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더랜드라는 이름은 루트 슈터 장르의 상징과도 같다. 수많은 무기가 쏟아지고, 총성과 농담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전장은 시리즈가 꾸준히 쌓아온 정체성이다. 수십 년 가까이 장르의 얼굴로 불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새로운 넘버링이 붙은 ‘보더랜드4’ 역시 기대가 컸다. 전작에서 보여준 장르적 완성도, 그리고 보더랜드 특유의 유머와 감각은 언제나 팬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한편으로는 그 무게만큼 더 큰 책임이 뒤따르기도 했다.
막상 게임을 붙잡았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익숙함이었다. 총을 집어 들고 적을 쓸어내는 손맛, 쉴 새 없이 튀어나오는 파밍의 동력은 여전히 강력했다. 루트 슈터가 왜 중독적인지 새삼 납득하게 만든다.
하지만 동시에 아쉬움도 눈에 띄었다. 겉으로는 화려한 볼륨과 완성도가 눈을 사로잡지만, 그 속에서 불편하게 다가오는 부분들도 분명히 있었다. 루트 슈터라는 장르가 가진 매력과 단점이 함께 드러난 셈이다.
70시간가량 플레이하면서 가장 크게 와닿은 건 결국 보더랜드가 왜 루트 슈터의 대표작으로 불리는가였다. 쏟아지는 총기와 거침없는 세계, 거친 농담이 맞물리며 다른 게임에서는 맛보기 힘든 독특한 재미를 줬다. 최적화를 비롯한 문제들이 보더랜드 시리즈가 가진 고유한 재미를 흔들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재미와 별개로 랜디 피치포드 기어박스 CEO는 불필요한 말로 게이머들의 신뢰를 잃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 · 게임명: 보더랜드4
- · 장르: 루트 슈터
- · 개발: 기어박스 소프트웨어
- · 유통: 2K
- · 출시일: 2025년 9월 12일
- · 플랫폼: PC, 콘솔
■ 오픈월드, 살아있는 연출과 불편한 길찾기 사이

보더랜드4에는 시리즈 최초로 오픈월드가 도입됐다. 특정 던전을 제외하면 모든 지역이 연결돼 있어 끊김 없이 이동할 수 있다. 여기에 차량과 글라이딩, 그래플링 훅 같은 이동 수단이 더해져 탐험 편의성도 강화됐다.
다만 오픈월드 구조만 놓고 보면 특별히 독창적이진 않다. 서브 퀘스트와 탐험 요소가 곳곳에 배치돼 있지만, 비슷한 장르에서 흔히 보던 구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별점은 다른 데서 나온다. 바로 NPC 더빙이다. 특유의 보더랜드식 세계관과 맞물리면서 월드가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반쯤 맛이 간 설정에 찰진 욕설이 더해져 사이버펑크 2077을 떠올리게 할 정도다.
하지만 네비게이션은 발목을 잡는다. 스캔 시스템인 ‘에코 위치 추적’은 쿨타임이 너무 길어 안내가 끝나면 지도를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덕분에 이동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다.
퀘스트 진행 시에도 문제가 있다. 목적지에 도착해도 상호작용 오브젝트나 위치가 명확히 표시되지 않는 경우가 잦아, 불필요하게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 총기의 다양성, 파밍을 반복이 아닌 재미로 바꾸다

보더랜드4의 총기는 여전히 시리즈의 중심이다. 수천 가지 조합이 가능한 무기 시스템은 단순히 화력을 뽐내는 도구가 아니라, 파밍과 성장 루프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장치다. 루트 슈터 장르의 핵심 재미가 ‘무엇을 얻었는가’라면, 보더랜드4는 그 물음에 가장 화려하게 답한다.
총기의 개성도 뚜렷하다. 동일한 무기군 안에서도 퍽(Perk)과 브랜드별 파츠 등에 따라 슈팅 감각이 달라진다. 예컨대 한정된 탄창 대신 리스크를 감수하고 과열을 활용하는 무기, 혹은 상태 이상과 연계해 적을 녹여내는 무기는 각기 다른 플레이 스타일을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파밍이 단순 반복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매번 새로운 총기를 손에 쥘 때마다 “이번엔 어떤 빌드가 가능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전투 전략을 재구성하게 된다. 루트 슈터라는 장르적 특성이 가장 빛나는 지점이다.
보통 루트 슈터는 결국 효율적인 무기 조합으로 수렴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보더랜드4는 다양한 무기와 브랜드별 파츠 덕분에 단일 메타에 갇히지 않고 여러 빌드를 시도할 수 있다. 덕분에 총기를 파밍하는 과정이 효율 경쟁이 아니라, 그냥 새로운 무기를 써보는 재미로 이어진다.
■ 불안정한 최적화에 기름 붓는 CEO

