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격적인 겨울 추위와 함께 연말연시 송년 모임이 잦아지는 시기다. 즐거운 분위기와 달리 임상 현장에서 바라보는 겨울은 만성질환 환자들에게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계절이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 우리 몸은 체온 유지를 위해 과도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는데, 이는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생체 리듬을 심각하게 교란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국민관심질병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만성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약 2273만 명을 넘어섰다. 성인 2명 중 1명이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셈이다. 2020년 약 1995만 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4년 사이 13.9%나 증가한 것이다.
의학적으로 만성질환은 비전염성 질환(NCD)으로 정의된다. 급성 감염병과 달리 심뇌혈관계 질환, 암, 만성 호흡기 질환, 당뇨병 등 4대 질환을 의미하는데, 이들은 진행 속도가 느리고 완치가 어려워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것이 공통적인 특징이다.
문제는 이러한 만성질환이 삶의 질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꾸준히 늘어 20년 전인 2004년 77.8세에서 2024년에는 83.7세로 약 6세가량 늘었다. 반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기간인 건강수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2024년 건강수명은 65.5세로, 통계청이 집계를 시작한 2012년의 65.7세보다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만성질환 관리에 소홀할 경우, 늘어난 기대수명은 축복이 아니라 이른바 ‘유병장수’의 딜레마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면 건강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생활습관을 더욱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특히 들뜬 연말 분위기에 휩쓸려 방심하다가 증상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으니, 그 어느 때보다 절제와 균형을 잃지 않는 경각심이 필요하다.
우선 심뇌혈관 질환자는 겨울철 혈관 수축과 혈압 상승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통상 기온이 1도 떨어질 때마다 수축기 혈압은 약 1.3mmHg 정도 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과도한 알코올 섭취가 더해지면 교감신경이 흥분돼 혈압 변동 폭이 더 커진다. 또한 술자리에서 곁들이는 고나트륨·고지방 안주는 혈액의 점도를 높여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위험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된다.
당뇨병 환자에게도 연말의 과식과 과음은 시한폭탄과 같다. 알코올은 간에서의 포도당 생성을 억제해 심각한 저혈당 쇼크를 유발할 수 있는 반면, 당분이 포함된 술이나 고열량 안주는 급격한 고혈당을 초래한다. 겨울철 활동량 저하로 혈당 관리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러한 널뛰기 혈당은 다양한 합병증을 앞당기는 원인이 된다.
만성 호흡기 질환자 또한 안심할 수 없다. 술은 체내 수분을 배출시키는데, 이는 가뜩이나 건조한 겨울철 호흡기 점막을 더욱 마르게 한다. 점막이 건조해지면 호흡기의 청소 시스템 역할을 하는 점액 섬모 운동이 저해되어 바이러스와 먼지가 호흡기에 머물며 감염과 염증을 쉽게 일으키게 만든다.
결국 만성질환은 완치가 아닌 관리의 영역이다. 외출 시에는 목도리와 모자 등을 챙겨 체온 유지에 각별히 신경 쓰고, 피할 수 없는 술자리라면 물을 충분히 마셔 탈수를 예방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막연한 느낌이 아닌 정확한 수치로 내 몸의 상태를 확인하는 습관이다. 혈압과 혈당을 수시로 점검하고, 평소 복용하던 약을 거르지 않고 철저히 챙기는 것이 건강한 겨울을 나는 지름길이다.
메디체크 건강칼럼 한국건강관리협회 대구지부 양창헌 진료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