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컷의 물음 04-3] 만화에서 만나는 동서양 인문학
<미래의 골동품 가게>와 유교의 세계관 :
시각적 판타지의 사유 공간이 된 유교적 세계관
작품 : <미래의 골동품 가게> ∣ 철학 : 유교의 세계관
대덕대학교 안소라 교수
앞선 칼럼에서는 <미래의 골동품 가게>를 불교의 윤회와 업보 개념으로 해석하며 고통의 반복과 해탈의 가능성에 대해 서술하였다. 그리고 유교의 세계관 중 인(仁), 의(義), 예(禮)를 서술하며 작가가 어떻게 동양의 대표적인 사상을 작품에 녹여냈는지 주목해보았다. 이번에는 지난 글에 이어 유교 사유의 중심에 놓인 개념인 ‘원형리정(元亨利貞)’을 중심으로 이 작품이 지닌 독창적인 서사 구조와 세계관을 알아보려고 한다.
‘원형리정(元亨利貞)’은 <주역>에 나오는 말로, 주역 64괘 중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건(乾)’괘의 효사(爻辭)에 나타난다.(건괘는 64괘 중 제1괘에 해당하며, 전체 주역 체계의 시작점이자 가장 근본적인 원리로 여겨진다. 효사는 괘를 구성하는 한 줄 한 줄의 기본 단위이다.) 이는 원(元, 시작), 형(亨, 성장), 리(利, 이로움), 정(貞, 바름)이라는 네 가지 사덕(四德)을 뜻하며, 단순한 서사의 흐름을 넘어 만물의 생성과 성숙, 작용, 완성을 나타내는 자연적 순환의 리듬이자 인간 존재의 윤리적 리듬을 뜻한다. 이는 겉보기에는 흔히 말하는 전통적인 서사 구조인 발단-전개-절정-결말과 유사해 보일 수 있으나,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조금 다른 위치에 서있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서사처럼 선형적인 시간 속에서 사건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고통이 현재와 만나고 미래로 되돌아오는 회귀적이고 중층적인 구조를 따른다. 이때 ‘원형리정’은 단순한 이야기의 틀이라기보다, 인물들이 세계와 맺는 도덕적 태도와 존재론적 변화를 설명하는 철학적 리듬으로 작동한다.
4. 원(元) : 저주의 기원과 삶의 근원
<미래의 골동품 가게>의 이야기는 대개 한 가지 저주, 악귀, 인간 욕망의 ‘기원’을 파헤치는 것에서 시작된다. 고통을 호소하는 자, 욕망에 빠진 인간, 오래된 물건, 그리고 그것이 지닌 과거의 이야기. 이 모든 것은 근원[元]에 대한 질문으로 연결된다. 해말섬의 저주, 서연화가 섬마을 사람들에게 갖는 안타까움, 미래 부모의 죽음, 거북이의 조력, 성인이 된 장윤호의 사연 등 모든 사건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 일어난 일’의 파급으로 시작된다. 한 예로 ‘암화’편에서 거북이는 토백이에게 크게 다친 장윤호에게 삼을 먹여서 치유시키라고 한다. 작가는 이 장면을 단순한 신체회복이 아닌 장윤호라는 인물의 내면적 성장과 미래를 암시하는 장치로 활용한다. 여기서 ‘원’은 단지 이야기의 발단이 아니라 사건이 일어나는 윤리적 뿌리이기도 하다.
왜 고통이 발생했는가? 그 고통의 시작은 어디에 있었는가?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이는 앞선 칼럼에서 살펴본 불교의 ‘업(業)’ 개념과도 맞물리며, 고통의 현재는 언제나 과거로부터 비롯된 결과라는 철학적 인식을 공유한다.
5. 형(亨) : 관계의 확장
‘형(亨)’은 <주역>과 유교에서 만물이 순조롭게 뻗어나가고, 서로 소통하며 성장하는 단계를 뜻한다. <미래의 골동품 가게> 세계에서 이 ‘형’은 인물들의 관계가 확장되고, 공동체적 의미가 성장해가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특히 도미래가 단독으로 악귀와 맞서는 초기의 에피소드에서 점차 을지현오(이하 거북이), 한목, 윤호와 같은 인물들과 관계를 맺고 연대를 형성해가는 흐름이 ‘형’의 실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미래는 처음에는 할머니 서연화의 유산을 이은 무당으로, 비교적 고립된 채 퇴마 의식을 행한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거북이와의 협력, 한목과의 감정적 유대, 장윤호와의 인연은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미래가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들이다. 그들이 함께 있을 때 미래는 더 강해지고, 더 깊이 사유하며, 더 멀리 나아간다.
