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컷의 물음 04-2] ‘미래의 골동품가게’ : 세대와 운명을 관통하는 ‘인간다움’


[한 컷의 물음 04-1] 만화에서 만나는 동서양 인문학 04-1

 <미래의 골동품 가게>와 유교의 세계관 :

세대와 운명을 관통하는 ‘인간다움’

작품 :  <미래의 골동품 가게> ∣ 철학 : 유교의 세계관 

대덕대학교 안소라 교수

 


구아진 작가의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단순히 빙의, 악귀, 오래 된 물건이나 장소에  서린 한을 제거하는 흔한 퇴마서사를 가진 작품이 아니라 할 수 있다. 작품 속 시간은 구한말부터 현대까지 이어진다. 주인공 도미래를 비롯하여, 도미래의 할머니인 서연화, 잠시 어긋난 길을 갔지만 뒤늦게 후회를 하고 미래를 보호하는 엄마 천수희까지 세대마다 다른 인물이 저주를 마주한다. 그들은 개인의 이익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며, 위험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이는 한국인의 정신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공동체의식과 유교적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유교는 수천 년 동안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그 해답을 덕목과 실천으로 제시해왔다. <미래의 골동품 가게> 암화 편(64~83화)은 할머니의 유언으로 ‘도겁당’에 가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 미래가 나온다. 이 편은 어린 시절 미래를 도와주었던 장윤호가 곤경에 처하자 다시 한 번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때 미래는 귀문을 열고자 하는데 이 문을 지키는 도깨비들과의 대화에서 유교적 세계관의 전체를 관통하는 인(仁), 원(元), 예(禮), 리(利), 형(亨), 의(義), 정(貞)을 언급한다. 이 개념들은 주역의 우주론적 사유를 기초로 하여 유교에서 인간과 공동체의 도덕적 질서로 확장하고 발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개인적인 복수나 저주가 아닌 ‘해말섬’ 저주를 풀기 위한,  한국형 오컬트의 계보를 잇고 있는 작품이다. 즉 공동체의 선을 위하여 적과 싸우는 유교의 세계관이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지난 칼럼에서 불교의 업보와 윤회를 통해 자신의 행위에 의한 결과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의 관점에서 작품을 살폈다면 이번 칼럼은 위의 일곱 가지 개념이 작품의 서사에 어떻게 녹아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1. 인(仁) – 만물에 대한 측은지심


유교에서 인(仁)은 타인과 만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측은지심이다. 미래와 그녀의 할머니인 서연화의 퇴마 방식은 이 덕목을 기반으로 한다. 한 예로 시즌1 중도(中道) 편(10화~22화)에서 미래는 해말섬을 떠나 다른 섬에 있는 학교를 가게 되는데 자신을 친구로 대해준 장해경을 돕기 위해 퇴마의식을 펼친다. 하지만 반대로 아무런 힘이 없는 병아리를 죽인 영만에게 씌인 업귀는 보고도 모른척한다. 그리고 영만이 일을 당하자 그제야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앞선 사주도둑편에서 장윤호를 도와준 것 또한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이 발했기 때문일 것이다. 천오의 죽음은 인을 상징하는 최고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매신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는 천오는 고통의 비명을 지른다. 이 비명은 누군가를 살리는 비명이다. 이매신은 천오를 죽이기 전 그를 죽이는 무사에게 열여덟 번의 비명 중 한 번이라도 모자람이 있다고 느껴진다면 그를 죽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렇기에 천오는 비명이 모자라 무사가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크게 비명을 질렀던 것이다. 이런 일련의 에피소드는 ‘사람다움’이란 결국 다른 존재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라는 것을 작가는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림 2. 승목(乘木)편 27화  中 [안소라 교수 제공]
그림 2. 승목(乘木)편 27화 中 [안소라 교수 제공]


 


2. 의(義)의 실천 – 절대 악과의 대립과 정의 구현


<미래의 골동품가게>의 핵심 갈등은 절대 악 ‘백면’과 백금악이 해말섬의 지맥을 파괴하고 인간을 절멸시키려는 위협에 맞서 주인공 미래와 조력자들이 저항하는 서사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대립은 유교 의(義)의 개념, 즉 ‘불의에 대한 저항’과 ‘정의 구현’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의(義)는 한자로 ‘옳다’, ‘마땅하다’라는 뜻을 갖는다. 단순히 법이나 규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상황 속에서 무엇이 도덕적으로 옳은지를 판단하고 실천하는 태도를 말한다. 작품 역시 단순히 선과 악의 대결을 넘어, 개인의 선택과 희생이 어떻게 공동체의 정의를 실현하는지를 제시한다. 인물들이 불의한 상황에 맞서 싸우고, 그 과정에서 겪는 고난과 성장은 ‘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내면의 갈등과 극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림 3. 백금악과 백면 [안소라 교수 제공]
그림 3. 백금악과 백면 [안소라 교수 제공]


                       


3. 예(禮) – 질서의 미학


예(禮)는 인간관계와 사회를 조화롭게 하는 규범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관혼상제(冠婚喪祭)가 예(禮)의 예시라 할 수 있다. 우리 일상생활의 규칙이나 규범 또한 예라 말할 수 있는데, 예는 단순한 형식주의가 아닌, 내면의 도덕성을 외적으로 구현하고 사회적 조화를 이루는 핵심 기제이다. 미래는 어느 한순간도 예를 벗어나 행동하지 않는다. 인간들에게나 도깨비들에게나 항상 공손히 인사를 한다. 이는 아주 사소한 예(禮)의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작품에서 작가는 수많은 신괴, 지괴, 신, 귀 등 다양한 영적 존재와 그들 간의 위계를 섬세하게 묘사하는데, 이러한 영적 세계의 질서는 사회적 질서와 위계를 강조하는 ‘예’의 개념과 유사한 구조를 가진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이 영적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영적 존재들 또한 인간 세상에 개입하는 상호작용은 ‘예’가 인간과 신, 자연 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방식과 연결된다.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이러한 영적 질서를 통해 인간 세상의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궁극적으로는 혼돈 속에서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림 4. 땅의 신령 토백이(산삼)과 도깨비(고요)들 [안소라 교수 제공]
그림 4. 땅의 신령 토백이(산삼)과 도깨비(고요)들 [안소라 교수 제공]


 


– 계 속 –


 


필자 안소라 교수

공주대학교 만화예술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웹툰의 컬러 역할 연구> 로 석사를, <찰스 슐츠의 <PEANUTS> 분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만화영상진흥원 웹툰창작체험관 심화과정 교육 교재 집필 및 조안 한국어 교재 삽화, 웅직백제역사관 일러스트 , 한중일 문화교류 일러스트 등을 제작하였다. 공주대학교, 배재대학교, 한국 영상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현재 대덕대학교 K-웹툰과에서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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