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켓몬스터’와 함께 일본의 대표 IP로 꼽히는 ‘디지몬’ 시리즈가 8년 만에 PC, 콘솔 플랫폼 게임으로 돌아왔다. 초기에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지만 직접 즐겨본 결과 꽤 근사한 디지몬 게임이었다.
반다이남코엔터테인먼트의 신작 ‘디지몬 스토리 타임 스트레인저’는 단순히 향수를 자극하는 수준을 넘어 그래픽, 전투, 스토리 삼박자를 모두 강화한 정통 JRPG로 시리즈의 새 전환점을 제시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토리 구성는 여타 디지몬에서 봐왔던 스토리와 유사하다. 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가 정보전과 해킹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이번엔 시간의 균열 속에서 진화하는 감정과 선택이 중심이다.
도쿄 신주쿠에서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출현하고 어느 순간 도시가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주인공은 비밀 조직 ADAMAS의 요원으로 이 사건과 관련된 이상 현상을 조사하다가 8년 전 과거로 소환된다. 이 과정에서 인간 세계와 디지털 세계 ‘일리아스’ 사이에 얽힌 비밀과 연결된 여러 디지몬과 마주하게 된다. 디지몬의 종류는 약 450종이다.
게임 구조는 일반적인 턴제 RPG다. 도쿄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는 아틀러스의 페르소나 시리즈가 떠올랐다. 다만 아이템을 사용하거나 디지몬을 교체할 때 턴이 넘어가지 않아서 여타 JRPG보다 캐주얼한 난이도를 자랑했다.
물론 터무니 없이 높은 HP로 지루함을 야기하는 보스 전투 등 밸런스나 전투 템포의 단조로움 같은 아쉬움도 남지만 “디지몬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확신은 생겼다. 오랜 팬에게는 반가운 귀환작이자, 신규 유저에게는 디지몬 IP 입문용으로 훌륭한 게임이다.
- · 출시일: 10월 2일
- · 장르: 턴제 RPG
- · 유통: 반다이남코
- · 개발: 반다이남코
- · 버전: 론칭 빌드
- · 플레이 타임: 약 40시간
■ 올드팬의 기억을 불러오는 세계관

타임 스트레인저는 디지털 세계 일리아스와 현실 세계를 넘나드는 요원 ‘ADAMAS’ 소속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다. 종말급 재앙을 막기 위해 8년 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주인공은 소녀 ‘미소노 이노리’와 휴머노이드 디지몬 ‘아이기오몬’과 함께 사건의 진실을 추적한다.
스타터 디지몬에는 ‘파닥몬’, ‘쉬라몬’, ‘피코데블몬’ 등 애니메이션 ‘디지몬 어드벤처’의 친숙한 얼굴들이 등장하며 2000년대 초 디지몬 팬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전작 ‘해커스 메모리’와 동일한 작화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폭발적인 타워 붕괴나 스킬 연출 등 시각 효과는 한층 세련되게 다듬어졌다.
또한 현존 디지몬들이 대부분 등장하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어렸을 적 추억이 게임 플레이 내내 새록새록 떠오른 달까. 일리아스에서는 디지몬 어드벤처와 디지몬 제로투(파워 디지몬)를 비롯한 기존 시리즈의 디지몬들이 그룹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 전략적 깊이 더한 턴제 전투

전투는 기존의 단순한 턴제 시스템에서 벗어나 전략성과 템포를 모두 잡았다. 전투 전 선공을 잡는 ‘디지어택’, 대기 중 체력을 회복하는 ‘리제너레이션 모드’, 인간 요원이 개입하는 ‘크로스 아츠’ 시스템은 반복적인 전투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또한 전통의 바이러스, 백신, 데이터 삼속성에 더해 불, 전기, 얼음 등 10가지 자연 속성이 도입돼 조합의 폭이 크게 넓어졌다. 약점 상성을 퍼즐처럼 활용해 보스를 빠르게 제압하는 손맛이 상당하며, 속성과 기술 조합을 연구하는 재미가 깊다.
플레이어는 최대 6마리의 디지몬으로 파티를 구성할 수 있으며 전투 속도 조절이나 자동 전투 기능으로 피로감을 줄였다. 각각의 디지몬이 개성적인 스킬과 모션을 지녀 전투를 시각적으로 즐기는 재미도 충분하다.
■ 진화와 퇴화가 반복되는 육성의 재미