![[그림 2] 거북이(을지현오)는 북시의 왕족으로 인간사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네이버웹툰 '미래의 골동품 가게' 화면 갈무리]](https://i0.wp.com/livingsblog.com/wp-content/uploads/2025/08/1311_2655_368.png?w=900)
이는 거북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거북이는 대표적인 ‘형’의 확장 사례다. 거북이는 본래 무속 세계와 무관했던 인물이지만 미래와의 만남을 통해 점차 퇴마 세계로 들어오고, 여러 인물들과 관계를 형성한다. 단순한 설정상의 변화가 아니라, 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세계가 확장되는 방식을 은유한다. 악귀에 맞서 싸우는 전투가 단순히 물리적인 싸움이 아니라, 타인과 관계를 맺고 스스로를 확장해가는 내면의 여정임을 의미하는 셈이다. 또한, ‘암화’편에서 장윤호가 미래와 다시 재회하고, 어린 시절 도움을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은 ‘형’이 현재의 관계에 국한되지 않고, 시간을 건너뛰며 기억과 과거까지 아우르는 유대의 힘임을 보여준다. 한번 맺은 인연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그것이 결국 미래의 힘이 되고, 악의 거대한 힘을 넘어서게 만드는 기반이 된다.
그렇기에 이 작품에서 형(亨)은 단순한 ‘성장’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를 통해 세계를 넓히는 경험, 그리고 타인과의 연결을 통해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힘과 의미를 발견해가는 과정이다. 여기서 퇴마는 단지 악을 물리치는 행동이 아니라, 혼란한 세계에서 타인과 손을 잡고 조화를 이루는 일이다.
6. 리(利) : 해악의 정지와 진정한 이로움
작품이 진행될수록 미래가 마주하는 존재들은 단지 원혼이 아니게 된다. 왕권에 대한 집착, 지배의 욕망, 세상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파괴적 충동이 집약된 존재들이다. 백면, 백금악, 그리고 그 외 수많은 ‘악의 형상’들은 인간 내면에서 비롯된 극단적 이기심의 결과로 나타난다. 이들은 개인적인 원한을 넘어 세상을 병들게 하고 질서를 무너뜨리는 존재들이다. 유교에서 ‘리(利)’는 단지 물질적 이익이나 효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 전체에 이로운 방향, 즉 해악을 멈추고 올바른 흐름으로 되돌리는 일을 뜻한다. 도미래가 퇴마를 통해 제거하는 것은 귀신 그 자체가 아니라, 욕망의 왜곡으로 만들어진 파괴적 구조이며, 그녀의 행위는 단순한 구제가 아니라 사회의 해로운 요소를 멈추는 윤리적 실천이다. 미래는 그 싸움에서 언제나 힘이 아닌 측은지심, 의로움, 그리고 질서를 지키려는 예(禮)의 태도로 임한다. 이로 인해 그녀가 이루는 ‘이로움’은 곧 파괴의 확산을 막고 조화로운 질서를 복원하는 행위가 된다. 이는 유교의 공적 차원인 ‘리(利)’, 즉 전체 질서에 유익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덕목과 맞닿아 있다.
7. 정(貞) : 바름과 지킴의 결단
유교에서 ‘정(貞)’은 변화에도 지켜야 할 ‘바름’의 중심을 뜻한다. <미래의 골동품 가게>에서 도미래의 퇴마 의식은 단순한 선악 대결이 아니다. 그녀의 싸움은 무너진 질서를 바로잡고, 인간과 세계 사이의 조화를 회복하는 윤리적 실천에 가깝다.
작품 속 악귀들은 억울한 죽음이나 개인의 욕망, 권력에 의해 탄생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세계의 이치를 무너뜨리고, 인간사에 균열을 만든다. 도미래는 이들에게 그저 맞서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말하고, 듣고, 파악하며 질서를 복원하려 한다.
이처럼 ‘정(貞)’은 사건의 마무리이자, 인간이 지켜야 할 마지막 기준이다. 도미래가 선택하는 퇴마의 방식은, 단순한 제거가 아닌 다시는 같은 고통이 반복되지 않도록 ‘세상의 바름’을 되돌리는 것이다.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이 과정을 통해 유교적 ‘정’의 의미인 끝까지 지켜야 할 도리를 현대적으로 풀어낸다.
![[그림 3] '666'편에서 자신을 도와 준 도깨비들을 잃고 더 이상의 희생이 없도록 하려는 도미래. [네이버웹툰 '미래의 골동품 가게' 화면 갈무리]](https://i0.wp.com/livingsblog.com/wp-content/uploads/2025/08/1311_2656_373.png?w=900)
이렇듯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원형리정’이라는 유교적 사유를 통해 하나의 이야기를 단순히 시작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기원을 묻고, 관계를 확장하며, 공동체에 이로움을 주고, 끝내 스스로의 중심을 지키는 존재론적 서사를 구축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것은 발단-전개-절정-결말이라는 보편적인 플롯 구조로 설명하지 못하는 차원을 담는다.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선형적인 성장이나 갈등 해결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인간과 비인간, 정과 원한, 공동체와 고립 사이를 순환하는 리듬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의 골동품 가게>는 단순한 오컬트물이 아니라, 한국적 유교 세계관의 구조를 시각적 판타지로 변환한 사유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필자 안소라 교수
공주대학교 만화예술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웹툰의 컬러 역할 연구> 로 석사를, <찰스 슐츠의 <PEANUTS> 분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만화영상진흥원 웹툰창작체험관 심화과정 교육 교재 집필 및 조안 한국어 교재 삽화, 웅직백제역사관 일러스트 , 한중일 문화교류 일러스트 등을 제작하였다. 공주대학교, 배재대학교, 한국 영상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현재 대덕대학교 K-웹툰과에서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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