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은 회복력이 뛰어난 장기다. 하지만 손상과 회복이 반복되면 결국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정상 조직이 섬유 조직으로 바뀌고, 재생 결절이 생기면서 간 기능이 떨어지는 간경변증이 발생하는 것. 순천향대 부천병원 소화기내과 유정주 교수는 “간은 재생력이 좋지만, 섬유화가 진행되면 간 전체에 걸쳐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사실상 회복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국내 간경변증 환자의 절반 이상(48~70%)은 B형 간염, 10~15%는 C형 간염이 원인이다. 나머지는 음주나 대사질환이 차지한다. 유 교수는 “예방접종과 치료제 개발로 바이러스 간염은 줄었지만, 생활습관에서 비롯되는 과음·비만·당뇨 등이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간경변증이 위험한 이유는 간암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간경변증은 간암의 ‘전 단계’로 불린다. 간경변증 환자의 3분의 1은 간암이 발생할 수 있고, 간암 환자의 80% 이상이 간경변증을 기저질환으로 갖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복수, 부종, 위·식도 정맥류 출혈, 간성뇌증 같은 합병증이 동반되면 예후는 급격히 나빠진다.
정기검진·생활습관 관리가 유일한 방패
증상만으로는 조기 발견이 어렵다는 게 문제다. 초기에는 거의 티가 나지 않는다. 피로감, 식욕부진, 소화불량 등 흔한 소화기 증상으로 시작된다. 병이 진행되면 ▶황달 ▶손바닥 발적 ▶거미 다리 모양 혈관 ▶남성의 여성형 유방 ▶여성의 생리 불순 같은 특징적인 변화가 생긴다. 복부 팽만이나 토혈, 의식 변화가 나타나면 즉시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
간경변증은 검사로만 확인할 수 있다. 진단은 초음파, CT, MRI 같은 영상 검사와 간 섬유화 스캔, 혈액검사 등을 통해 이뤄진다. 치료의 핵심은 원인 질환 관리다. B·C형 간염 환자는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해야 하며, 금주는 필수다. 체중 조절, 식습관 개선, 꾸준한 운동으로 대사질환을 관리해야 한다. 합병증이 심하면 간이식을 고려한다.
유 교수는 “B·C 감염 환자를 비롯해 간경변증 고위험군은 증상이 없어도 정기 검사를 받아야 한다”며 “정기검진과 생활습관 관리가 간경변증과 간암을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신영경 기자 shin.youngk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