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를 또 믿어?”
한국 게임 시장에서 엔씨 소식만 들려오면 따라오는 말이다.
엔씨는 PC 리니지를 시작으로 아이온, 블레이드&소울 등 혁신적인 게임을 통해 산업 발전을 주도하며 국내 최대 규모 게임사로 거듭났다.
엔씨의 질주는 멈출 줄 몰랐다. 164주 PC방 점유율 1위의 대기록을 세운 아이온과 ‘리니지M’의 초대박으로 주가가 120만 원을 훌쩍 뛰어 넘으면서 한국 게임업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이후 리니지2M도 흥행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듯 엔씨의 전성기는 영원하지 않았다.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최고의 국력을 자랑했던 드워프 종족이 욕심과 허영심에 매몰되어 수도 ‘에레보르’를 드래곤 스마우스에게 한순간에 잃어버렸듯이 엔씨도 리니지 모바일 형제에 의해 무너지기 시작했다.
왜 ‘리니지M’이 문제일까? 답은 리니지M이 너무 잘 됐기 때문이다. 리니지M으로 엔씨가 급격하게 성장하자 다른 게임사들도 이를 꿈꾸며 리니지M과 동일한 경쟁 MMORPG만 개발하기 시작했다.
맹독성 과금으로 무장한 경쟁 MMORPG는 각 게임사들에게 달콤한 매출을 선사했다. 스트리머 프로모션 등의 복잡한 매출 구조가 얽혀 있지만 짧은 기간 개발해서 큰 매출을 얻은 게임사들 입장에선 이보다 효율적인 수익원도 없었다.
지금이야 P의 거짓(네오위즈), 스텔라 블레이드(시프트업), 데이 더 다이버(넥슨), 퍼스트 버서커 카잔(넥슨), 퍼스트 디센던트(넥슨) 등 글로벌에서도 인정 받는 게임이 매년 등장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는 수년 동안 경쟁 MMORPG만 쏟아졌다. 한국 게임 산업의 잃어버린 7년이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물론 잘 되는 무언가가 트렌드로 자리를 잡아 비슷한 상품이 연이어 등장하는 현상은 시장의 기본 흐름이다. 이를 단순히 엔씨의 탓이라고 말할 순 없다. 맹독성 과금으로 게임이 사행성 콘텐츠로 인식된 현상은 별개로 다뤄야 할 문제다.
엔씨 신뢰도 하락의 근본적인 원인은 모든 IP의 리니지화다. 리니지 시리즈인 리니지2M, 리니지W는 동일 IP 게임이니까 게이머들도 이해했다. 하지만 과거 많은 사랑을 받아온 ‘트릭스터’와 ‘블레이드&소울’을 리니지M 스타일로 재해석한 판단이 트리거로 작용했다.
특히 트릭스터M이 결정타를 날렸다. 원작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게임성에 게이머들은 크게 실망했다. 여기에 블소2 출시 전 아인하사드 말장난 사태는 엔씨의 신뢰도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심각성을 깨달은 엔씨는 회사의 발전과 신뢰도 회복을 위해 새로운 도전에 발 벗고 나섰다. 대표적인 예시가 ‘쓰론 앤 리버티’다. 리니지의 과금 형식에서 벗어난 TL은 그 기조를 꾸준히 유지하며 스팀 서비스 확장을 준비 중이다. “엔씨를 어떻게 믿어?”라는 의문에 조금이나마 안도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TL만으로는 신뢰도를 완벽하게 회복하기 어려웠다. 더 확실한 카드가 필요했다. 이에 엔씨가 내세운 카드는 ‘아이온2’다. 지난 10월 11일 엔씨는 아이온2 BM의 상세 정보를 공개했다.
아이온2 BM에는 현금을 사용하는 능력치 제공 확률형 아이템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월정액 개념의 멤버십과 패스 상품 그리고 치장 아이템으로만 구성됐다. 엔씨의 변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정통 MMORPG를 표방하는 아이온2의 게임성으로 분위기 반전을 꾀하는 엔씨
게임성도 라이브 방송 기준으로 기대할 만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아성에 도전했던 아이온의 감성과 호쾌한 논타깃 액션이 융합되면서 수많은 스트리머와 게이머가 기대감을 보였다. 덕분에 사전 서버, 닉네임 선점 이벤트가 2분 만에 종료되어 두 차례 서버 증설까지 이뤄졌다.
앞서 기자는 엔씨를 반지의 제왕 드워프 종족에 비유했다. 드워프 종족은 에레보르를 잃은 후 한없이 무너졌지만 결국 시련을 이겨내고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만약 참나무방패 소린 일행과 빌보 배긴스가 스마우그에게 패배했다면 드워프 종족의 부활도 없었을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기회를 잡은 셈이다.
엔씨에게도 아이온2가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다행히 판은 잘 깔렸다. 이제 아이온2를 재밌는 게임으로 만들고,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아이온2가 PC방 점유율 164주 1위를 기록한 원작의 찬란한 영광을 재현시켜 엔씨에게 새로운 전성기를 선물하는 효자로 거듭날 수 있을지 게이머들과 업계 관계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