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해당 기사는 명조의 2.7버전 조수 임무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쿠로게임즈 ‘명조: 워더링 웨이브’가 2.7 버전을 통해 길고 길었던 리나시타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리나시타의 결말은 예상보다 훨씬 훌륭했다. 감상하면서 “이게 챕터 마무리의 정석이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적절한 떡밥 회수, 수려하게 뽑은 연출, 서브컬처 필수 요소인 캐릭터와의 유대까지 빠짐없이 꽉꽉 넣었다.
2.6 버전에서는 메인 스토리인 ‘조수 임무’가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 출시했다. 콘텐츠 완급 조절을 위한 구성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반부 스토리가 끝나도 후반부 스토리가 남아있기에 뭔가 시원하게 끝난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버전에서의 피드백 덕분일까. 2.7 버전 조수 임무는 처음부터 끝까지 깔끔하게 끝났다. 공식 방송에서도 “2.7버전은 리나시타의 화려한 피날레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는데, 그 말이 정확했다. 1.0 버전부터 지금까지 명조와 함께한 유저로써 게임에 감동을 받기에 충분한 서사였다.
■ 주변 인물들 서사를 놓치지 않은 꼼꼼한 스토리


스토리를 진행하며 초반에 ‘아비디우스’를 만나게 된다. 분명 2.6버전 후반부 스토리를 진행할 때만 해도 완전히 폐인이 된듯한 모습이었다. 그럴만한 이유는 충분히 납득이 된다. 본인의 과거가 누군가에게 조작된 사실이고, 자신이 무슨 인물인지조차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면 충분히 미쳐버릴만하다.
그럼에도 아비디우스는 당당히 고개를 들고 “자신은 완벽한 공백이기에 자신의 존재에 대해 써 내려갈 수 있는 기회다”라며 희망찬 모습을 잃지 않는다. 명조 스토리에서는 주기적으로 ‘인간찬가’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인간은 위대하며, 희망을 잃지 않고 의미 있는 행동을 이어나간다는 점을 스토리 내내 강조한다.
이전 스토리에서 퇴장했던 ‘펜리코’도 끝내 회개하며 리나시타 주민들을 위해 희생했고, 아비디우스도 결국 그 끝이 좋지는 않았지만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위대한 가능성을 증명하며 떠났다.
작중 ‘크리스토포로’가 계속 ‘운명’이라는 키워드를 언급한다. 그러나 작중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미 정해진 운명들을 부정하며 스스로 길을 개척했다. ‘유노’에 관련된 이야기에서도 강조했던 주제다. 이런 주변 인물들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서사에 활용한 점이 더욱 몰입감을 높여줬다.
■ 주인공 혼자라면 불가능했던 이야기


명조에서 방랑자는 늘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같은 역할이었다. 아무리 힘든 사건도 방랑자가 개입하면 활로가 보이고, 극복할 가능성이 열렸다. 종종 위기에 처하기는 했지만 결국 어떻게든 극복했으며 스스로가 위험에 처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 스토리에서는 방랑자가 처음으로 위기에 빠진다. 명식의 대행자가 되고, 정신이 무너지며 사실상 그대로 리타이어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방랑자가 그간 도와준 인연들로 인해 그 위기를 극복했다.
개발진이 금주 시절 한이 맺혔는지 일명 ‘금벤저스’라 부르는 연출이 다시금 등장했다. 사실 그 시절 금벤저스는 연출적인 퀄리티도 많이 낮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으로는 캐릭터들과의 서사와 유대가 부족했다. “그래서 얘가 누군데?”라는 반응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이번 리나시타에서는 해당 등장인물들에 알아갈 시간이 충분했고, 실제로 많은 사건사고들을 함께 해결했다. 여기에 위기 상황에 빠졌을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와주러 오는 동료들이라는 믿음까지 합쳐지니 뻔하지만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는 연출로 진화했다.
■ 역시 명조는 연출 맛집, 컷씬 맛집


명조 스토리 연출은 꾸준히 퀄리티가 상승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스토리 컷씬도, 실제 플레이로 진행하는 인게임 연출 모두 날이 갈수록 퀄리티가 좋아졌다. 흔히들 말하는 “뽕이 차오르게 만드는” 연출을 아주 잘 사용한다.
스토리 컷씬은 당연히 퀄리티가 높다. 명조 특유 액션 연출을 듬뿍 담은 맛있는 미식이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입을 벌리며 자연스럽게 긴장감이 올라간다. 영상들도 몰입감 있게 만들었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청했다.
제일 감탄이 나왔던 부분은 방랑자가 위기에 빠졌을 때 갈브레나와의 대화 파트였다. 익숙한 BGM이 들리며 어딘가 낯이 익은 바위가 나온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로그인하기 전 방랑자가 걸터앉아 있는 바위와 똑같이 생겼다. 뒷배경도 같다. 이를 눈치챘을 때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최종전도 보스와 처절하게 싸우는 과정을 잘 담았다. 방랑자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고 동료들과 함께 싸우는듯한 느낌을 특수 스킬 연출로 담아냈다. 이벤트로만 사용했던 합동 스킬 연출을 메인 스토리에서도 사용하니 느낌이 색달랐다.
■ 그래도 아쉬운 점은 있었다


정말 재미있게 즐긴 스토리였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은 있었다. 첫 번째로 갈브레나에 대한 요소다. 갈브레나 자체는 이미 아우구스타 스토리에서 ‘엔젤’이라는 이름으로 떡밥이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갈브레나가 등장하는 배경, 능력 모두 이해는 된다.
다만 스토리 내에서 갈브레나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큰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갈브레나가 가진 능력으로 어떻게든 극복했다. 앞서 방랑자를 스토리 내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 칭했는데, 이번 2.7 스토리에서는 갈브레나가 그 역할을 맡았다.
시간도 갈브레나가 벌어주고, 위기 때도 갈브레나가 구해주고, 목숨을 살려준 은인도 갈브레나다. 정말 말 그대로 다 해줬다. 이로 인해 다른 등장인물들에 비해 등장한 시기가 한참 늦는데도 일종의 비중 몰아주기가 되버렸다.
다른 아쉬운 점으로는 모두 모이는 ‘리벤저스’ 연출을 계속 사용한다는 점이다. 처음 일곱 언덕에서 위기 상황에서 극적으로 등장했을 때는 정말 반가웠는데, 마음의 바다에서 탈출한 직후 또 다시 리벤저스 연출을 사용하며 합류하는 장면에서는 감동이 덜했다. 이미 한 번 겪었던 연출을 연속해서 경험하기에 이전과 같은 감정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소소한 아쉬운 점으로 남았지, 2.7 메인 스토리는 시작부터 끝까지 용두용미로 끝났다. 만약 뉴비가 여기까지 도달해 이 서사를 경험할 수 있다면 충분히 명조라는 게임에 흠뻑 빠질 수 있는 매력을 지녔다. 스토리를 스킵하지 않게 하려면, 스킵할 필요가 없는 스토리를 만들면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버전을 통해, 명조가 그 말을 증명했다는 의견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