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s 영화의 위로] 인생은 계속된다…’내추럴(1984)’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이 칼럼을 처음 쓰려고 마음먹은 건 수원 FC의 특별한 은퇴 소식을 접한 뒤부터다. 올 3월 16일, 수원 종합운동장에서는 특별한 합동 은퇴식이 열렸다. 그 은퇴식이 다른 은퇴식보다 특별했던 이유는 십 년 전, 수원 FC의 첫 1부 리그 승격의 주역이었던 선수들을 다시 불러 모아 열어준 은퇴식이기 때문이다. 이날 참석한 선수 중, 현재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몬테네그로 출신의 블라딘이라는 선수를 포함한 열네 명의 선수 중 이름을 아는 선수가 없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도 없고 국가대표에 승선한 경험도 없다. 이들 모두는 지난 십년 사이 은퇴식도 없이 하나둘 은퇴 했고 팬들에게 작별인사도 남기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후, 다른 생업을 갖거나 지도자 생활을 하며 축구인의 삶을 이어갔다.


나 역시 그러하듯, 수원 FC 팬이 아니라면 이들을 잊었을 것이다. 그걸 감안하면 이날 구단이 마련한 합동 은퇴식의 의미는 더 특별해진다. 우리나라처럼 프로스포츠의 역사가 짧은 나라에서 고유의 역사를 만드는 것도, 스토리를 쌓아가는 것도, 그리고 그 역사와 이야기 속에 살아 숨쉬는 전설적인 존재를 만드는 데 있어서 구단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이 기사를 보고 칼럼을 구상하고 있던 몇 달 후, 김강민 선수의 은퇴식이 이어졌다. 수원 FC의 합동 은퇴식과 김강민 선수의 화려한 은퇴식을 이어 생각하면서 이 영화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지난 9월 30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의 마무리투수 오승환의 은퇴식에서 82년생 프로야구 선수 출신 친구들인 추신수, 김태균, 이대호, 정근우, 김강민 등이 은퇴를 축하하며 마운드에서 오승환의 세리머니를 함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월 30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의 마무리투수 오승환의 은퇴식에서 82년생 프로야구 선수 출신 친구들인 추신수, 김태균, 이대호, 정근우, 김강민 등이 은퇴를 축하하며 마운드에서 오승환의 세리머니를 함께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지막 불꽃이 아름다운 영화



이 영화는 한 야구 선수의 인생을 한 시즌에 압축하여 보여준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인생 전체를, 한 선수가 서른다섯에야 맞이한 첫 시즌이자 마지막 시즌을 통해 보여주려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만년 하위 팀인 뉴욕 나이츠에 서른다섯 살의 “신인”이 온다. 분명 계약서를 들고 왔으니 선수는 맞는데, 감독은 마뜩치않다. 10퍼센트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지역의 유력 인사인 판사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리라 짐작됐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 선수를 기용할 리 만무하다. 연전연패를 거듭하며 팀의 성적이 더 내려갈 곳 없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던 와중, 감독은 그를 테스트해 보고 그의 타격 실력에 반하여 게임에 기용하기 시작한다. 이래 지나, 저래 지나 매한가지라는 심정으로 기용하기 시작한 그 선수로 인해 팀은 상승하기 시작한다. 서른다섯 살, 그야말로 중고 신인 로이 홉스의 활약도 대서특필 되기 시작한다.


그 뒤, 앞서 말했듯, 한 사람의 인생처럼, 선수의 남은 시즌은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며 시즌 말미로 달려간다. 과거에 묻고 온 이야기와 그로 인해 생긴 몸과 마음의 상처,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구단 내부의 암투, 고향에 두고 왔던 연인과의 재회와 현재 자신을 유혹하고 있는 여자와의 갈등, 이런 야구장 밖의 사람과 이야기들이 야구장에서의 그를 흔들면서 그의 활약도 들쑥날쑥 한다.


그렇게 맞이한 시즌 마지막 경기, 한 시즌의 성패를 판가름하는 경기에서 주인공은 그를 흔들던 야구장 밖의 모든 것들은 마지막 한 타석, 굿바이 홈런으로 날려 보낸다. 그 후, 영화팬도 야구팬도 모두 기억하는 그 마지막 장면, 전광판에 맞은 공으로 인해 그 전구들이 터지고 전기가 합선되면서 발생한 스파크가 폭죽처럼 쏟아지는 사이, 로이 홉스는 다이아몬드를 천천히 돈다. 그 여정의 끝에, 동료들의 축복이 불꽃과 함께 쏟아진다.


