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뇌에는 머리카락 굵기의 혈관이 약 10만 개나 촘촘히 얽혀 있다. 이 혈관 중 단 하나만 막히거나 터져도 사람은 순식간에 말을 잃고 몸의 절반이 마비될 수 있다. 터지기 전까지는 아무런 신호도 없다가 평범한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건국대병원 신경과 전영일 교수의 목소리로 뇌혈관질환에 대해 정리했다.
“교수님, 갑자기 쓰러졌어요. 평소엔 멀쩡했는데요.” 응급실로 실려 오는 환자 가족들의 첫마디입니다. 뇌출혈은 그렇게 전조 없이, 순식간에 찾아옵니다. 문제는 ‘골든타임’. 터지고 난 뒤 얼마나 빨리 막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뇌출혈은 말 그대로 뇌 안의 혈관이 터진 상태입니다. 하지만 종류가 조금 다릅니다.첫째, 자발성 뇌출혈은 노화나 고혈압으로 혈관이 약해져서 터지는 경우죠. 뇌 깊숙한 곳에서 피가 새어 나오면, 그 피가 덩어리(혈종)를 만들고 주변 조직을 눌러 손상을 일으킵니다.
피가 조금이면 약물로 녹으며 흡수되지만 양이 많을 때는 개두술로 혈종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뇌압이 치솟아 생명이 위험해집니다.
둘째, 지주막하출혈은 뇌 안의 폭죽과 같습니다. 뇌를 싸고 있는 얇은 막 아래로 피가 퍼지는데 대부분 뇌동맥류가 터진 경우입니다. 터질 때의 압력은 엄청납니다. 순식간에 머리 전체가 통증으로 쪼개질 듯 아프고 심하면 의식을 잃습니다. 이때는 단 1분도 지체해선 안 됩니다. 즉시 병원으로 달려와야 합니다.
뇌압 조절하고 재출혈 막아
뇌출혈은 두 단계로 뇌를 괴롭힙니다. 첫 번째는 직접 손상입니다. 터진 혈관 주변의 뇌 조직이 피의 압력에 밀려 찢기거나 눌립니다. 이건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는 간접 손상, 즉 뇌압 상승입니다. 피가 모이고 부종이 생기면서 뇌를 압박하죠. 이걸 빨리 잡지 못하면 출혈 부위와 상관없는 곳까지 망가집니다. 의식이 흐려지고, 혼수로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치료의 핵심은 뇌압을 조절하고, 재출혈을 막는 것입니다.
환자 상태가 비교적 안정적이라면 약물로 뇌압을 낮추고 상태를 지켜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식이 떨어지고, CT에서 큰 혈종이 보이면 망설임 없이 개두술을 해야 합니다. 두개골을 열어 피를 빼고, 터진 혈관을 막는 수술이죠.
요즘은 출혈 부위가 명확할 때 혈관 내 코일색전술을 하기도 합니다. 혈관 안으로 가느다란 관을 넣어 코일로 막아주는 방법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방사선을 이용해 혈관을 ‘봉합’하는 감마나이프 치료를 병행하기도 합니다.
3㎜ 이하는 정기 추적
뇌출혈은 터지고 나면 늦습니다. 예방이 곧 치료입니다. 가족 중에 뇌동맥류나 뇌출혈 병력이 있다면 40대부터는 MRA나 CTA로 뇌혈관 검사를 권합니다.
뇌동맥류가 발견되면 모양, 크기, 위치를 보고 치료할지, 지켜볼지 신경외과 전문의와 상의해야 합니다. 터지지 않은 비파열 뇌동맥류는 대부분 3㎜ 이하일 때 정기 추적만으로도 충분하지만 3㎜라도 모양이 불규칙하거나 혈류가 강하게 닿는 부위라면 예방적 치료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수술법은 두 가지로 절개 없이 치료하는 코일색전술, 직접 결찰하는 클립수술(개두술)입니다. 코일은 회복이 빠르지만 재발 우려가 있고, 클립은 완치율이 높지만 회복 기간이 길죠. 어떤 방법이든 편리함보다 안전성이 우선입니다.
고혈압은 조용한 공범
“교수님,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는데요?”라며 안심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혈압이 높다면 얘기가 다릅니다. 고혈압은 자발성 뇌출혈의 가장 큰 원인입니다. 혈관 벽을 조금씩 약하게 만들고, 결국은 어느 날 작은 혈관이 ‘뚝’ 하고 터집니다.
특히 고혈압약을 복용 중인 분이라도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고 방심하지 말고 정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해야 합니다. 짜고 매운 음식은 줄이고, 체중을 유지하며 가벼운 운동을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 가장 든든한 뇌혈관 보험입니다.
뇌출혈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가벼운 두통, 말이 어눌해지거나 한쪽 팔·다리에 힘이 빠진다면, 지체하지 말고 응급실로 오세요. 뇌출혈의 골든타임은 단 몇 시간입니다. 조금만 늦어도 평생의 장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혈관은 나이를 속이지 않습니다. 지금, 당신의 혈관을 돌보는 일이 곧 당신의 내일을 지키는 일입니다.
전영일 교수
건국대학교병원 신경외과
(전문 분야: 뇌혈관질환, 뇌출혈, 뇌동맥류, 두개강 내 출혈 수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