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하반기 ‘의료AI·바이오헬스 강국 실현’ 국정과제를 발표하고 한국 보건의료계에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했다. 2027년까지 추진될 보건의료 데이터 통합활용 포털 구축과 100만명 규모 국가통합바이오 빅데이터 개방 계획은 단순한 정책적 선언을 넘어 의료 데이터를 AI 시대의 국가 전략 자산으로 인식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신호탄이다.
세계 의료계는 이미 AI 혁명의 한가운데 있다. 미국 FDA의 AI 의료기기 승인 현황을 보면 2022년 502개에서 2024년 950개로 지난 2년간 약 2배 증가했으며 유럽연합은 AI Act를 통해 의료 AI의 규제 프레임워크를 체계화하고 있는 등 전 세계적으로 의료 AI 기술의 상용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한국 의료 AI 시장은 한국만의 독특한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전 국민 건강보험 시스템을 통한 표준화된 의료 데이터, 세계 최고 수준의 ICT 인프라, 그리고 높은 의료 접근성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다른 국가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AI 헬스케어 혁신의 최적 조건으로, 한국의 보건의료 데이터가 갖는 경제적 가치는 이미 최대 2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이에 기반해 정부가 구축하고 있는 보건의료 데이터 통합활용 포털은 단순한 데이터 저장소가 아니다. 개별 병원과 진단센터에 분산된 검사 데이터, 임상 정보, 유전체 데이터를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하는 혁신적 플랫폼이 될 것이다. 통합 데이터에 AI 기술을 접목하면 조기 진단의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이고, 개인 맞춤형 치료법 개발을 앞당기는 기반이 된다.
특히 한국이 직면한 초고령화 사회 문제 해결에도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다. 급격한 고령화는 심혈관 질환과 같은 만성질환과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의 급증으로 이어지며 건강한 노후를 위한 조기 진단과 예방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AI 시스템이 대규모 진단 데이터를 학습하면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나 무증상 심혈관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여 적극적인 치료 개입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진단 데이터 기반 의료 혁신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핵심 과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데이터 표준화와 상호 연계성 강화가 시급하다. 데이터 표준화에 대한 목소리는 그동안도 높았고 여러 논의와 추진이 이어져 왔지만 규제와 다양한 이해관계로 속도가 더디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AI 무한경쟁 시대를 맞아 정부의 리더십과 민간의 협력이 함께 뒷받침될 때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현재 동일한 진단 결과라도 의료기관별로 데이터 형식 차이로 인해 데이터 활용의 한계가 발생한다. 다양한 의료기관과 진단 장비에서 생성되는 데이터가 일관된 기준과 체계 속에서 통합될 수 있어야 AI 학습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둘째, 규제 체계의 합리적 개선이 시급하다. 현행법상 진단 의료 데이터는 개인정보보호법, 의료법, 정보통신망법 등 다중 규제로 묶여있어 복잡성이 크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발전하는 AI 기술의 신속한 적용과 국내 최적화 작업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규제의 명확성과 함께 기술 발전 속도에 부합하는 유연한 승인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식약처는 세계최초의 ‘디지털의료제품법’을 시행하여 디지털기술이 적용된 의료기기에 대한 승인체계를 마련하였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법이 현장에서 실질적인 혁신으로 이어지도록 유연성을 발휘하고, 데이터 활용을 가로막는 다중 규제를 지속적으로 정비하여 의료혁신이 더욱 속도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셋째, 산학관 협력 생태계 강화가 필요하다. 의료계는 물론, 산업계·학계가 정부와 함께 협력하는 생태계만이 의료 혁신 기술을 빠르게 환자 곁으로 가져올 수 있다. 지속적인 진단 데이터에 대한 관심과 장기적인 투자, 건전한 비즈니스 환경 조성이 뒷받침된다면, 안전성이 검증된 혁신적인 AI 솔루션이 의료 현장에 신속하게 제공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AI 국정과제는 한국 보건의료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할 수 있는 혁신적 기회다. 한국은 이미 탄탄한 보건의료 인프라와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 인력이 갖춰져 있는 만큼, 진단 산업과의 공조와 유연한 규제 환경 조성이 뒷받침된다면 글로벌 의료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는 물론,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빠르게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한국로슈진단 킷 탕 대표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