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내가 울었다. 인생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게임 개발자로 출발한 그는 스타급 개발자가 되었다. 이후 독립한 회사 대표, 대표이면서 개발자로 돌아왔다.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쇼가 지스타다. 매년 개막 전날에는 ‘대한민국게임대상’이 열린다. 12일 열린 올해 시상식에서는 대통령상인 대상에 넥슨 자회사 ‘데브캣’의 ‘마비노기 모바일’이 수상했다. 대상을 비롯 3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마비노기 모바일’은 넥슨이 개발한 게임 ‘마비노기’의 모바일버전이다. 원작은 ‘경쟁’에서 벗어나 플레이어가 모두 함께 즐기는 독특함과 철학이 담겨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대상 수상자로 무대에 오른 이가 김동건 데브캣 대표. 그는 “게임을 만드는데 정말 오랜시간이 걸렸다. 게임을 만드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은 넥슨과 개발진들, 지금도 게임을 즐겨주는 모든 모험가들과 함께 상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시상식 무대 가까이서 수상을 지켜본 넥슨의 한 관계자는 “수상 소감 중 그의 눈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고 전해주었다. 그 눈물에는 정말 많은 의미가 담겼다. 김동건이라는 이름은 넥슨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이름이다. 그는 넥슨 초창기 멤버로 넥슨을 대표하는 자타공인 스타개발자이기 때문이다.
‘나크’라는 닉네임으로 잘 알려진 김동건 데브캣 대표는 흔히 ‘마비노기의 아버지’로 불렸다. 데브캣 스튜디오는 한국 최초 사내 독립형 게임 스튜디오였다. 그는 2000년 넥슨에 입사해 모바일게임을 만들다가 ‘신입’임에도 튀는 기획서를 냈다. 그렇게 온라인게임으로 만들어진 것이 ‘마비노기’였다.
당시 김동건 PD는 ‘판타지 라이프’라는 생활형 콘텐츠 컨셉을 가진 독특한 MMORPG를 구상했다. 기존 전투 위주의 게임과는 달리, 캠프파이어, 던전 탐험, 채집, 아르바이트, 악기 연주 등 유저들이 게임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게 풀어주었다는 열렬한 팬심을 얻었다.
2004년 ‘마비노기’ 출시는 한국의 ‘게임명문가’ 넥슨에서 제대로 된, 어엿한 자체 IP(지적재산권)가 탄생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 게임은 넥슨에서 가장 성공한 대표적인 게임으로 우뚝 섰다. 개발력을 안팎으로 과시한 독립 스튜디오 데브캣은 ‘마비노기’ 이후 ‘마비노기 영웅전’ ‘마비노기 듀얼’ 등 ‘마비노기’ 시리즈를 선보였다.
이후 ‘마비노기 모바일’ 게임으로 개발하겠다고 첫 공개한 것이 2018년 지스타였다. 한순간에 당시 게임 전문기자들이 뽑은 최고의 기대작 리스트에 올랐다. 이후 데브캣 스튜디오는 넥슨에서 독립해 총괄 프로듀서였던 김동건 대표가 취임했다.
하지만 개발은 답답할 정도로 더뎠다. 2018년 지스타 공개 이후 한동안 공개된 정보가 없어 개발이 무산되었다는 루머가 나오기도 했다. 이를 불식한 것이 지스타 2022년 시연 버전. 그리고 올해 3월 27일, 무려 7년간 개발한 ‘마비노기 모바일’이 베일을 벗었다.
협동과 커뮤니티 콘텐츠, 원작 감성의 귀환이었다. 게임 속에서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모닥불에 유저들끼리 둘러앉아 이야기만 하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즐거움을 모바일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과금 없이도 모든 콘텐츠를 즐길 수 있었다. 보란 듯이 매출 1위에 오르면서 김동건 표 ‘마비노기’ 평판과 명성을 탈환했다.
하지만 김동건 대표에게는 개인적으로 채워지지 않은 것이 있었다. ‘마비노기’는 2004년 게임대상에서 대통령상이 아닌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마비노기 영웅전’이 2010년 대통령상을 거머쥐었지만 역시 넥슨 스타개발자인 이은석 PD가 수상했다.
2025년 대한민국 게임대상 시상식에서는 대표이자 PD인 김동건 대표가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는 수상 소감 도중 눈물을 흘렸다. 그의 눈물은, 어쩌면 7년 간 ‘혼을 갈아넣은’ 시간과 피와 땀을 상징은 아니었을까. 거기까지 뚜벅뚜벅 걸어온 개발자인 자신의 인생에게 돌려준 ‘신의 물방울’은 아니었을까.
어떤 이는 ‘남자가 눈물을 보인다는 건 세상에 지지 않았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득 영화 대사 하나가 떠올랐다. 영화 ‘듄2’에서 잘생긴 배우 티모시 샬라메는 이렇게 말한다. “그대가 평생 기도했던 순간이 바로 지금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