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카피의 딴 생각] ‘1995년’과의 짧은 재회

[사진=이톡뉴스AI]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새해가 되면 자신에게 독서 과제를 내준다. 올해 과제 중 하나는 에마뉘엘 레비나스다. 그의 책 몇 권을 사 놓은 지 몇 년이 됐건만, 그중 한 권만 읽고 나머지는 꽂힌 채 방치하여, 그 등걸과 눈싸움을 한 지 오래다. 책과 화해키로 마음먹고, 그 화해의 중재자를 찾던 중,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권위자이자 의 번역가인 강영안 교수님의 에마뉘엘 레비나스 철학의 개론서 이, 마침 근처 중고 서점에 들어와 한달음에 가서 샀다.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고 탄 지하철에서 몇 장을 읽는데, 서문에 교수님의 유학 시절 추억 한 장면이 나온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유학지였던 벨기에 루뱅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있는 한인 교회로 가던 길, 교수님은 차 안의 라디오를 통해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부고를 듣게 되는 이야기다. 흠모하던 학자이기에 유학 도중 한 번은 만나 뵙고 인사 드리리라던 다짐이 물거품이 되는 그 해는 1995년이었다.

[사진=이톡뉴스AI]
[사진=이톡뉴스AI]

1995년이라, 혼자 중얼거리며 사랑하는 다른 철학자도 같은 해 죽은 것이 얼핏 생각이 났다. 들뢰즈다. 생각이 난 김에 집에 와 AI에게 물어봤다. 그해에 죽은 철학자에 대해서. AI는 앞서 두 철학자와 함께 에밀 시오랑을 알려줬다. 혼자 짧고 가벼운 탄성을 뱉었다. 마흔이 넘어 흠모하기 시작하여 야금야금 읽어 왔고 읽어나갈 세 명의 철학자가 같은 해에 죽었다니.

이 경험만 있었으면 이 칼럼은 쓰지 않았을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다른 책에서도 1995년과 조우 했다. 강영안 교수님의 책을 산 다음 날, 동네 중고 서점에 새로 입고된 책의 목록을 버릇처럼 살피는데, 권택영 교수님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대학원 시절 권택영 교수님 등이 라캉의 몇몇 논문을 편역하여 묶은 – 이 책의 1쇄는 1994년에 출간됐다. – 으로 라캉의 난해한 세계에 살짝 발을 담근 기억이 있던 필자는, 후에 우연히 교수님의 다른 저서를 접한 뒤 꾸준히 읽어 왔다. 그런 내게, 이 책은 생소했다. . 출판일을 봤다. 1995년이다. 라캉을 비롯한 다양한 학자의 이론이 담겨 있는 책인데다가 책이 만들어진 해 또한 1995년이어서 사는 것은 필연으로 알아 부리나케 달려가 사들였다.

집에 와 표지를 펼쳤다. 저자의 서명이 있다. 증정본에 남긴 서명이다. 1995년 4월 18일, 교수님은 권 모씨에게 이 책을 증정하며 서명을 남겼던 것이다. 판본을 찾아봤다. 1995년 3월 20일에 인쇄하여, 같은 달 30일에 세상에 나왔다. 뒤 표지의 안쪽, 날개를 봤다. 1991년에 창업한 민음사가 몇 년 사이 세상에 내놓은 책들의 목록이 있었다. 대학원 시절 읽거나 공부했던 프랑스 철학자들의 이름과 이론가들의 이름이 줄을 잇고 있었다. ‘몇 년 간 돈 안 되는 책을 만들면서도 용케도 버텼구나. 늦게나마 문학전집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 제법 안도했겠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책의 목록이었다.

