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절개, 빠른 회복, 정교한 조작. 현재 수술실의 풍경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복부를 크게 열고 집도의의 손기술에만 의존하던 환경에서 미세한 손떨림까지 제어하는 로봇 팔이 수술을 돕는 시대가 열렸다. 환자 입장에선 통증과 흉터 부담이 줄고 회복은 빨라졌다. 의사는 안정적인 자세에서 더 정밀한 시야로 수술에 임할 수 있다. 로봇 수술이 ‘차세대 수술의 표준’으로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로봇만으로 완성되는 수술은 없다. 풍부한 임상 경험과 의료진의 팀워크가 더해질 때 로봇 수술은 그 진가를 발휘한다. 고려대안암병원은 국내 로봇 수술을 선도해 온 거점 의료기관이다. 2007년 로봇수술센터를 개소한 이후 다양한 진료과에 로봇 수술을 적용하며 표준 술기를 만들어 왔다. 고려대안암병원 강성구 로봇수술센터장(비뇨의학과 교수)은 “지난해에는 누적 수술 건수 1만례를 돌파했고, 아시아 최초로 최신 로봇 장비인 다빈치5를 도입했다”며 “안암병원은 국내외 최초·최다 기록을 이어가며 로봇 수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고 말했다.
-로봇 수술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이점이 크기 때문이다. 로봇 수술은 최소침습 수술의 결정판이다. 피부에 작은 구멍을 내고 로봇 팔을 삽입해 수술을 진행한다. 로봇 팔을 통해 사람 손이 닿기 어려운 깊은 부위까지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다. 환자 입장에선 통증과 흉터가 적고 회복을 앞당길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의료진은 어떤가.
“로봇 수술은 환자뿐 아니라 의료진에게도 큰 변화를 줬다. 수술의 정확성과 집도의의 편의성이 크게 개선됐다. 개복이나 복강경 수술처럼 집도의가 장시간 허리를 굽히고 손끝 감각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조종석에 앉아 3차원 영상을 보며 정밀하게 집도할 수 있어 피로도는 줄고 집중력은 높아졌다. 신체 구조물이 또렷하게 보이는 만큼 미세한 혈관이나 신경을 섬세하게 박리할 때 성취감도 크게 느껴진다.”
고려대안암병원 로봇수술센터는 개소 이후 굵직한 성과를 쌓아왔다. 초기에는 대장·직장암, 전립샘암에서 출발해 로봇 수술의 치료 표준을 마련했다. 당시 대장항문외과 김선한 교수팀이 개발한 대장·직장암 로봇 수술법은 세계 매뉴얼로 채택됐다. 이어 ▶로봇 경구 갑상샘 수술 세계 최초 개발 ▶로봇 근치적 방광 절제술 및 총체내요로전환술 아시아 최초·최다 시행 ▶흉터 없는 로봇 유방 재건술 국내 최초 도입 등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누적 로봇 수술 1만례를 넘겼다.
“숫자 그 자체보다 ‘꾸준히 성장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도 1000례 이상의 전립샘암 수술을 집도했다. 이는 로봇 수술이 보편적인 치료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과다. 과거 로봇 수술은 일부 질환에 한정됐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분야로 확대됐다.”
최근 도입한 수술 로봇의 특징은.“안암병원은 늘 앞선 장비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장비에 대한 투자가 곧 환자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이유에서다. 다빈치5는 기존 로봇보다 정밀성과 안정성이 크게 향상된 기기로 평가받는다. ‘포스 피드백(force feedback)’ 기능이 탑재돼 집도의가 로봇 팔로 조직을 잡으면 실제 촉감을 느낄 수 있다. 혈관이나 신경을 다룰 때 손상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강성구 센터장은 지난 5월 다빈치5를 활용해 국제 원격 생중계 수술을 집도했다. 필리핀 의료진이 실시간으로 전립샘암 수술 과정을 보며 술기를 학습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4월에는 일산백병원에서 이뤄진 신장 부분절제술을 원격으로 지도했다. 원격 수술 지도는 수술 장면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로봇 화면 위에 가이드라인을 표시하거나 구두로 술기를 안내하는 방식이다. 공간 제약 없이 효과적으로 교육과 협진을 이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연 사례다.
-안암병원이 구축한 협업 구조는.
“로봇 수술은 집도의 혼자만 잘해서 되는 수술이 아니다. 협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없다. 로봇 수술 전문 간호사, 마취과 전문의, 수술 코디네이터, 장비 엔지니어 등 각 분야 전문가가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그래야 안전한 수술이 가능하고, 응급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안암병원은 이런 팀워크 문화가 체계적으로 잘 정착돼 있어 복잡한 수술에도 자신 있게 도전할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머지않아 복강경이 필요한 대부분의 수술실에 로봇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관건은 가격 경쟁력인데, 새로운 로봇이 속속 개발되면서 확산 속도는 더 빨라질 것으로 본다. 안암병원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대해 젊은 의료진을 적극적으로 양성하고, 새로운 술기를 빠르게 도입해 환자 치료에 앞장설 계획이다. 로봇 수술이 당연한 표준이 되는 시대를 준비하는 게 우리의 목표다.”
신영경 기자 shin.youngk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