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추얼 아이돌(Virtual Idol) 시장은 더 이상 ‘가능성’의 영역에 머물러 있지 않다.
글로벌 리서치 전망에 따르면 버추얼 아이돌 및 버튜버(VTuber) 시장은 2030년 약 40억 달러(약 5조 원)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는 ‘홀로라이브(Hololive)’의 ‘가우르 구라(Gawr Gura)’, ‘호쇼 마린(Houshou Marine)’과 같은 캐릭터가 대중과 오랜 시간 호흡하며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최근 한국을 찾은 ‘니지산지(NIJISANJI)’ 월드투어의 뜨거운 열기는 이미 그 현상을 증명하는 생생한 증거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에 등장한 가상 그룹 ‘헌트릭스(HUNTR/X)’가 글로벌 화제를 모은 것 역시, 물리적 실체가 없는 캐릭터에 대한 대중의 심리적 장벽이 사실상 사라졌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수용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기술적 성취가 아니다. 이는 팬과 캐릭터가 쌓아 올린 오랜 경험과 문화의 결과물이다.
■ 기술보다 오래 남는 것은 ‘상호작용’이다
흔히 버추얼 아이돌의 성공 요인으로 정교한 그래픽이나 모션 캡처 기술을 꼽는다. 물론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팬 경험(Fan Experience)의 관점에서 본질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상호작용의 지속성’에 있다.
완벽하게 짜인 퍼포먼스보다 중요한 것은 실시간 방송에서의 티키타카, 내 댓글에 대한 반응, 그리고 반복되는 만남을 통해 쌓이는 친밀감이다.
팬덤을 움직이는 힘은 기술적 경이로움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감각에서 나온다. 그렇기에 ‘라이브(Live)’는 버추얼 아이돌에게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관계를 지탱하는 핵심 엔진이다.
■ AI가 던지는 새로운 질문: “생성을 넘어 관계(Relation)로”
2025년 현재, 생성형 AI 기술은 이미지와 음악, 영상 전반에서 보편화되었다. 하지만 쏟아지는 AI 콘텐츠의 대부분은 일회성 소비에 그칠 뿐, 장기적인 팬덤 관계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례는 트위치 스트리머 ‘뉴로사마(Neuro-sama)’다. AI가 실시간으로 시청자와 대화하며 게임을 진행하는 이 캐릭터는 기술적 완벽함보다는 ‘예측 불가능성’과 ‘즉흥성’으로 팬들을 사로잡았다.
대중은 AI가 내놓은 결과물보다, AI가 반응하고 성장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이는 우리에게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이제 질문은 “AI가 무엇을 만들 수 있는가”에서, “AI가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로 바뀌어야 한다.
■ 라이브 이후의 라이브, 그리고 ‘자율 수행’
AI 기반 음악과 비주얼은 이미 인간과 협업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명확하다.
인간의 실시간 개입(Human in the loop)을 최소화한 상태에서도, 팬과의 정서적 교감과 상호작용을 지속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현재 활동 중인 버추얼 아티스트를 대체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증명해 낸 ‘라이브 소통’의 가치가 있었기에 가능해진, 그다음 단계의 기술적 탐구에 가깝다.
■ 인간이 설계하고, AI가 수행하는 구조
필자가 이끄는 ‘아이로믹스(AIROMIX)’의 프로젝트 ‘커넥트 라이크 원(CONNECT LIKE ONE)’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AI 아이돌은 단순히 외형만 AI로 만든 캐릭터가 아니다. 세계관부터 성격, 말투, 기억의 범위, 그리고 윤리적 기준까지는 인간 프로듀서가 정교하게 설계한다.
AI는 이렇게 설계된 페르소나(Persona:인격)를 바탕으로, 팬들과 소통하고 반응하는 ‘수행(Performance)’의 주체가 된다.
물론, AI가 인간의 개입 없이 완벽하게 라이브를 주도하는 기술은 아직 전 세계적으로도 완성된 단계가 아니다. 우리 역시 현재 이 ‘자율 주도형 라이브 시스템’을 최종 목표로 삼아, 기술을 개발하고 단계적으로 고도화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는 구조는 명확하다. 인간은 ‘영혼’과 ‘방향’을 만들고, AI는 그것을 ‘시간의 제약 없이’ 전달하는 것이다.
이는 기존 버추얼 아이돌과는 캐릭터를 구현하고 운영하는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른, 새로운 모델이라 할 수 있다.
■ 일회성이 아닌, 관계가 축적되는 서사…경쟁이 아닌 확장의 시대로
기술의 화려함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의 축적’이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이전의 대화를 기억하고 시간에 따라 관계가 깊어지는 경험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커넥트 라이크 원’이 완성형 아이돌이 아닌 연습생 단계부터 시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팬들은 캐릭터의 성장 과정, 선택과 변화의 서사를 함께하며 유대감을 쌓는다.
여기서 AI는 스스로 감정을 창조하는 주체가 아니라, 인간이 설계한 감정의 선율을 팬들에게 전달하는 충실한 연주자가 된다.
경쟁이 아닌 확장의 시대로. 앞으로의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하나의 형태로 수렴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 아이돌, 사람이 직접 연기하는 버추얼 캐릭터, 그리고 AI가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캐릭터는 각기 다른 매력과 경험을 제공하며 공존할 것이다.
이는 파이를 나누는 경쟁이 아니라, ‘상호작용 가능한 IP’의 영토를 넓히는 확장의 문제다.
AI는 정답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더 새로운 상상과 질문을 할 수 있게 돕는 도구일 뿐이다. 아이로믹스의 이번 시도 역시, 그 수많은 가능성을 향한 작은 질문 중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글쓴이=류기덕 아이로믹스
류기덕(Jade Key) 프로필
2017~ 프로듀서 / DJ
2025년 AI 기반 버추얼 IP 제작 스튜디오 아이로믹스(AIROMIX) 창업
2025년 아이돌 ‘Triger’ ‘좋아(HOPE)’ 작곡·편곡 참여 – MBC 라디오 선곡 투표 차트 1위
2023~2025년 ‘S2O Music Festival KOREA’ 공연 및 대만·일본 DJ 투어: 글로벌 누적 900만 스트리밍 (스포티파이 + 유튜브)
2023년 ‘Fractalize’라는 닉네임으로 AI artist 활동 시작
2022년 글로벌 유명 레이블 ‘Dirty Workz’ 입성, Beatport 하드댄스 차트 20위 ‘Can’t Break Me (ft. KNVWN)’
2018년 ‘CJ E&M’ 전속 작곡가 계약: 아이돌 Vixx LR ‘Poison’ 작곡·편곡 참여-일본 ORICON 차트 18위
2017년 ‘JYP 엔터테인먼트’ 작곡가 오디션 3위 수상, 음악계 복귀
2000~2016 게임사 위메이드 ‘미르의 전설2,3’ 등 온라인-모바일 게임 개발-총괄, 시네마틱 영상 디렉터 / 부사장 역임
1995~1997 한국 인디 밴드씬의 초석 ‘언니네이발관’ 베이시스트 (1기 멤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