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약ㆍ 면접약 둔갑한 심장약…긴장 완화 착각입니다


수능약이라며 오남용되는 심장약은 떨림을 가라앉히는 대신 잘못 복용하면 심장이 멎을 수도 있다. [출처: Gettyimagesbank]

수능약이라며 오남용되는 심장약은 떨림을 가라앉히는 대신 잘못 복용하면 심장이 멎을 수도 있다. [출처: Gettyimagesbank]


두근거림이 사라지면 자신감이 생길까. 요즘 수험생 커뮤니티와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은밀히 회자되는 시험 준비 공식이다. 누군가는 졸업시험을 앞두고, 또 누군가는 대기업 면접을 앞두고 한 알’의 도움을 구한다. 약국 진열대에선 찾아볼 수 없지만 검색창엔  ‘수능약’, ‘면접약’, ‘불안해소약’ 이란 이름으로 떠 있다.


하지만 이 약의 정체는 심혈관 질환 치료제 , 즉 ‘심장약’이다.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약제팀 조은비 약사는 “떨림을 가라앉히는 대신 잘못 복용하면 심장이 멎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안한 마음은 이 위험한 선택을 합리화한다”며 “시험은 마음의 싸움이지 약의 싸움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심장약 ‘인데놀정’, 긴장 완화용으로 악용


문제의 약은 인데놀정(프로프라놀롤)이다. 교감신경의 작용을 억제하는 ‘베타차단제’ 계열 약물로 본래는 고혈압·부정맥·협심증 등 심혈관 질환 치료용으로 개발됐다.


복용 후 1~2시간 이내에 심박수를 낮추고 손 떨림을 완화하는 작용이 있어 이를 이용해 긴장을 없애주는 약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면접 전 복용 팁’ 같은 후기가 공유되며 불안 완화용으로의 오남용이 확산되고 있다.


청소년 처방 5년 새 1.4배 증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0~19세 청소년 대상 인데놀정 처방은 170만 건이 넘는다. 2020년 대비 약 1.4배 증가한 수치다.


조은비 약사는 “인데놀정은 연령 금기로 지정돼 있지 않아 청소년에게도 처방이 가능하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통한 접근성 증가도 처방량 확대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고 지적했다.


증상 없는 사람에겐 ‘독’이 될 수도


인데놀정은 본래 심장의 부담을 덜기 위해 혈압과 맥박을 낮추는 약이다. 하지만 증상이나 기저질환이 없는 사람이 복용하면 저혈압, 서맥(심박수 저하), 어지럼증, 졸림, 두통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인데놀 관련 이상 사례는 1175건에 달했다.


조 약사는 “천식·COPD 환자에게는 호흡곤란을, 당뇨병 환자에게는 저혈당 경고 신호를 가릴 위험이 있다. 혈압이 낮은 사람이나 심박수가 느린 환자에게는 상태를 악화시킬 수 있어 의사 처방 없이의 복용은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약물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한 번 효과를 경험하면 쉽게 의존하게 되고 점점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능력을 잃는다.


조 약사는 “시험이나 면접을 앞둔 긴장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생리 반응이다. 이를 약으로 잠재우려 하기보다 호흡 조절, 명상, 긍정적 자기 암시 같은 훈련이 장기적으로 훨씬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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