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과 자가면역 질환 환자가 빠르게 증가중인 중동·북아프리카(MENA·Middle East and North Africa) 지역에서 한국의 바이오시밀러가 치료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인 셀트리온 제품들이 실제 처방에 쓰이면서 많은 환자가 도움을 받고 있어서다. 바이오시밀러는 특허가 만료된 바이오 의약품을 복제해 만든 치료제다. 약효는 동일하지만 가격 부담은 낮아 환자 입장에서는 좋은 약을 부담 없이 오래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MENA는 의료 기반 시설 확충과 의약품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지역이다. 셀트리온이 신흥 시장을 두루 공략하며 K바이오를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그랜드 뷰 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기준 MENA의 제약 시장 규모는 약 84조원(약 606억 달러)에 달한다. 고령화와 생활습관병 증가, 의료 기반 시설 확대 등으로 시장 규모는 매년 5% 이상 성장해 2030년에는 111조원(약 816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 등 주요 국가들이 헬스케어를 전략 산업으로 키우면서 의약품 수요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다만 MENA 지역은 기회만큼이나 진입 장벽도 높다. 각국 규제와 허가 절차가 복잡하고, 현지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 문화·종교적 특성에 따라 사업 관행의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
사우디·UAE 등서 표준치료제로 자리잡아
이에 셀트리온은 글로벌 무대를 확장하는 전략적 행보로 MENA 지역 대표 제약사인 히크마(Hikma)와 손잡았다. 히크마는 오랜 경험과 유통망, 브랜드 신뢰도를 갖춘 기업이다. 셀트리온 제품을 MENA 13개국에 공급하며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중 MENA 지역에서 유일하게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인 아이큐비아(IQVIA)에 따르면 셀트리온의 주요 치료제는 요르단·사우디·아랍에미리트(UAE)·튀니지 등 주요 국가 시장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하거나 빠르게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현지에서 표준치료제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다.
세계 유일의 인플릭시맙(자가면역 질환 치료 성분) 피하주사 제형 치료제 ‘램시마SC’(성분명 인플릭시맙)는 요르단에서 70%가 넘는 점유율을 보인다. 인플릭시맙은 류머티즘 관절염과 염증성 장 질환, 강직성 척추염 등 만성 염증성 자가면역 질환 치료에 쓰인다. 기존엔 정맥 주사로 투여해야 해 병원을 정기적으로 내원해야 했다. 램시마SC는 피하주사로 바꿔 환자가 집에서도 스스로 주사할 수 있게 만든 제품이다.
요르단에서는 자가면역 질환 환자 대부분이 램시마SC를 선택할 만큼 시장이 바뀌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20%에 가까운 점유율로 처방이 빠르게 늘며 입지를 다지고 있다.
스테키마, 내년 요르단부터 확대 출시
유방암·위암 치료제 ‘허쥬마’(성분명 트라스투주맙)는 사우디아라비아와 UAE에서 각각 점유율 70%, 40% 이상을 달성했다. 혈액암 치료제 ‘트룩시마’ 역시 튀니지에서 점유율 60%를 넘어 사실상 시장을 선점했다.
덕분에 MENA 지역 환자들에게는 치료 선택지가 넓어지고 있다. 기존에 쓰이던 ‘램시마SC’ ‘허쥬마’ ‘트룩시마’ 같은 치료제에 더해 내년에는 새로운 자가면역 질환 치료제 ‘스테키마’가 도입될 예정이다. 같은 계열의 약이 늘어나면 의료진은 환자 상황에 맞춰 더 유연하게 처방하고, 환자는 안정적인 공급망과 합리적인 가격을 바탕으로 치료 부담을 줄인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이미 여러 국가에서 입찰을 통해 확보한 시장 점유율과 신뢰가 있다. 내년부터는 요르단을 시작으로 확대 출시할 스테키마 역시 빠르게 현지 환자들에게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셀트리온은 유럽·미국 등 선진 시장을 넘어 아세안과 MENA 같은 파머징(pharm+emerging) 마켓에서 잇따라 경쟁력을 증명하고 있다. 이는 한국 바이오 산업의 글로벌 확장 경로를 보여준다. 특히 신흥 시장에서 자리 잡는 것은 가격 경쟁력을 비롯해 품질, 공급망 안정성, 현지화 전략까지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MENA는 빠르게 성장하는 신흥 시장이자 전략적 거점으로 앞으로도 성과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며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높이고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동시에 국내 후발 바이오 기업들에 길잡이 역할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