1995년이 각별한 이유


필자가 이해에 각별한 마음이 드는 건 필자가 이십 대 중반이 되어서 겨우 대학에 들어간 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해에 국내외적으로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다. 검색해본 뒤 깜짝 놀랄 정도였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 이 해에 있었고, 34년 만의 지방선거도 이 해에 있었다.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세트로 구속된 해도 이해였다. 그러나 이런 사건은 검색하기 전까지 내 기억에 없었다. 왜 아니겠나. 혼자 골방에서 살면서, 그 방에 놓인 서늘한 철제 책상에 앉아 물어볼 사람도 없이 상의할 사람도 없이 공부한 뒤, 역사상 두 번째 수능을 보고, 이후 전공과 대학 또한 혼자 대학과 학과의 목록이 빼곡히 적힌 신문을 펼쳐 놓고 전공과 대학을 선택하여 어렵게 대학에 들어갔으니 어떤 사건이 기억에 남아 있겠나.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 [사진=국가기록원]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 [사진=국가기록원]

그러나 그해의 입학식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뒤이어 생각나는 사건이 하나 더 있다. 어떤 관계인지 정확히 말하기 어려워, 그저 후견인이라는 호칭이 가장 적당한, 존경하던 한 어른이 내 입학식 당일 날 숨을 거뒀다. 그도 1995년에 죽은 것이다. 그의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서부터 서서히 파도처럼 묵은 슬픔이 밀쳐 올라오는 것은 그가 나의 대학 도전을 묵묵히 응원해 줬고 내게 고흐와 바흐, 재즈와 치노 팬츠, 버튼다운 셔츠, 와인과 맥주의 맛, 그리고 독서의 즐거움을 가르쳐줬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하고 존경하던 어른을 보낸, 그해의 뒤로, 30년이 흘렀다. 스물넷의 청년은 감히 가볍게 입에 올린 엄두도 못 낼 세월이다. 스물넷의 청년은 상상하지 못했던 세월이다. 그 삼십 년 사이 더 공부하고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으며 실직하고 전직도 해 봤다. 그 세월의 중간쯤, 십 대 시절부터 이십 년 넘게 다니던 교회를 어느 날 갑자기 안 나가기 시작했다. 그 뒤부터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 과거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모두 의탁했던 신을 떠나기로 작정했으니 이제 그 답을 찾는 것도, 그 두려움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도 내 몫이었기 때문이다.

찾음과 응시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 그 찾음을 위한 새로운 지도와 응시를 위한 깊은 시선을 갖기 위해 묵묵히 책을 읽어나갔다. 그렇게 읽어나가는 동안 앞서 1995년에 죽은 철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철학자와 작가를 만났고 그들 덕에 최근에서야 조금 편하게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아니, 이제야 조금 내 자신을 견딜 수 있게 됐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담담히 내가 살아온 세월을 긍정하고 살아갈 날들을 더듬어 생각할 수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새로운 시간 앞에서


오늘, 우연히 AI로 신년 운세를 봤다는 어떤 이의 글을 봤다. 나도 해봤다. 괜찮았다. 올해의 사주 핵심 메시지는 “이제는 숨기지 말고, 당신의 자리를 차지하라.”였다. 특히 커리어의 운이 좋았다. “기존에 해오던 일의 ‘격’이 바뀌는 해로, 단순 실무자에서 판단자로 격상되고, 개인 역량을 발휘하는 역할에서 조직과 사람을 관리하는 일로 그 위치가 바뀐다고 한다. 유리한 분야 또한 교육, 컨설팅, 기획, 콘텐츠인데, 총괄하여 표현하면 경험을 말과 글로 정리하는 일이 좋다고 한다. 안 그래도 그런 일을 하고 있으니 그 운이 들어오는 길목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들 그렇게 행운이 오는 길목에 서 계시길 바란다.

신년 벽두, 하루 상간으로 산 두 권의 책 덕분에 잠시 삼십 년을 돌아봤다. 다시 앞을 보고 있다. 돌아보는 시간은 하루로 족하다. 과거 이야기는 망각 된 기억의 짜깁기라 연민에 젖어 있거나 망상에 부풀리기 쉬워 길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올해도 오늘 이야기, 내일 이야기, 책 이야기만 주로 하려 한다. 이 글도 결국은 책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다들 새해 직전, 한 해를 보면서 잠시 지난 세월을 돌아보셨을 것이다. 이제는 앞을 볼 시간이다. 이제 겨우 한해가 시작하지 않았나. 내일을 생각하며 1995년이 보낸 추억을 다시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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