보더랜드4는 최근 몇 년간 출시된 루트 슈터 중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엔드 콘텐츠 부족이라는 지적은 있지만, 올해 4분기 무료 업데이트와 DLC로 이를 보강하겠다는 로드맵을 이미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타크리틱 유저 평점은 4.5점, 스팀 평가는 ‘복합적’에 머물러 있다. 여러 커뮤니티 의견과 직접 체감한 경험을 종합하면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최적화 문제다.
실제 70시간 이상 플레이하면서 가장 크게 발목을 잡은 것도 최적화였다. 사용한 PC는 i5-13500, RTX 4070 Super, 32GB 메모리로 권장 사양을 충분히 충족한다.
하지만 이 사양에서도 스타터링, 프레임 드롭, 강제 종료 같은 문제가 잦았다. 고사양 환경에서도 안정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점은 분명 아쉬울 수밖에 없다.
최적화는 게이머들에게 민감한 부분이다. 그래도 정식 출시 후 데이원 패치나 추후 업데이트로 개선될 여지는 있다. 문제는 기어박스 소프트웨어의 대응이다.
랜디 피치포드 CEO는 “만족하기 어렵다면 스팀에서 환불하라”는 발언을 남겼다. 이어 “트럭에 페라리 엔진을 장착했다고 페라리처럼 달릴 거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며 “만족하지 못한다면 다른 게임을 하라”는 답변까지 내놨다.
결국 불편하면 자세를 고쳐 앉으라는 식의 태도다. 맞는 말이라고 해도 최소한 CEO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 루트 슈터 팬에게 만족을 주는 볼륨과 완성도

종합하면 보더랜드4는 시리즈 팬과 루트 슈터 마니아들에게는 충분히 즐길 만한 게임이다. 메인 스토리만 달려도 20~30시간은 거뜬하고 서브 퀘스트와 탐험, 파밍까지 챙기면 100시간은 우스울 정도의 볼륨을 자랑한다.
NPC 더빙 퀄리티도 인상적이다.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 게 아니라, 캐릭터의 성격을 살려 대사를 소화하는 맛이 있다. 밈으로 돌려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살아있는 연출이라 플레이 몰입도가 높다.
루트 슈터로서의 기본 재미 역시 잘 구현됐다. 슈팅 감각과 파밍 루프가 매끄럽게 맞물려 있어, 한 번 전투에 빠지면 시간을 잊고 아이템을 주워 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가격은 8만 4800원으로 다소 부담스럽다. 하지만 게임 전체 볼륨을 감안하면 ‘돈값은 한다’는 말 정도는 붙일 수 있다.
문제는 결국 CEO의 태도다. 랜디 피치포드는 이전에도 “아니 그런 말을 왜 하지?” 싶은 발언으로 팬들의 질타를 받아온 인물이다. 이번에도 게이머들의 불만을 인정하기보다는, “우리는 문제가 없고 너네가 문제다”라는 식의 태도로 일관했다.
이런 발언은 공감을 얻기보다는 기름을 붓는 격이다. 아무리 게임이 재미있어도, 개발사의 수장이 이런 태도를 보이면 팬심이 싸늘해지는 건 당연하다.
결국 보더랜드4는 완성도 높은 게임성과 불안한 최적화, 그리고 CEO의 말실수까지 모두 안고 있는 작품이다. 재미는 확실하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은 이유도 그만큼 뚜렷하다.
장점
– 방대한 콘텐츠 볼륨
– 다양하고 강렬한 슈팅 감각
– 훌륭한 NPC 더빙
단점
– 불안정한 최적화
– 불편한 네비게이션 시스템
– 부담되는 높은 가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