 않아도 각자 개성이 뚜렷해 의외로 활약하는 콘텐츠가 생기는 것도 재미있었다. 라이브 서비스 게임에서 자신들의 강점인 스토리를 강조하기 위해 캐릭터를 얻는 방식을 고민한 결과다.
하지만 가디스 오더의 BM은 다른 게임의 BM을 그대로 가져왔을 뿐 자신들의 게임이 추구하는 재미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느낌이다.
주인공 파티 3명과 사전예약 보상 티아를 제외하면 오로지 뽑기로만 캐릭터를 획득할 수 있다. 심지어 한 뽑기에 완제와 조각, 성물이 같이 나오니 캐릭터 획득 난도는 더 어렵다. 기억의 메아리를 통한 일일 조각 수급도 SSR 명함을 확보한 다음부터다.
대부분의 유저에게 다양한 파티 조합은 언감생심이다. 효율 캐릭터만 확보하고 그 캐릭터로만 게임을 즐기게 된다. 진입장벽을 낮추는 간단한 조작은 몇몇 캐릭터만 바복해서 플레이 하니 지루함을 빠르게 불러오는 단점이 되고 만다.

다른 콘텐츠에는 다 있는 스토리가 뽑기 관련해선 존재하지 않는 것도 BM에 별 고민이 없었다는 방증이다.
뽑기 연출에서는 스토리의 핵심 인물인 시아가 가디스 오더와 관련된 장치에서 기사를 영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왜 그런 식으로 기사를 영입하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뽑기와 연계된 ‘기억의 메아리’에도 스토리 요소가 있는데 말이다. 스토리에 굉장히 공을 들인 가디스 오더이기에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캐릭터를 획득하더라도 육성 역시 만만치 않다. 일단 레벨, 성물, 장비, 기술, 해방 등 육성 요소가 많다. 콘텐츠 플레이에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레벨, 성물만 해도 기사 경험석과 성물 경험석, 돌파 재료인 잔흔, 모든 육성에 소모되는 골드의 네 가지 재료를 각기 다른 의뢰에서 파밍해야 한다.
자동 전투가 없으니 전투 피로도도 높다. 소탕권은 있으나 일단 의뢰의 도전과제를 모두 클리어해야 사용할 수 있다. 추천 레벨은 정말 무의미한 표기다. 보통 캐릭터와 성물 레벨을 맞춰도 “이걸 깰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캐릭터, 성물 레벨 외 다른 성장 요소를 어느 정도 끌어올린 다음 상성과 스테이지 구성을 암기하고 최적의 플레이를 해야 겨우 달성할 수 있다. 장비 파밍 스테이지는 도전과제는 커녕 클리어부터 까다롭다. 무엇보다 소탕권이 매일 7장만 지급된다. 실력이 있든 없든 수고를 들여야 하는 건 결국 같다.
30레벨 이상부터는 스태미나 개념의 ‘고기’도 부족하다. 북부 전선, 검은 균열 등 후반 콘텐츠는 더 높은 성장 수준을 요구하니 크리스탈로 고기를 무제한 교환하지 않는 이상 캐릭터 하나 육성을 완료하는 것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캐릭터 획득에서는 스토리를 배제하고, 육성에서는 편의성을 배제했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고자 유저들은 효율 캐릭터를 확보해 그 캐릭터만 육성하고 스토리, 고난도 전투 콘텐츠, PvP, 의뢰 등 모든 콘텐츠를 같은 캐릭터로 플레이한다.
다양한 캐릭터를 육성하고 파티를 구성해 태그 전투를 즐기는 가디스 오더의 핵심 재미와 동떨어진 플레이를 해야만 하니 빨리 질릴 수밖에 없다. 게임의 재미를 생각하지 않은 BM 설계가 가디스 오더를 파멸로 이끈다.
■ 가디스 오더에는 퇴고가 필요하다.

가디스 오더에선 파멸의 예언을 막기 위한 과정을 ‘퇴고’라고 표현한다. 가디스 오더라는 예언서에 적힌 미래를 리즈벳의 행동으로 하나씩 바꿔 써 나가기에 퇴고는 참 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파멸의 예언이 적힌 게임 속 가디스 오더에 비하면 우리의 손에 들어온 게임 ‘가디스 오더’는 잠재력이 가득하다.
콘솔 게임을 방불케 하는 스토리 콘텐츠, 단순해 보이나 깊은 전략성을 즐길 수 있는 전투 시스템의 재미는 각별하다. 여기에 정감 있는 도트 그래픽까지 더해져 콘솔 RPG의 재미를 담아낸 ‘탈 모바일급 게임’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고민 없는 BM이라는 오타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다행히 게임 속 가디스 오더처럼 현실의 가디스 오더도 고쳐 쓸 수 있다. 가디스 오더가 퇴고를 거쳐 더욱 멋진 게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