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한국인 약 복용량 지나쳐”… ‘다제약물 논란’ 실체 살펴보니?


80%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으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는 “약 복용량 수준이 지나치다”라는 우려 섞인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숫자만 보고 다제약물(polypharmacy)을 판단할 수는 없다”라고 주장한다. [글=박정우 기자, 사진=연합뉴스]

80%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으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는 “약 복용량 수준이 지나치다”라는 우려 섞인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숫자만 보고 다제약물(polypharmacy)을 판단할 수는 없다”라고 주장한다. [글=박정우 기자, 사진=연합뉴스]


[박정우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으로 10개 이상 약을 60일 넘게 복용하는 사람이 170만 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 80%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으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는 “약 복용량 수준이 지나치다”라는 우려 섞인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숫자만 보고 다제약물(polypharmacy)을 판단할 수는 없다”라고 주장한다. 이에 취재진은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다제약물’에 실체에 대해 파헤쳐 봤다.


의학·보건 분야에서 ‘다제약물’은 5개 이상의 약을 동시에 혹은 일정 기간 이상 복용하는 경우를 뜻한다. 10개 이상의 약을 장기간 복용하는 경우 ‘과도한 다제약물’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준이 약의 ‘개수’인 만큼, 의료 현장에서는 개수를 기준으로 두는 것보다 더욱 심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령층은 고혈압·당뇨·심부전·부정맥·고지혈증 등의 질환을 함께 앓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의료 가이드라인에 맞춰 각각의 표준 치료제를 처방하다 보면 5개 약을 넘는 건 순식간이다. 이 경우 다제약물은 ‘과잉 처방’이 아닌 ‘표준 치료’ 결과에 가깝다. 다제약물을 일방적으로 문제 삼기에는 어려운 이유다.


‘다제약물’ 위험도 증가는 ‘사실’


그럼에도 전 세계적으로 다제약물을 주의하는 이유는, 복용량이 많아질수록 그에 따른 위험도가 함께 올라가기 때문이다. 예시로, 약이 1~2개일 때는 부작용을 예측하기 쉬우나 5개에서 10개를 넘기면 가늠하기 어려워진다.


일산병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자료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이 5개 이상 약을 복용할 때 4개 이하 복용군보다 입원 위험이 18%, 사망 위험이 25% 높았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반복됐다. 5개 이상의 약을 복용하는 60대 노인군의 경우, 그렇지 않은 대상보다 ‘인지 기능 저하’, ‘낙상 위험’이 증가했다. 10개 이상 복용군에서는 그 위험이 더욱 커졌다.


이런 가운데, 통계청 ‘한국 사회동향 2024’에 인용된 OECD 비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5개 이상 약을 지속 처방받는 75세 이상 노인 비율이 15개국 중 상위권에 속했다. 해당 통계 발표 이후 다제약물 문제는 언론을 통해 더욱 불거졌다.


임현택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연합뉴스]

임현택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 [연합뉴스]


중증도 반영 안 된 통계, 되려 ‘오해’


지난 9일 임현택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취재진에게 무조건적인 통계·수치 신뢰는 과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다제약물에 관한 통계 기준은 제각각”이라며 “통계청이 인용했던 OECD 자료 등에서 다른 나라는 대개 1차 병원만 집계한 반면, 우리나라는 3차 종합병원까지 아울러 비교를 했다. 이 경우 비교군이 상이해 신뢰하기 어려운 수치라고 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나라가 ‘다제약물이 과하다, 과하지 않다’를 1대1로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라며 “환자의 중증도 등이 반영되지 않은 수치들도 많은 만큼, 실질적으로 널리 퍼진 데이터들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의 다제약물 문제는 통계로써는 적지 않은 수준이지만, 숫자만으로 공포를 조장할 일은 아닌 복합적인 사안인 셈이다. 결국, “한국인의 약 복용량이 지나치다”라는 자극적인 구호보다 약물 관리와 체계를 분명히 하는 정부의 움직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생활에 유용한 정보를 쉽고 정확하게 전하는 생활정보 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