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카피의 딴 생각] AI 시대의 ‘투쟁’…AI로 시끄러운 고등학교

[사진=이톡뉴스AI 디자인팀]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수능 시즌이다 보니 지역에서 수험생과 관련한 이야기가 돈다. 그 중 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부산의 모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역사회에서도, 학교에서도 유명한 여학생이 있다. 중학교 때 전교 회장도 하고 어머니도 지역사회에서 어깨에 힘 좀 넣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 학생이 공부에 워낙 자신이 있었던 모양인지 공공연히 의대를 갈 거라고 말을 하고 다녔고, 실제로 고등학교에서도 이과 과목도 열심히 공부하고 학생부 관리와 면접을 위해 의학 관련 서적도 열심히 읽어왔다고 한다. 당연히 과학 시간에 제출하는 탐구 과제도 멋지게 해서 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다음부터이다. 아무리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라 하더라도 고등학생이 한 것 치고는 너무 수준이 높은 보고서에 의심이 든 과학 교사가 연구와 관련하여 기본적인 질문을 몇 개 던졌던 것이다. 수업 시간에 공개적으로 말이다. 학생은 입도 뻥긋 못했다고 한다. 그 과제 전체를 챗GPT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사진=이톡뉴스AI 디자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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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들은 뒤, 지역의 커뮤니티에 들어가 비슷한 이야기가 더 있는지 찾아봤다. 부산 지역의 모 여고에서 있었던, 말 그대로 아주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눈에 띄었다. 이 학교의 젊은 교사 하나가 과제를 내면서 공식적으로 카피 킬러 프로그램을 돌려 AI와의 유사도가 70퍼센트 이상 나오면 최하점을 준다고 선언했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평소 성격으로 봤을 때 그 말이 공염불이 아님을 직감하고 열심히 스스로 과제를 해갔는데, 언제나 그랬듯 설마 다 돌려 보랴,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챗GPT를 돌려 과제를 낸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과제를 제출한 후, 며칠 후, 수업을 하는 데 선생님이 별말씀이 없었다. 언제나처럼 수업을 하시고 몇 개의 좋은 과제에 대해 코멘트를 한 것이 다였다. 챗GPT를 돌려 과제를 낸 학생들은 슬슬 안심하기 시작했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는데, 수업 말미 선생님이 PPT 화면을 올리시고 챗GPT로 과제를 만든 학생들의 과제와 똑같은 글을 나란히 올리셨다고 한다. 선생님은 자신이 낸 과제의 주제와 내용으로 먼저 챗GPT로 돌려봤고 과제에 이 결과와 동일한 과제를 낸 사람은 의심의 여지없이 챗GPT로 과제를 한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 물론 카피 킬러 프로그램도 돌려 봤고 말이다. 선생님은 적발된 학생들을 공개적으로 지목했고, 학생들에게 최하점을 주면서 불만이 있으면 이의를 제기해보라고 했다고 한다. 누가 제기했겠는가. 규칙이 그러했고 그 규칙을 어긴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AI를 둘러싼 소란


이제 이런 에피소드는 흔하다. 명문대 학생도 부정행위를 하는 시대 아닌가. 마치 사람과 기계의 싸움 같다. 일종의 대리전 양상이라고나 할까. 사람도 AI가 한 것을 가려내기 위해 AI의 힘을 빌리니, 그렇다, 엄밀히 말하면 대리전이 맞다. 이 대리전의 양상은 국내외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생각과 글의 오리지널리티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곳에선 어김없이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진다. 심지어 중학교 1학년인 필자의 딸도 이 대리전에 참전해 있을 정도다.

시에서 선발한 소수의 영재들조차 글쓰기가 서툴거나 그럴 시간이 없으면 – 밤마다 학원을 전전하니 시간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 챗GPT의 힘을 빌려 제출하는데, 필자의 딸처럼 자신이 직접 작성한 아이들은 게시판에 올라온 몇몇 과제물을 카피킬러로 돌려서 AI의 힘을 빌린 것을, 그야말로 색출해 내고 있다. 이제 과제를 낸 교수나 교사만 과제물의 진위 여부를 가려내기 위해 분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창작물의 가치를 보장받기 위해 창작물이 “아닌” 과제물을 찾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AI를 둘러싼 새로운 내부 고발자의 도래가 만연해진 시대라고 해야 할까? 삭막하다고 보면 그리 보이겠지만 공정한 경쟁의 맥락에서 보면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최선을 다해 분투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사진=이코노미톡뉴스AI 디자인팀]
[사진=이코노미톡뉴스AI 디자인팀]