영광과 굴곡을 만드는 선택



이 영화는 야구와 닮은 인생을, 인생을 닮은 야구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9회까지 이어지는 야구가 그러하듯, 인생 또한 과거 어느 순간의 결정과 선택이 현재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지금의 나를 둘러싼 상황들이 내 선택을 옥죄여올 때, 우리는 어떻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으며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선택인지를 묻는다. 그러나 영화가 던지는 더 중요한 질문은 그 여정- 선수 생활이든, 인생이든 – 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해야 삶 전체를 의연하게 받아들이며 마무리할 수 있는가다. 앞서 은퇴식들을 보면서 이 영화를 떠올렸던 건 아마 이 영화가 던지는 가장 크고 중요한 질문이 저 질문임을 직감적으로 떠올렸기 때문이리라.


이 영화는 그 유명한 홈런 장면에, 한 선수의 드라마틱한 처음이자 마지막 시즌의 한순간에 저 질문을 담아내고 있다. 그 끝을 어떻게 장식해야 우리의 인생은 인구에 회자 되고 전설로 남을 수 있는지를 말이다. 그 질문에 덧붙여, 한 사람의 경력과 인생의 황혼을 함께하는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대우하고 대접해줘야 여름날의 노을처럼 그의 마지막이 더 화려하게 불타오르면서 세상에 깊은 감동을 남길 수 있을지도, 이어 묻고 있다.


영화 스틸컷.

영화 스틸컷.


 


다들 언젠간 은퇴한다. 은퇴는 지속되어온 경력의 종말을 의미할 뿐, 삶의 종말을 의미하진 않는다. 은퇴라는 마침표는 한 문장의 마침표일 뿐 인생이라는 글 전체의 마침표는 아닌것이다. 중간쯤에서 끝난 문장 뒤에 바로 다른 문장이 이어지듯, 삶 또한 계속 이어진다. 그러니 우리는 은퇴를 앞두고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아니, 이에 앞서, 우선은 은퇴가 나이 들어서, 국가가 정한 정년까지 일을 하고 난 뒤의 맞이하는 마침표라는 생각을 접어야 한다.


프로야구 선수처럼, 영화의 주인공 로이 홉스처럼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우리 인생의 한 문장이 급작스레 끝날 수도 있다. 더 이어가길 바랐던 한 직업의 챕터가 느닷없이 끝날 수도 있다. 은퇴란, 다음 문장도, 다음 챕터도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사람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날벼락 같은 사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날벼락 같은 은퇴를 맞이했다고 해서 재기의 가능성까지 끝난 건 아니다. 문장은 언제든 이어질 수 있다. 로이 홉스가 다시 야구장으로 돌아오기까지 십오 년이 걸렸다. 그 사이 그가 뭘 하며 떠돌아다녔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살아서 뭔가를 하고 어딘가에서 야구를 하고 있었기에 다시 메이저리그의 공간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인생은 계속된다



어렵게 야구장으로 돌아왔던 로이 홉스도 과거의 상처로 인해 한 시즌만에 진짜 은퇴를 해야만 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도 있는 줄 몰랐던 아들과 고향의 벌판에서 캐치볼을 하는 걸로 끝난다. 야구 경력이 끝났다고 인생까지 끝나는 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렇다. 하나의 직업이 종료된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이종범 코치가 은퇴한 후배들의 생계를 위해 방송 야구 예능의 감독이라는 총대를 멘 것도, 은퇴 이후에도 삶을 유지해야만 하는, 그 당연한 사실 앞에서 당황하고, 아직 그 유지 방법을 찾지 못해 허둥대고 있을 후배들에게 준비의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화려한 순간도, 영광스러운 은퇴의 순간도 없이 은퇴한 후배들에게 인생의 진정한 은퇴의 순간만큼은 화려하길 바라면서 그렇게 마음을 썼을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살고 맞은 인생의 진짜 은퇴의 순간엔 아무런 당황함도,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평온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 올 한 해도 겨우 한 달 남았다. 필자에게 올해는 유독 깜짝 놀랄 만큼 빨리 지나갔다. 영화 속 그 화려한 굿바이 홈런 같은 장면이 조만간 내게도 있길 바라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새해를 희망차게 기다린다. 그렇게 바람에 바람을 더하며 살다가, 삶의 마지막 순간엔 그 바람마저 잠재우고,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평온하길 소망한다. 아,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괜찮은 인생인가. 다들 그런 새해가, 그런 인생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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