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이비인후과 박준욱 교수와 고려대학교 바이오의공학부 정호상 교수 공동 연구팀이 타액(침)을 이용해 98% 정확도로 두경부암을 조기 진단하는 인공지능(AI) 기반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두경부암은 인두, 후두, 구강 등 머리·목 부위에 생기는 암이다. 전 세계에서 매년 약 89만 명이 발병하고 45만 명이 사망한다. 조기에 발견하면 5년 생존율이 80% 이상이나 증상이 미미해 진단 시기를 많이 놓친다.
기존 진단법은 내시경이나 조직 생검을 통해야 하지만 종양이 깊거나 작으면 찾기 어렵다. 이에 연구팀은 혈액 대신 타액을 이용하는 비침습적 진단법을 개발했다. 타액은 체내 대사물질이 풍부하고 채취가 간편해 환자 부담이 적고 반복 검사에도 용이하다.
그래핀·금 나노구조로 초정밀 신호 포착
연구의 핵심은 ‘그래핀 기반 센서 기판’이다. 그래핀은 연필심의 주성분으로 알려진 흑연의 단일층 물질로 분자 흡착 능력이 뛰어나 다양한 전자소자에 활용된다.
연구팀은 그래핀 표면에 미세한 주름과 결함 부위를 이용해 ‘금 나노코랄(산호형 금 나노구조)’을 성장시켜 타액 속 극미량의 대사물질을 초고감도로 검출하는 기판을 만들었다. 이 센서는 2시간 이상 안정적인 신호를 유지하며 세척 후에도 67% 이상의 신호 지속을 보여 재사용 가능성까지 확인됐다.
연구팀은 두경부암 환자 25명과 건강한 대조군 25명의 타액을 분석해 70개 대사물질의 패턴을 인공지능으로 학습시켰다. 그 결과, 티오시아네이트·메티오닌·타우린·푸코스 등 15개의 주요 바이오마커를 추출했다.
AI가 15개 핵심 바이오마커 찾아내
이들은 암세포의 빠른 증식, 산화 스트레스, 염증 반응과 관련된 물질로 두경부암의 병리 기전을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예를 들어 ▶티오시아네이트는 염증과 산화 스트레스 증가 ▶푸트레신과 스페르민은 암세포 증식 ▶메티오닌은 세포 성장과 DNA 합성 증가와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트립토판·발린·류신 등 일부 아미노산은 암세포의 대사 과정에서 소모되어 감소했다.
타액 기반 AI 모델은 특이도 100%, 민감도 96%, 정확도 98%를 기록해 환자와 정상인을 거의 완벽히 구분했다. 5회 반복 실험에서도 93% 이상 정확도를 유지해 신뢰성도 입증됐다.
박준욱 교수는 “내시경이나 생검 없이 침만으로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만큼 조기 발견이 어려운 두경부암 환자에게 큰 희망이 될 것”이라며 “향후 대규모 임상시험을 거쳐 실제 진료 현장에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정호상 교수는 “그래핀과 금 나노구조의 결합으로 휘발성 대사물질을 장시간 안정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현했다”며 “AI 분석으로 개별 바이오마커의 기여도를 정량화할 수 있어 다른 암이나 질환 진단에도 확장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재료과학·의학·공학의 경계를 넘는 다학제 융합 연구의 성과로 평가받는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 IF 14.1)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