아이러니한 상황이고 세상이다. 광고와 홍보 영상 업계에선 AI 기술로 인해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AI에 투자를 늘리면서 여러 차례 수천 명씩 대규모 해고를 하고 있는 형국인데, 교육 현장에선 AI의 도움 없이 과제와 시험을 수행했는지의 여부를 따져 묻고 있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몇몇 유명 대학의 입시에선 구술시험에 가까운 면접이 도입 된 곳도 있고, 2028년 수능에선 서술 및 논술 형태의 답을 요구하는 문제의 확대 반영이 예고되어 있어 벌써부터 논술과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올라가고 있기도 하니 말이다. 덕분에 필자의 스마트 폰도 밤낮으로 제법 여러 차례 알람이 온다. 논술과 글쓰기를 배우기 위한 “고수”를 찾는 학생과 학부모의 염원이 담긴 그 알람이 말이다.

생각을 더 이어가면 이 부조화는 더 극명하게 보인다. 경기도에선 으리으리한 새 도서관을 지었고 앞서 다른 글에서 말했듯이 지자체마다 도서관 확대와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지역 교육청에선 독서 교육과 글쓰기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중ㆍ고등학생들은 수행평가와 탐구 보고서 작성을 위해 “종이책”을 열심히 읽고 논술 준비를 위해 글쓰기 실력 향상에 매진하고 있다. 알다시피 대학에선 인문학과 관련한 학과는 줄어드는 추세인데 막상 신입생을 뽑을 땐 인재의 됨됨이와 가능성을 보기 위해 학교생활기록부를 꼼꼼히 들여다보며 독서와 탐구 이력을 살피고, 그것도 모자라 앞서 말했듯이 논술과 구술시험까지 치르고 있다. 그야말로 검색과 AI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인재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현상들을 3자 입장에서 보노라면, 이 묘한 어긋남을 설명할 길이 없어 막막할 때가 있다.

사람이 보여야만 하는 것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필자는 제3자가 아니다. 늦게 본 딸이 이제 막 중학교에 들어갔으니 멀리 보면 이 변화하는 교육 현장의 이해 당사자라 할 수 있다. 그 이해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딸은 독서와 글쓰기의 늪에 서서히 들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얼마 전에도 국어 단원의 의 수행 평가로 두 개의 주장하는 글을, 며칠 터울로, 앉은 자리에서 써내야한다고 해서 주말에 머리를 맞대고 이런저런 논의를 했으니 말이다.

나와 같은 이해당사자가 몇 명쯤 되려나. 아이와 함께 입학한 아이들이 부산에만 대략 1만 7천 명 정도이고, 전국적으로는 40만 명 정도이니, 거기에 부모 및 친지의 수를 더하고 여기에 선생님들과 사교육에 종사하는 이들과 대학의 관계자들 수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가늠도 안 되는 숫자다. 이 많은 사람들이 이 아이러니 한 상황에서 요동치고 있다. 발전을 향해만 가는 기술의 달음박질과 어떻게든 학문과 인간 본연의 사고력을 붙잡으려는 교육당국의 실랑이 사이에서 그야말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인 것이다.

물론 필자는 후자의 편에 살짝 기울어져 있었으나 미국의 한 대학에서의 에피소드를 본 뒤 조금 더 기울었다. 미국의 일리노이대학교 어배너-샴페인(UIUC) 캠퍼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1200명이나 듣는 이공계 수업에선 애플리케이션으로 출석 체크를 했는데, 몇몇 학생이 앱을 속여 부정 출석을 했던 것이 교수들에 의해 발각이 됐다. 교수들은 대략 1백여 명 되는 학생들에게 발각됐다는 메일을 보냈는데, 의외로 순순히 학생들에게 사죄의 메일이 왔다. 그런데 여기서 사소한 문제가 터졌다. 교수들이 그 메일들을 보다보니 “sincerely apologize”와 같은 문구가 반복되어 나왔던 것이다. 알고 보니 학생의 상당수가 사죄 메일을 AI에게 떠맡겼던 것.

사람이 해야만 하는 글이 있다. 사람이 보여야만 하는 것이 있다. 그런 건 사람이 하자. 저 학생들은 사람이 해야만 하는 것이 뭔지 몰라 저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겠나. 중학생도,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AI에게 맡겨도 되는 것과 자기 힘으로 해야 될 것을 가려내지 못하여 앞서와 같은 유사한 사태가 벌어진 것 아니겠나. 젠슨 황이 25만개의 GPU 공급을 약속했으니 우리나라의 AI 산업 발전을 그야말로 가속도를 낼 것이다. 이 가속의 와중에도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뭔가를 놓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시간을 단축시켜준 초고속 열차가 빼앗아 간 느리게 흘러가던 창밖의 풍경을 닮은 그 무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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