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컷의 물음 04-1] 만화에서 만나는 동서양 인문학 04-1
<미래의 골동품 가게>와 불교의 업보와 윤회 :
저 너머에서 이어진 고통의 사슬
작품 : <미래의 골동품 가게> ∣ 철학 : 불교의 업보와 윤회
대덕대학교 안소라 교수
필자에게 한국형 오컬트장르의 대표작을 뽑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20세기에는 《퇴마록》, 21세기에는 <미래의 골동품 가게>가 있다고 말할 것이다. 이우혁 작가의 《퇴마록》은 1993년 시작하여 2001년 연재가 종료되었는데, 누적 판매량이 1,000만부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우리나라 오컬트 장르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퇴마록》 연재 초기 <국내편>에서는 현암, 박신부, 승희, 준후가 퇴마를 하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었다면, <세계편>, <혼세편>, <말세편>은 거대한 적대자에 맞서 싸우는 피카레스크 형식으로 구성된 하나의 큰 줄거리로 진행되었다. 당시 《퇴마록》은 한국적인 정서와 민속신앙의 재해석을 통해 이야기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이는 구아진 작가의 <미래의 골동품 가게>도 마찬가지다. 네이버에서 연재중인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탄탄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 무속신앙과 설화, 민담, 불교, 도교 등을 두루 살피며 구성된 서사와 섬세한 연출을 통해 동양적인 세계관을 정교하게 구현하고 있다. 특히 불교, 도교, 유교 등을 아우르는 동양 사상이 유기적으로 녹아 있어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 마치 동양고전을 읽는 듯한 느낌마저 날 정도이다. 나이가 어린 독자들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도 있을 듯 하지만 작품의 큰 흐름인 선과 악의 대결은 작품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고 있다.
작품에 스며든 동양사상은 단지 배경 설정이나 분위기에 머무르지 않고, 인물들의 선택과 세계관의 작동 방식까지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이번 칼럼은 <미래의 골동품 가게>에서 보이는 동양사상인 불교, 도교, 유교의 관점을 중심으로 작품 속 철학적 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2020년부터 네이버웹툰에 연재되고 있는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4개의 시즌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즌1은 제목과 다르게 ‘골동품’보다 ‘과거’에 집중된 이야기다. 그리고 그 과거는 개인의 기억이나 추억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고 되돌아오는 업(業)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주인공인 미래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외딴섬인 해말섬에서 할머니 연화와 할아버지 칠성(친할아버지는 아니다.)과 함께 살아가지만, 그 평온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매신’이라 불리는 강력한 존재가 등장하면서, 그녀의 삶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커다란 저주에 휘말리게 된다. 이때 이야기의 초점은 ‘미래’라는 인물보다, 오히려 그녀의 조부모 세대인 ‘서연화’와 ‘유칠성’, ‘화수련’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이들은 단순한 퇴마사가 아니라 과거의 고통과 실수, 그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짊어진 각각이 비극적 업보를 지닌 존재들이다. 그 고통은 개인적인 것이면서도 동시에 세대를 넘어 윤회의 사슬로 연결된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인물들의 관계성이 구체화 되면서 인물들이 가진 업보는 현재 자신이 만든 것뿐만이 아니라 과거 자신의 선대들(또는 신)로부터 내려오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이는 불교의 윤회사상과 유사하다. 불교에서는 현재의 고통이 단지 현재의 문제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고 본다. 업(業)은 행위 그 자체이며, 그 행위의 결과는 반드시 되돌아온다.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이 불교적 인과율을 굉장히 섬세하게 그려낸다.
저주는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미래’가 시즌2 이후로 겪는 여러 사건들은 단순한 초자연적 재앙이 아니다. 그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이전 세대인 서연화, 화수련, 유칠성 등이 짊어져 온 선택의 결과다. 미래가 해말섬을 떠나 서울로 가게 되는 것은 할머니의 유언인 명부록을 찾기 위해서라는 사실이 그 결과임을 보여준다.
서연화와 화수련은 모두 어린 시절 가족을 잃고 ‘바리만신’이라는 신령에게 입양되어 퇴마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그 길은 단순히 누군가를 돕는 길이 아니다. 남겨진 업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그것을 끊어내기 위한 끝없는 투쟁이었다. 연화와 수련, 칠성의 과거에는 ‘복수’, ‘집착’, ‘희생’ ‘미련’ 같은 감정들이 작용한다. 그리고 이 감정들이 만들어낸 선택은 또 다른 고통을 낳는다. 대표적으로 연화는 젊은 시절 자신이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 때문에 살아 있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소진한다. 해말섬에 남아있는 이유도 섬 사람들에게 걸린 저주를 풀기 위해서였다. 시즌1 말미 마을 사람들을 구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자신이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집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마음의 집착을 고통의 원인으로 본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집요하게 붙잡는 그 순간, 삶은 윤회의 고리에 갇히기 시작한다.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이 집착이 단순히 개인 안에 머무르지 않고,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건 업과 윤회가 이야기의 중심축이 되지만 그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가능성 또한 놓치 않는다는 데 있다. 서연화는 귀신을 쫓는 퇴마사이면서, 동시에 떠도는 혼령들을 ‘구원’하는 존재다. 서연화는 단순히 악귀를 처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왜 이승에 머무는 지를 이해하고, 그 이유를 풀어주는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이는 미래도 마찬가지이다. 귀신이 된 존재들도 각자의 억울함과 미련을 안고 있으며, 그것을 해소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퇴마’이자 ‘해탈’의 과정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은 고통의 원인인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다. 서연화와 도미래는 바로 이 해탈의 실천자에 가깝다.
주어진 운명과 선택의 여지
이후의 시즌은 ‘미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미래는 자신의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혼란을 겪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성격으로 주어진 운명을 헤쳐 나간다. 여기서 우리는 주어진 운명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건 불교에서도 중요한 지점이다. 업은 결과를 만든다. 하지만 그 결과가 고정된 운명으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그 고통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미래未來는 달라질 수 있다. 누군가는 고통을 또 다른 고통으로 되갚고, 누군가는 거기서 길을 바꾼다.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정해진 이야기 같지만, 그 안에서 끊임없이 ‘선택’의 여지를 보여준다. 연화가 귀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도를 걷기 위해 노력하는 것, 칠성이 무력함 속에서도 함께하려는 것, 수련이 마지막까지 칠성과 연화, 미래를 지키려는 것, 미래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헤쳐 나가는 것.
이 모든 행위는 고통을 넘어서기 위한 선택이며, 그 안에는 업의 반복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이 담겨 있다.
결국 이 웹툰은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업은 무엇으로 끊을 수 있는가? 해탈은 가능한가? 작품은 명확하게 대답하지 않는 대신, 누군가를 위해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 불가능해 보이는 삶을 끝내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렇게 전해지는 자비의 흔적들이, 언젠가는 이 끝없는 반복을 멈추게 하리라는 희망을 남긴다.
필자 안소라 교수
공주대학교 만화예술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웹툰의 컬러 역할 연구> 로 석사를, <찰스 슐츠의 <PEANUTS> 분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만화영상진흥원 웹툰창작체험관 심화과정 교육 교재 집필 및 조안 한국어 교재 삽화, 웅직백제역사관 일러스트 , 한중일 문화교류 일러스트 등을 제작하였다. 공주대학교, 배재대학교, 한국 영상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현재 대덕대학교 K-웹툰과에서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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