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 정밀 타격하는 방사선 치료
진단부터 휴양까지 체류형 의료시설
“지역 기반 첨단 암 병원으로 도약”
중입자 치료는 암세포만 정밀하게 파괴하는 차세대 방사선 치료다.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해 만든 탄소 이온 에너지빔을 암세포에 조사해 사멸하는 원리다. 무거운 탄소 입자가 암세포에 도달하는 순간 강력한 에너지가 종양에 집중된다. 이 과정에서 정상 조직은 거의 손상되지 않는다. 치료 횟수가 짧고, 통증과 부작용도 적어 회복이 빠르다. 이론상 혈액암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형암에 적용할 수 있다.
그동안 일본·독일 등 해외에 의존해 왔던 중압자 치료가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2023년 세브란스병원이 국내 최초로 중입자 치료기를 가동한 데 이어 중소병원으로는 처음으로 남촌의료재단 시화병원이 중입자 치료 도입에 나섰다.
중소병원 주도로 중입자 치료 추진
최근 시화병원은 외국계 자산운용사인 인마크자산운용과 총 사업비 5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중입자연구소와 의료관광호텔 등을 포함한 융복합 의료관광 사업을 추진하기로 한 것. 중입자치료센터는 시화병원이 위탁 운영하고, 인마크는 인프라 투자와 시설 개발을 맡는다.
시화병원 최병철 이사장은 “연내 지자체와 실시협약을 체결하고, 2026년 건축 설계와 인허가를 거쳐 2027년 착공,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진단, 치료, 회복, 휴양이 연계된 체류형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입자 치료는 ‘꿈의 암 치료’로 불릴 만큼 획기적인 기술이다. 하지만 이번 사업은 단순한 기술 도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의료와 관광 산업을 아우르는 새로운 의료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주요 목표다. 최 이사장은 “중입자연구소를 중심으로 의료관광호텔, 국제진료센터, 성형·피부 클리닉 등 다양한 기능을 포함한 융합형 의료관광 모델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환자의 장기 체류 수요까지 고려한 설계다.
시화병원은 현재 연간 11만 명의 외국인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몽골·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와 협력해 의료관광 네트워크를 꾸준히 확대해 왔다. 최 이사장은 “의료관광 역량을 기반으로 향후 연간 외국인 환자 1만 명 추가 유치와 1억6000만 달러(약 2200억원) 규모의 의료관광 수익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관광 수익 연 2200억원 목표
의료관광 수익은 지역 필수의료에 재투자된다. 중입자치료센터가 안착하면 수도권 서남부 지역의 내국인 암 환자도 고난도 치료 기회를 받을 수 있다. 시화병원은 이번 사업을 통해 지역 의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최 이사장은 “시화병원은 고난도 진료와 공공성을 결합한 미국 메이요 클리닉을 롤모델로 삼아 지역의 첨단 암 치료기관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세우고 있다”며 “중입자 치료를 기반으로 한 의료복합단지를 만들어 지역 사회와 함께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의료관광호텔 제도는 마련된 상태지만, 실제 운영 사례는 없다. 중입자 치료도 건강보험 수가 체계가 없어 고비용 구조가 한계로 지적된다. 시화병원과 인마크는 민간 선투자를 통해 실적을 확보하고, 정부·지자체와 협력해 제도 기반 마련에 나설 방침이다. 최 이사장은 “당초 사업지는 인천 송도였지만 인허가 협상이 지연되면서 시흥 본원 인근으로 방향이 전환됐다”며 “시화병원은 사업이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도록 지역 내 필수의료를 강화하고, 의료관광으로 재정적 지속성을 확보하는 데 전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환자가 중심인 병원, 그게 우리가 가야 할 길”
인터뷰 최병철 시화병원 이사장
고난도 암 치료를 중소병원이 주도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시화병원은 그 도전에 정면으로 맞섰다. 인마크자산운용과 손잡고 중입자치료센터와 의료관광호텔을 구축하는 이번 사업은 병원의 철학과 미래 전략이 응축된 대규모 프로젝트다. 이에 대해 최병철 이사장은 “기술보다 철학을 앞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병원이 감당하기엔 큰 규모의 사업이다.
“이번 사업은 중소병원이 고난도 암 치료에 나서는 첫 사례다. 그만큼 상징성이 크다. 중소병원은 의원급의 1차 병원과 3차 대형병원 사이에서 지역 중증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 체계의 중심축이다. 중요한 역할에 비해 운영 현실은 녹록지 않지만, 시화병원은 지역을 살리고 암 치료의 한 축을 담당하는 2차 의료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아직 제도적 기반이 부족한 상황 아닌가.
“조금씩 여건이 갖춰지고 있다. 최근 대형 가속기 구축을 위한 정책적 기반이 마련되면서 사용료나 임대료 감면이 최대 100%까지 가능해졌다. 중입자 치료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관련 입법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물론 고가 장비 도입과 운영은 여전히 큰 부담이다. 시화병원과 인마크는 의료 연구 인프라를 먼저 구축하고, 민간 선투자로 제도화를 이끌 계획이다. 민간이 먼저 시도해 결과를 만들어내면 정책은 반드시 뒤따라올 것이라고 믿는다. 정부·지자체와도 긴밀히 협력해 과제를 풀어나갈 것이다.”
-운영 재원은 어떻게 확보할 계획인가.
“이번 사업의 핵심은 지속가능성이다. 의료관광 수익이 다시 지역 필수의료에 재투자되는 선순환 구조로 설계돼 있다. 시화병원은 이미 이 순환 모델을 실현해 왔고, 공공성과 수익성을 함께 확보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병원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뭔가.
“기술보다 철학이 먼저다. 시화병원은 환자 중심 병원을 지향한다. 환자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쉽게 설명하며 진심으로 공감하는 의료가 가장 중요하다. 환자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인간적인 병원이 오래간다.”
-앞으로의 목표는.
“단기적으로는 5년 안에 중입자치료센터를 완공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시화병원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화성의과학대학을 세계적 수준의 의생명 융합대학으로 키우는 것이다. 우리는 지역에서 출발했지만, 지역에만 머물 생각이 없다. 시화병원이 지역을 넘어 국가 전체 의료 인프라에 기여하는 병원으로 자리 잡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앞으로 고난도 암 치료를 수행하는 2차 의료기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신영경 기자 shin.youngk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