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3 17:48:55
더불어민주당이 대법관의 정원을 기존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추진하자 법조계에선 업무 폭증으로 인한 상고심 지연 해결 필요성에는 대체로 공감하지만 증원 규모와 방식에 대해선 우려가 크다는 반응이 나온다.
13일 법조계와 사법연감에 따르면 대법원의 민사 사건 상고심 처리 기간은 2022년 평균 11.7개월에서 2023년 평균 7.9개월로 줄었지만 여전히 규정보다 오래 걸린다. 민사 사건 상고심 판결은 훈시 규정에 따라 기록을 받은 날부터 5개월 이내에 선고돼야 한다.
지연 이유는 사건이 많아서다. 사법연감을 보면 매년 약 3만~4만 건에 달하는 사건이 대법원에 쏟아진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하고 재판 업무를 담당하는 대법관 12명이 각각 연간 3000건 이상을 처리하고 있다. 대법관들이 사건에 할애할 시간이 터무니 없이 부족해 상고심은 ’10초 재판’이라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은 대법관 증원을 대안으로 보고 있다. 상고 사건을 처리할 인력을 대폭 확충해 사건 적체와 심리불속행을 줄이자는 것이다. 민주당은 대법관의 증원을 현행 대법원장 포함 14명에서 30명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민주당 사법개혁 특별위원회는 전날 출범식 및 1차 회의를 열고 △대법관 증원 △대법관 추천 방식 개선 △대법관 평가 제도 개선 △하급심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제 제도 도입 등 총 5대 안건을 추석 연휴 전까지 발의하기로 계획했다.
법조계는 증원 필요성엔 공감한다. 대한변협은 지난 5월23일 성명을 통해 “대법관 증원은 상고심 제도의 병목 현상을 완화하고 재판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방안”이라고 평가했다. 또 “현재 1인당 연간 수천건에 달하는 사건을 검토해야 하는 구조에서는 충분한 심리와 충실한 검토가 어렵다”며 “대법관 수를 늘려 심리 부담을 분산하면 법리와 논증이 더욱 심도 있게 발전할 수 있으므로 국민의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가 두텁게 보호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판사들을 중심으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장 큰 이유는 전원합의체의 형해화다.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전원이 참여해 중요한 법리를 통일하는 재판부다. 인원이 지나치게 많으면 합의 도출이 힘들어질 수 있다. 법원행정처는 최근 “대법관 수를 크게 늘리면 전원합의체 기능이 사실상 마비돼 충실한 심리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의견을 국회에 전달했다.
대법관 증원에 따른 보조 인력과 예산 증가가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거론된다. 장관급인 대법관을 현재 2배 이상인 30명으로 늘리면 당장 개별 대법관들의 집무실 공간과 대법관을 보좌하는 재판연구관 인력과 지원 예산도 2배로 뛰어야 한다. 현재 대법원에서 근무하는 재판연구관은 법관 101명, 비법관 30명으로 총 131명이다.
법관 전체 정원을 그대로 둔채 대법관만 늘리면 1심과 2심 등 하급심 재판이 지연될 우려도 있다. 재판연구관은 보통 한창 재판에 집중하는 10년 차 이상의 법관들이 차출된다. 한 현직 판사는 “재판연구관을 2배로 늘릴 경우 판사 수가 부족한 하급심 재판에 구멍이 날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은 단계적으로 순차 증원하자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최근 14명에서 18명으로의 소폭 증원안을 내놓았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 6월5일 “대법원의 본래 기능과 국민을 위한 바람직한 개편 방향이 공론의 장이 마련되길 희망한다”며 사실상 급격한 증원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대법관 증원을 비롯해 법관 증원이 아니라 AI(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업무 과부하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로 대법원은 재판업무에 AI를 본격 도입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조달청은 지난 5월26일 나라장터를 통해 총 145여억원 규모의 ‘재판업무 지원을 위한 AI 플랫폼 구축 및 모델 개발 사업’에 대한 입찰 공고를 게시했다.
한 대표변호사는 “재판업무 AI 플랫폼을 통해 상고 사건 자동 분류·중요도 평가·요약 보고서 생성 등이 가능해진다면 상고심 초기 단계에서 사건별로 필요한 처리 방향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