디지몬 시리즈의 상징인 진화 시스템은 타임 스트레인저에서 다시 한번 진화했다. 각 디지몬은 여러 갈래의 진화 트리를 지니며 플레이어는 특정 능력치나 랭크 조건을 충족해 자유롭게 진화, 퇴화를 반복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누적 능력치가 다음 형태로 전승되기 때문에, 실험적인 육성이 오히려 보상이 된다. 전투에서 디지몬을 쓰러뜨리면 자동으로 ‘스캔’이 진행되어, 100% 이상 시 변환을 통해 동료로 확보할 수 있다. 실수로 적을 쓰러뜨려도 포획 기회를 잃지 않는다는 점은 쾌적한 개선이다.
디지몬의 ‘성격’ 시스템도 새로 추가됐다. 자애, 용맹, 지계, 우호 네 가지 카테고리가 존재하며, 세부 성격에 따라 능력 성장 방향이 달라진다.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성격을 바꾸는 요소도 독특해, 유대감 시스템을 강화한다.
전작과 다른 점이라면 진화, 퇴화가 빠른 성장에 필수가 아니다. 아쉬운 점에서 후술할 내용이지만 유료로 이용할 수 있는 ‘아우터 던전’과 ‘디지팜’을 활용하는 것이 훨씬 유용하다.
■ 성장 관련 콘텐츠는 훌륭하지만 부가 콘텐츠는 부실

디지팜 시스템을 활용해 디지몬을 배치하면 자동으로 경험치를 얻고, 스탯을 조정할 수도 있다. 트레이닝 시설, 음식 보상, 유대도 관리가 가능해 방치형 육성의 재미까지 더했다.
디지팜에서 특수 훈련을 반복하면 능력치와 성격까지 빠르게 조절 가능하기 때문에 원하는 디지몬을 진화시킬 때 유용하다. 전작보다 성장 난이도의 허들이 대폭 낮아진 셈이다.
사이드 퀘스트와 던전 탐험도 풍부하다. 귀여운 디지몬들의 일상을 엿보는 퀘스트부터, 고난도 전투를 요구하는 ‘엔드 게임’ 콘텐츠까지 구성돼 있다. 특히 사이드 미션을 통해 얻는 ‘아노말리 포인트’는 진화 해금과 능력 강화에 직접 연결돼, 단순 반복이 아닌 의미 있는 성장 동기를 부여한다.
보너스로 수록된 카드 미니게임은 실제 디지몬 카드 일러스트를 사용해 보는 재미가 있다. 다만 카드 미니게임을 포함한 부가 퀘스트들의 분량과 실질적인 보상 요소가 부족해 장기적인 동기 부여는 다소 약하다.
■ 세대 교체를 이룬 완성형 디지몬 RPG

타임 스트레인저는 단순히 과거의 향수를 되살리는 작품이 아니다. 디지몬이라는 IP가 세대의 벽을 넘어 지금의 RPG 시장에서도 여전히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완성도 높은 전투 시스템과 디지털 세계의 재해석, 그리고 시간이라는 새로운 축을 더한 서사는 앞으로의 시리즈 방향성을 제시하는 첫걸음처럼 느껴졌다.
가장 큰 성취는 디지몬의 게임이 한층 진화하면서 독자적 정체성을 확립했다는 점이다. 그래픽, 전투, 스토리 전반에서 보여준 발전은 그 한계를 뛰어넘는다. 복잡한 세계관, 유기적으로 설계된 전투, 깊이 있는 육성 시스템이 어우러지며 시리즈 최고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줬다. 향후 출시될 디지몬 게임에 기대감도 불어넣었다.
물론 아쉬운 점도 분명 있다. 사전 예약에서 얼티메이트 팩만 판매했는데 유료 아우터 던전과 BGM을 제외한 방침은 게이머들에게 불쾌감을 안겼다.
또한 메인 디지몬이 아이기오몬으로 고정되니까 속성에서의 자유도도 떨어졌다. 메인 캐릭터의 속성 접대 때문에 주요 적들의 속성이 대부분 백신, 번개 약점으로 고정됐기 때문이다. 백신 외 캐릭터가 활약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의미다.
초궁극체의 조건도 다소 아쉽다. 우선 서브 퀘스트를 진행하지 않으면 궁극체 조건도 달성할 수 없다. 궁극체의 조건은 에이전트 7레벨, 초궁극체는 에이전트 8레벨이다. 거의 엔딩 시점에 도달할 수 있는 레벨이라서 오랜 시간 사용하지 못한다. 6레벨, 7레벨로만 조정됐으면 애써 진화시킨 디지몬들을 스토리에서 오래 사용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하지만 시리즈 팬이든, 신규 유저든 이 게임은 디지몬이라는 세계관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신호탄이다. 2000년대 디지몬 어드벤처로 성장한 팬이라면 디지몬 스토리 타임 스트레인저는 세대를 잇는 최고의 귀환작으로 손색이 없다.
기자도 키메라몬, 임페리얼 드라몬, 실피몬 등 가장 좋아하는 디지몬 제로투(파워 디지몬)의 친구들을 전부 만나니까 플레이 내내 즐거웠다. 반다이남코가 타임 스트레인저를 기점으로 암흑진화가 아닌 정상 진화로 팬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하길 바란다.
장점
· 다양한 디지몬 종류
· 캐주얼한 전투 난이도
· 대폭 낮아진 디지몬 성장 허들
단점
· 유료 콘텐츠 판매 방식
· 부실한 서브 콘텐츠, UI 구조
· 30 프레임 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