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폐쇄성폐질환(COPD)는 흡연·미세먼지 등으로 폐가 구조적으로 망가져 호흡곤란 증상을 동반하는 호흡기 질환이다. 폐 염증반응으로 공기가 드나드는 통로인 기관지가 두꺼워지고 폐 조직의 탄성이 떨어지면서 딱딱하게 굳는다. 진행성 질환인 COPD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더 나빠진다. 폐는 한 번 망가지면 회복하지 못하는 비가역적 특징을 가졌다. 게다가 COPD를 앓고 있으면 흡연 여부와 상관없이 한국인 암 사망 원인 1위인 폐암 발생 위험이 약 2~3배 높다. COPD가 폐암 발생 위험을 높이는 독립적 위험인자라는 보고도 있다. 세계폐암의 날(8월 1일)을 계기로 폐암 위험을 높이는 COPD에 대해 짚어봤다.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진행성 질환인 COPD는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심해진다. 질환이 진행하면서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은 호흡곤란, 쌕쌕 거리는 숨소리, 끊이지 않는 기침·가래 같은 호흡기 증상을 동반한다. 특히 만성적 염증 반응으로 코에서 폐로 연결된 통로인 기도가 좁아져 편안하게 숨쉬기 어려워진다. COPD로 폐기능이 떨어지면 마치 빨대로 숨을 쉬는 것처럼 호흡곤란이 심해져 산책, 식사, 목욕 같은 일상생활도 어려워 한다. COPD로 폐활량이 줄어 몇 걸음만 걸어도 숨을 쌕쌕거리며 몰아쉬거나 눈앞에 있는 촛불도 끄기 어려울 만큼 폐 기능이 떨어진다. 결국 호흡곤란 증상이 심해져 사망에 이른다. COPD로 인한 국내 사회경제적 비용 부담은 연 1조 4000억원에 달한다는 보고도 있다. COPD를 고작 숨을 헐떡거리는 정도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암, 심뇌혈관질환, 만성 호흡기 질환, 당뇨병을 질병 부담이 높은 4대 만성 질환으로 분류했다. 강동성심병원 호흡기내과 박용범 교수는 “COPD는 전세계 사망원인 3위에 기록될 만큼 생명을 위협하는 매우 치명적인 질환”이라고 말했다.
평지 걷는데 숨차면 폐기능 검사 받아야
낯설게 느껴지지만 COPD를 앓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국내 40세 이상에서 COPD 유병률은 10.8%다. 10명중 1명은 COPD 환자라는 의미다. 하지만 질환 인지율은 낮다. 의사의 진단을 받은 COPD 인지율은 2.5%에 불과하다. 고혈압 인지율 71.4%, 당뇨병 65.2%, 이상지질혈증 61.7%와 비교해 차이가 분명하다. COPD로 폐기능이 나빠지고 있는데도 제대로 치료받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고령층은 호흡곤란 같은 호흡기 증상이 있어도 나이가 들어 체력이 떨어진 것으로 생각해 심각하게 폐기능이 나빠진 다음에 진단·치료를 받는다. 기침을 오래동안 하거나 계단 1개층만 오르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숨이 차고 힘들어 병의원을 찾는 식이다. 이때는 폐기능이 50%이하로 떨어진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만약 동년배와 같이 걸었을 때 항상 혼자만 뒤처지거나 평지를 걷는데도 숨이 차다면 폐기능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COPD 같은 호흡기 질환은 진단이 늦어질수록 치료 효과가 제한적이다.
COPD는 적극적 치료를 통한 증상 관리가 중요하다. 핵심은 급격하게 폐기능이 떨어져 사망 위험을 높이는 급성 악화(Exacerbation)를 막는 것이다. 급성 악화가 발생하면 돌발적으로 숨쉬기가 어려워지고, 호흡기 증상이 심해지고, 폐활량이 점진적으로 줄면서 폐기능이 떨어진다. 박용범 교수는 “COPD가 진행되면서 급성 악화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로 인한 일상 활동 제한된다”고 말했다. 특히 숨을 쉬지 못해 병원 응급실을 방문하거나 입원 치료도 불가피해진다. 폐기능이 약해진 상태에서는 급성 악화 발생 빈도가 늘어나고 중증도가 높아지면서 사망 위험이 커지는 악순환을 겪는다. COPD 환자가 첫 번째 중증 급성 악화를 겪은 후 3.6년 내 사망률이 최대 50%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급성 악화를 3회 이상 경험한 환자의 사망률은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 4.3배 높게 나타났다. 또 뇌졸중, 심부전 등 중증 심혈관계 사건 발생 위험이 6배 이상 높았다. 급성 악화를 막아 남아있는 호흡 능력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
급성 악화를 겪는 COPD 환자의 일상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연속이다. 60대 COPD 환자인 A씨의 사례가 그렇다. 그는 심각한 호흡곤란 증상으로 병원 응급실로 실려갔다 퇴원하는 일이 다반사다. 상태가 나아져 퇴원해도 힘들긴 매한가지다. 빨대로 숨을 쉬는 것처럼 폐 기능이 떨어져 있어 안방 침대에서 거실 쇼파로 이동하는 짧은 거리조차 마치 마라톤을 완주한 것처럼 격렬한 호흡곤란에 시달린다. 심할 땐 말한마디 하기 어려울 정도로 숨을 몰아쉰다. 외출도 두렵다. 길을 걷다가 갑작스런 호흡마비 증상이 나타났는데 공중화장실에 앉아 2시간 넘게 숨을 가다듬어도 힘들었다. 지나가단 시민이 신고해 병원에 긴급 이송됐다. 생사를 오가는 급성 악화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언제 호흡이 멈출지 모른다는 무서움을 안고 살아간다. 박용범 교수는 “COPD는 단순 호흡기 질환이 아닌 생명과 직결된 질환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COPD에서도 생물학적 제제 도입, 급성 악화율 줄여
현재의 COPD 치료는 기관지 확장제 중심의 단계별 병용 요법이다. 문제는 이같은 치료에도 A씨처럼 COPD 환자의 절반 가량은 증상이 충분히 조절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COPD 분야에 도입된 첫 생물학적 제제인 두필루맙에 주목하는 이유다. COPD로 인한 만성적 호흡기 염증을 없애 폐기능이 개선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생명을 위협하는 급성 악화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 두필루맙은 주요 임상 연구를 통해 COPD 연간 급성 악화율을 위약군 대비 30%가량 낮추는 임상적 유효성을 입증했다. 이를 토대로 세계만성폐쇄성폐질환기구(GOLD), 대한결핵및호흡기학회 등 국내외 주요 학회에서 진료지침을 통해 급성 악화 고위험군에게 두필루맙 치료를 권고한다. 다만 국내에서는 두필루맙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COPD 적기 치료가 어려운 상황이다. 박용범 교수는 “숨을 쉬는 것은 생존을 위한 기본권이지만 COPD 환자는 이런 기본권이 박탈된 상태”라며 “COPD 환자에게 실질적 치료 환경 개선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