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은 환자마다 유전자 특성이 달라 동일한 치료에도 반응 차이가 큽니다. 이번 연구는 항암 치료 전후 TP53 유전자 변이의 변화가 치료 반응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천영국 교수
전이가 빠르고 생존율이 낮은 췌장암은 침묵의 암으로 불린다. 전이성 췌장암은 수술이 어려워 항암화학요법이 치료의 핵심이지만 어떤 항암제가 환자에게 효과가 있을지 미리 알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가운데 항암 치료 반응을 조기에 예측할 수 있는 새로운 단서를 제시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건국대병원 소화기내과 천영국 교수팀은 진행성 췌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혈액 속 암 DNA(ctDNA)를 분석해 TP53 유전자 변이 변화를 추적하면 항암 치료 효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TP53은 대표적인 종양 억제 유전자로, 변이가 있을 경우 암의 진행이 빠르고 항암 치료 효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FOLFIRINOX 또는 젬시타빈/나브-파클리탁셀 치료를 받은 진행성 췌장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치료 전후 혈액에서 TP53 변이 변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 치료 전 TP53 변이가 있던 환자 중 약 42%에서 치료 후 해당 변이가 사라졌고 이들 환자는 종양 크기가 줄고 생존율이 더 높은 경향을 보였다. 반면 TP53 변이가 치료 후에도 남아 있는 환자들은 치료 효과가 낮고 병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천 교수는 “치료 후 TP53 변이가 사라지는 ‘클리어런스(clearance)’ 현상이 치료 반응을 잘 반영한다는 점은 매우 의미 있는 발견”이라며 “항암 치료가 효과적인지를 조기에 판단해 치료 전략을 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기존에 널리 사용되던 혈액 종양표지자인 CA 19-9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CA 19-9 수치나 CT 영상만으로는 치료 반응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지만 ctDNA 기반 TP53 변이 분석은 훨씬 민감하게 치료 효과를 반영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췌장암은 유전자 변이가 다양하고 개인별 치료 반응 차이가 큰 암인 만큼 치료 효과를 빠르게 평가하는 것이 환자의 생존율과 직결된다.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치료 도중 효과가 없는 항암제를 조기에 중단하고 환자에게 맞는 치료를 선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천 교수는 “앞으로 치료 전부터 효과를 예측할 수 있는 유전자 마커 연구로 확장해 췌장암 환자들에게 보다 정밀한 맞춤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연구 논문은 ‘진행성 췌장암 환자에서 ctDNA의 TP53 변이 소실로 확인하는 치료 반응’이라는 제목으로 암 분야 국제학술지 ‘Anticancer Research’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