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 기술로 손을 되살린다…1mm 신경 잇는 미세수술 권위자


한수홍 분당차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국내 수부상지 미세수술 분야의 전문가다. 김동하 객원기자

한수홍 분당차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국내 수부상지 미세수술 분야의 전문가다. 김동하 객원기자


손은 인간의 일상 그 자체다. 손으로 음식을 먹고, 옷을 입고, 글을 쓰고, 악수를 한다. 손목이 꺾이거나 손가락 감각이 둔해지는 순간, 일상의 평온함은 단숨에 깨질 수밖에 없다. 분당차병원 정형외과 한수홍 교수는 “손은 우리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기관”이라며 “작은 부위라 문제가 생겨도 가볍게 여기기 쉽지만 치료 시기를 놓치면 평생 불편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국내 수부상지(손·팔·어깨) 미세수술 분야의 권위자다. 현미경 아래에서 지름 1㎜ 내외의 혈관과 신경을 잇고, 결손 부위를 피판(조직)으로 덮는 고난도 수술을 집도한다. 손가락 절단 재접합, 신경·혈관 봉합, 광범위 조직 결손 복원, 근·신경 이식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장시간 이어지는 수술에도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 손가락을 잃었던 환자가 다시 펜을 잡고, 아이를 안을 때 한 교수는 의사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미세수술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예술에 가깝습니다. 현미경을 통해 10배 이상 확대된 시야에서 혈관과 신경을 정확히 맞춰야 피가 통하고 감각이 돌아옵니다. 작은 오차가 평생의 장애로 이어질 수도 있어요.”


산업재해 환자 줄고 스포츠 손상 급증


한 교수의 진료실엔 다양한 환자가 찾아온다. 단순 염좌부터 손가락 절단, 인대 파열, 신경 손상까지 범위가 넓다. 최근 들어 수부상지 환자의 양상은 크게 달라졌다. 산업재해나 교통사고 환자는 줄고, 골프·테니스·스키·보드 등 스포츠 활동을 하다 손상을 입는 경우가 늘었다. 특히 ▶테니스엘보(외상과염) ▶골프엘보(내상과염) ▶회전근개 파열 ▶손목 인대 손상 ▶전방십자인대 파열 환자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예전엔 프로선수가 아니면 운동을 접으라고 말했어요. 이제는 적극적인 치료와 재활로 복귀를 돕습니다. 중요한 건 타이밍이에요. 부분 인대 손상일 때 너무 오래 고정하면 관절이 굳고, 너무 빨리 움직이면 다시 불안정해집니다. 환자마다 다른 적절한 치료·재활 시점을 잡는 게 핵심이에요.”


한 교수는 팔꿈치 골절 후 관절이 굳어버린 8세 소아 환자를 떠올렸다. 다른 병원에서 방법이 없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아이는 한 교수에게 해리술과 골교정을 받고 팔을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됐다. 한 교수는 “제때 진단하면 간단히 봉합할 수 있지만, 시기를 놓치면 재건수술로 이어진다”며 “수부상지 질환도 정확한 진단과 치료 시기가 예후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손만큼 인체에서 복잡하고 섬세한 기관도 없다. 손은 27개의 뼈와 수십 개의 인대, 수백 개의 건(힘줄), 혈관과 신경이 정교하게 맞물려 있다. 작은 손상도 전체 기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만큼 수술의 난도가 높다. 한 교수는 “수부상지 치료는 손이 많이 가고 수가도 낮아 젊은 의사들이 기피하는 분야 중 하나로 꼽힌다”며 “의사의 판단과 기술로 성패가 달라져 다루기 어렵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영역”이라고 말했다.


“로봇과 정밀 장비가 발전해도 손과 팔을 다루는 수술의 본질은 결국 사람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손을 되살리는 일은 결국 인간의 손끝에서 완성되는 거예요.”


그의 진료 철학은 명확하다. 정확히 진단하고 환자가 납득할 때까지 설명하는 것. 영상검사 결과가 정상이어도 환자가 느끼는 통증에는 이유가 있고, 나쁜 상태여도 반드시 수술이 정답은 아니라는 게 그의 원칙이다.


정확히 진단해 환자가 이해할 때까지 설명


필요할 경우 환자에게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볼 것을 권하기도 한다. 한 교수는 “MRI·초음파 같은 영상 기술이 발전했지만, 미세 신경 손상이나 부분 인대 파열은 영상만으로 병변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다”며 “다른 전문가의 견해가 환자에게 새 길을 열어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수부상지 분야에는 여전히 풀어야 할 난제가 많다. 월상골 무혈성 괴사(키엔벡병)처럼 원인이 불분명한 질환부터 팔꿈치·손목 인공관절의 제한된 효과까지 도전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한 교수는 국내외 학술 무대에서 수부상지 분야의 표준 술기와 합병증 관리법을 연구하며, 실제 임상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치료 접근법을 제시해 왔다.


“우리가 간과하던 합병증을 찾아내 예방지침으로 만드는 것도 임상의 몫입니다. 현장에서 통하는 지식과 술기를 문서와 교육으로 남겨야 환자가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죠. 모든 걸 고칠 순 없지만, ‘포기’와 ‘과잉치료’ 사이에서 최적점을 찾는 게 의사의 마땅한 책무입니다.”


신영경 기자 shin.youngkyung@joongang.co.kr

실생활에 유용한 정보를 쉽고 정확하게 전하는 생활정보 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