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잡은 엔씨… MMORPG 트렌드는 ‘PvE’

아이온2 시공의 균열. (사진= 문원빈 기자)
아이온2 시공의 균열. (사진= 문원빈 기자)

엔씨소프트가 신작 MMORPG ‘아이온2’의 PvP 콘텐츠인 ‘시공의 균열’에 PvP 선택 기능을 도입했다. 경쟁보다 협동과 성장을 중시하는 최신 MMORPG 트렌드를 따라가겠다는 의지다.

시공의 균열은 아이온2 론칭 직후 게이머들의 관심을 독차지한 콘텐츠다. 해당 콘텐츠는 천족 유저와 마족 유저가 서로의 영토에 침입해 싸우는 구조다. 논란은 캐릭터 성장의 필수 요소인 데바니온 추가 노드를 얻거나 유일 등급 허리띠 제작 및 강화를 위해서는 시공의 균열 플레이가 필수라는 문제에서 불거졌다.

김남준 엔씨소프트 아이온2 개발 PD는 아이온2 론칭 전 라이브 방송에서 “아이온2는 PvE 기반 게임으로 PvP 콘텐츠를 전혀 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전한 바 있다. 

물론 시공의 균열에서 획득하는 데바니온 노드나 유일 등급 허리띠가 없어도 게임을 즐길 수는 있다. 캐릭터가 약할 뿐이다. 김 PD도 이를 감안하고 내뱉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1000레벨 던전의 파티 모집 스펙이 1600레벨을 돌파할 정도로 높게 책정된 아이온2 현황을 고려하면 김 PD의 코멘트는 모순이다. 시공의 균열 내실만으로 아이템 레벨 약 300 이상 상승하니까 유저들 입장에선 필수 과제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차분하게 성장 중이던 자신의 캐릭터가 다른 누군가에 의해 무참히 죽거나 다른 영토에 침입해 아이온2에서 손에 땀을 쥐며 어쌔신 크리드의 재미를 강제로 느껴야 하는 구조에 유저들은 엔씨를 질타하거나 이탈했다. 

김 PD는 시공의 균열과 관련해 저레벨 유저 대상 공격 제한, 차원문 입장 제한 인원 확장 등 다양한 조치를 적용했다가 끝내 시공의 균열 PvP를 온, 오프 기능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변경했다. 사실상 2주 만에 시공의 균열 콘텐츠를 삭제한 셈이다.

이는 MMORPG 트렌드가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정신 없이 바쁜 스케줄과 상하 관계로 스트레스를 누적시키는 사회 생활에 지쳐 경쟁보다는 협동을 중시하기 시작했다. 콘텐츠의 오픈 시간을 정해놓고 강제적으로 하도록 유도하는 구조보다 자유롭게 언제든 즐길 수 있는 구조를 선호한다.

다른 MMORPG도 이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글로벌 대표 MMORPG를 떠올리면 블리자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스퀘어에닉스의 ‘파이널판타지14’가 있다. 아이온과 마찬가지로 종족전을 메인으로 설계했던 WoW에서도 PvP 선택 기능을 도입하면서 RvR은 과거의 유산이다. 파이널판타지14의 PvP와 RvR은 별도의 콘텐츠로 제공될 뿐 캐릭터 성장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한국 대표 MMORPG ‘로스트아크’도 마찬가지다. 금강선 스마일게이트 前 로스트아크 디렉터도 로웬으로 필드 PvP, RvR 콘텐츠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또한 모험 섬, 필드 보스, 카오스게이트 등 강압적인 스케줄로 구성된 콘텐츠들을 유저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횟수와 등장 주기를 완화했다.

일각에서는 발로란트, 카운터 스트라이크, 리그 오브 레전드, 배틀그라운드 등 글로벌 대세 게임들은 전부 PvP라고 외치지만 이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해당 게임들은 MMORPG처럼 하나의 캐릭터를 육성하고 오랜 시간 플레이 타임을 요구하지 않는다. 캐릭터에 애정을 쌓고 교감하는 형태가 아닌 짧은 시간 안에 종합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장르다. 게임 시장의 대세 장르가 AOS, FPS일 뿐 MMORPG의 트렌드와는 무관하다.

원작 아이온은 본래 종족전을 테마로 한 PvP, PK 위주 게임이었다. 시공의 균열 또한 원작에서 계승된 아이온의 시그니처 콘텐츠다. 게다가 엔씨는 경쟁 MMORPG의 원조 게임사다. 원작의 상징성과 자사의 강점을 포기한 결정은 엔씨가 MMORPG의 트렌드 변화를 확실히 인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2월 2일 라이브 방송은 게이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채팅창에서는 “엔씨가 이걸 해주네”, “엔씨 많이 달라졌다” 등의 칭찬이 난무했다. 그 결과 방송 이후 인기 서버 기준 수백 명의 대기열이 다시 형성되고 유저가 대거 몰리면서 서버 지연 현상이 발생했다.

물론 걸어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김 PD와 소인섭 엔씨 아이온2 사업실장도 이를 알고 유저들의 목소리를 듣고 신속하게 반영 중이다. 엔씨 개발진도 헤드들과 같은 마음이다.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아이온2 개발팀은 주말에도 출근해 개선 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리니지M’부터 ‘블레이드앤소울2’까지 경쟁 MMORPG의 외길 인생을 걸어온 엔씨가 드디어 가시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 기조가 아이온2 초반에만 잠깐 보여주는 식이 아닌 1년, 2년 꾸준하게 이어진다면 다음 스텝인 ‘호라이즌 스틸 프론티어’에서는 유저들이 지금과 전혀 다른 신뢰도로 기대감을 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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