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처는 왜 지금 사회의 중심으로 떠오르는가
한때 서브컬처는 ‘주류가 되지 못한 취향’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곤 했습니다.
애니메이션, 게임, 일러스트, 아이돌 팬덤 같은 영역은 열성적인 소수의 세계로 인식되었고, 대중문화의 변두리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서브컬처는 더 이상 주변부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회 변화가 가장 먼저 감지되는 영역이 되었고, 문화 산업을 넘어 사람들이 자신을 설명하고 관계를 맺는 방식까지 바꾸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변화를 체감하게 만드는 장면 중 하나가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성장한 국내의 서브컬쳐 문화의 축제인 일러스타 페스(Illustar FES)입니다.
일러스타 페스는 일러스트-캐릭터-서브컬처 관련 기업들과 창작자들이 직접 부스를 열고 관람객과 직접 소통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서브컬처 페스티벌입니다.
지난 10월 킨텐스에서 진행된 9회 행사에서는 수만 명 규모의 관람객이 현장을 찾았고, 입장 대기 줄과 조기 매진 부스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서브컬처가 더 이상 ‘소수의 취향’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킨텍스에서도 내년 2월 일러스타 페스를 추가 개최하기로 하는 등, 서브 컬쳐 관련 기대를 운영 기획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행사의 의미는 단순한 집객 숫자에 있지 않습니다.
관람객은 소비자이기 이전에 세계관과 취향을 공유하는 참여자로 기능하며, 창작자와 느슨하지만 지속적인 관계를 맺습니다. 이 구조는 서브컬처가 단순 소비가 아니라 참여와 공감으로 유지되는 문화임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자연스럽게 버추얼 아이돌(Virtual Idol)이라는 형식으로 확장됩니다.
버추얼 아이돌은 단순히 기술로 만들어진 가상의 캐릭터라기보다는, 서브컬처가 오랫동안 축적해온 세계관 중심 사고와 팬 참여 문화를 기술을 통해 구체화한 결과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 개념은 이미 가능성의 단계를 넘어 실제 산업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일본의 ‘하츠네 미쿠’는 팬 참여형 창작 구조를 기반으로 20년 가까이 지속되는 글로벌 IP로 자리잡았고, 콘서트, 월드 투어, 게임, 광고까지 확장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세계아이돌’이 음원 차트 진입과 공연, 굿즈 판매로 버추얼 아이돌도 충분히 대중성과 시장성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플레이브(PLAVE)는 고도화된 3D 기술과 음악 완성도를 앞세워 기존 아이돌 시스템과 유사한 활동 구조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라이엇 게임즈의 K/DA는 게임 IP에서 출발해 음악과 공연, 글로벌 팬덤으로 확장되며 버추얼 아이돌이 하나의 산업 모델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이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점은 분명합니다. 성공의 핵심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와 관계에 자신을 연결하고 싶어 하는가?’에 있습니다.
서브컬처가 힘을 얻는 이유는 현실을 회피하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려는 욕구에 가깝습니다.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하나의 정답이나 거대한 서사보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세계관과 이야기 속에서 정체성과 소속감을 찾습니다.
서브컬처는 개인이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의미를 해석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될 수 있게 하는 문화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서브컬처는 주류 문화의 뒤를 따라가는 영역이 아니라, 먼저 실험하고 그중 일부가 주류로 흡수되는 ‘선행 문화’의 위치에 머물 가능성이 큽니다.
버추얼 아이돌, 오프라인 페스티벌, 팬 참여형 IP는 서로 다른 형식처럼 보이지만, 모두 <관계 중심 문화>라는 공통된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기술은 더욱 정교해질 것이고, 표현 방식은 계속 바뀌겠지만, 그 중심에는 여전gl 함께 해석하고 참여할 수 있는 이야기가 남을 것입니다.
이 변화 속에서 개인에게 요구되는 태도 역시 달라지고 있습니다. 서브컬처를 단순한 유행이나 취향 소비로만 바라보기보다, 자신이 어떤 이야기와 세계관에 공감하고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고 싶은지를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취미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설명하는 하나의 문화적 언어를 갖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브컬처는 더 이상 특정 세대만의 시장이 아닙니다. 외형만 차용하거나 트렌드를 피상적으로 소비하는 방식으로는 지속적인 관계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왜 그 문화 안에 머무르는지, 왜 참여하고 해석하려 하는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입니다. 팬을 소비자가 아닌 관계의 주체로 바라보는 시선 없이는 이 문화와 건강하게 연결되기 어렵습니다.
서브컬처는 빠르게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사회가 자신을 설명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앞으로의 문화와 산업,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를 미리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서브컬처를 ‘특별한 누군가의 취향’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이미 우리 사회 한가운데에서 작동하고 있는 하나의 문화적 현실로 받아들이는 태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종신 제이스테어 대표
최종신 대표는?
IT, 콘텐츠, 플랫폼 산업 전반에서 약 30년 이상의 경영 경험을 보유한 사업총괄형 리더다. 삼성물산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파수닷컴, 바른손크리에이티브, 우리넷 등에서 C-level로 재직하며 신사업 기획, 글로벌 확장, M&A, IR 및 조직 혁신을 주도해왔다.
특히, AI 기반의 개인 데이터 서비스 기획과 운영 총괄을 맡아 초기부터 사용자 기반 확보 및 시장 확장 전략을 성공적으로 이끈 경험이 있다. 또한, 창업한 소프트웨어 기업을 통해 콘솔 및 모바일 플랫폼에서 25개 이상의 상용 타이틀을 출시하고, 글로벌 파트너십 및 기업 인수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기획부터 엑싯까지 전 사이클을 직접 경험하였다.
최근에는 코스닥 상장사 대표이사로서 신사업 투자와 IR 체계 개선을 통해 기업가치를 상승시켰으며, 자회사 설립을 통해 K-콘텐츠 및 디지털 융복합 사업의 확장도 주도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