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제로스는 서운하다


스마일게이트가 ‘로스트아크’의 오픈 베타 테스트를 시작한 날이 2018년 11월 7일이다. 그리고 2025년 8월 20일, 거의 7년에 가까운 시간을 빌드 업해온 최종 보스 카제로스와의 결전이 시작된다.

카제로스는 그 옛날 ‘끼룩온라인’ 시절부터 모험가의 주적이자 만악의 근원이었으며, 아크를 모으는 여정의 목적이었다. 로스트아크가 흔들릴 때마다 “여기까지 왔는데 카제로스는 잡고 가야지”하며 모험가들의 마음을 다잡게 해 주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카제로스 레이드 4막 파멸의 성채와 종막 최후의 날 업데이트가 일주일 남은 이 시점, 결전을 앞두고 전의로 타올라야 할 아크라시아는 여전히 평온하다. 2년 전,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최강의 군단장 카멘을 기다렸던 풍경과는 대조적이다.

기계적으로 공격대를 모집하고 스펙을 올리는 등 준비를 하고는 있지만 그게 전부다. 로스트아크 1부 스토리의 최종장 카제로스 레이드 종막이 아니라 에기르, 모르둠처럼 흔한 심연의 지배자 레이드를 앞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벌어진 것일까.

롤 플레잉 게임, RPG에서 몰입의 중요성이란 백 번 말해도 부족할 것이다. 시간을 들여 쌓아 올린 서사, 공을 들인 연출로 인한 휘광이 없다면 카제로스든 뭐든 단순한 데이터나 그래픽 쪼가리에 지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심연의 군주에 맞서 아크라시아를 구해내는 성취감도 느낄 수 없다.

군단장 레이드 카멘만 해도 그렇다. 최강의 군단장이라는 수식어와 쇼케이스를 통해 공개된 웅장한 시네마틱 트레일러, 흥미로운 전조 퀘스트는 우리가 맞서는 적의 강대함, 절망적인 아크라시아의 상황에 유저들이 충분히 공감하도록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레이드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그러나 이번 카제로스 레이드 종막은 쇼케이스는커녕 트레일러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분명히 어떤 사정이 있기야 했겠지만, 카제로스 레이드만을 7년 동안 오매불망 기다리던 모험가 입장에선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다. 카제로스 웃음 소리만 남은 부실한 전조 퀘스트도 기대를 저버렸다.

카제로스 종막은 로스트아크 1부 스토리의 피날레라 할 수 있는 중요한 레이드다. 그러나 모험가들의 전의와 기대감을 고취시킬 그 어떤 이벤트나 시도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쿠르잔 전면전 100% 달성을 기다려봤지만, 손에 남은 건 흔하디 흔한 파란색 칭호 뿐이었다.

레이드를 높은 퀄리티로 만드는 것도 물론 중요하나 아무리 잘 만든 레이드라도 빌드 업이 없다면 기억에 남지 않는다. 모르둠도 초창기 버그를 제외하면 로스트아크 레이드 중 손꼽히게 잘 만든 레이드지만, 전조 퀘스트와 쇼케이스로 뽕을 채운 카멘 업데이트 당시의 임팩트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

이러한 빌드 업 과정은 현재 스펙으로 최상위 레이드에 도전할 수 없는 유저들에게도 목적 의식과 향상심을 이끌어내는 효과도 있다. 모르둠 따위보다 아크라시아의 주적, 누가 봐도 최종 보스의 위엄이 넘치는 카제로스를 목적으로 스펙 업을 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

종막 업데이트 D-7, 14일 예정된 라이브 방송에서 전재학 스마일게이트RPG 로스트아크 디렉터가 어떤 방식으로 유저들의 실망감을 달래고 카제로스에 대한 전의를 고취시킬 수 있을지 모험가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