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①] ‘여자 신격호’ 장혜선, 할아버지의 기록을 이어가다


병오년 새해를 맞아 1월14일, 장혜선 롯데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장 이사장의 철학과 원칙은 롯데재단의 장학·지원 사업 전반을 관통하고 있었다. [글=유형길 기자, 사진=이창환 기자]

병오년 새해를 맞아 1월14일, 장혜선 롯데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장 이사장의 철학과 원칙은 롯데재단의 장학·지원 사업 전반을 관통하고 있었다. [글=유형길 기자, 사진=이창환 기자]


[유형길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병오년 새해를 맞아, 장혜선 롯데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지난해 12월 장 이사장이 펴낸 ‘롯데할배와 손녀’는 재단을 운영하며 마주한 선택의 순간마다 그의 판단이 어떤 기준으로 움직여 왔는지를 정리한 기록이다. 그는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할아버지를 닮으려 한 적은 없지만, 일을 하다 보니 같은 선택을 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편법을 쓰지 않겠다는 그의 철학과 원칙은 롯데재단의 장학·지원 사업 전반을 관통하고 있다.


– 스스로, 할아버지 故신격호 회장과 가장 닮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면?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할아버지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의식하고 따라 하려던 건 아니었지만, 돌이켜보면 할아버지도 같은 선택을 하셨을 것 같다는 순간들이 많았다. 특히 일을 대하는 태도와 방향에서 그렇다. 장학생을 지원할 때도 성적만 보지 않고, 환경 때문에 기회를 얻지 못한 사각지대에 놓인 친구들을 먼저 찾는다. 절차적으로 어렵거나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옳다고 판단하면 피하지 않고 끝까지 해결하려는 점도 그렇다. 할아버지도 옳은 길이라면 편법 없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바른 길로 가셨고, 나에게도 기준은 동일하다.


합리화하며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린 많은 결정들이 할아버지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고 느낀다. 특히 실무자와 의견을 직접 나누는 것을 선호한다. 제안된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에게 직접 설명을 듣고 의견을 나누는 방식을 선호한다.


– 중요한 결정 앞에 ‘할아버지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한 적이 있나?


▲할아버지와 비슷해지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 적은 없다. 누구를 닮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가려는 길이 옳은지 여부라고 생각한다. 크리스천이기에 먼저 기도로 묻는다. 이 방향이 맞는지, (맞다면)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한다. 사실 가장 많이 조언을 구하는 사람은 어머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느냐’다. 기도와 어머니의 조언으로 방향을 점검한 뒤, 옳다고 믿으면 흔들리지 않고 간다. 그것이 내가 일을 해나가는 방식이다.


신격호 롯데 취업준비생 장학금.[롯데재단]

신격호 롯데 취업준비생 장학금.[롯데재단]


– 롯데 희망장학금을 운영하며 가장 중요하게 보는 기준은?


▲해당 학생이 교육 사각지대에 있는지 여부다. 성적은 크게 보지 않는다. 이미 지원하려는 학생들은 기본 실력과 가능성이 검증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도움이 절실한지를 먼저 본다. 그래서 성적 중심이 아니라, 필요 중심의 지원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가장 어려운 곳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것, 그것이 장학사업이 지향하는 방향이다.


– 장학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누군가를 바꾸자고 생각하며 일을 하지 않는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본다. 대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친구들의 과정을 돕는 사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 1층에 서 있는 사람이 2층으로 올라가고 싶어 한다면, 스스로 올라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의미한다. 변화의 주체는 언제나 본인이고, 나는 그 선택과 의지에 기회를 더해 주는 존재일 뿐이다.


– 신격호 롯데 취업준비생 장학금은 어떤 고민을 통해 만들어졌나?


▲나는 그동안 취업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대학 4학년 장학생들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현실을 마주했다. 취업 준비를 하느라, 봉사활동 요건을 채우지 못해서 장학금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제서야, 취업이 정말 어렵고 치열한 과정이라는 걸 몸소 실감하게 됐다.


대학 졸업까지를 하나의 단계로 본다면, 어떤 회사에 첫발을 내딛는 것은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 취업은 단순히 직장을 얻는 일이 아니라 결혼처럼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선택이다. 장학생들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회사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그 선택의 순간이 조금이라도 덜 막막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지원을 계획해 이어가고 있다.


신격호 롯데 장학관. [롯데재단]

신격호 롯데 장학관. [롯데재단]


– 신격호 롯데 장학관에서 ‘인사하기 운동’이 시작됐다던데?


▲처음에는 이 친구들(장학 대상)에 대해 작은 오해가 있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조금 뛰어나다는 이유로 이런 혜택을 받다 보면 혹시 교만해지지는 않을지, 서로 부딪히지는 않을지 걱정했다. 그런데 한걸음 깊이 들여다보니 오히려 ‘지원을 받는다’라는 환경 때문에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 있었다. 이런 사실이, 한 공간에 함께 살면서도 서로 인사하지 않는 이유로 굳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충분히 대견한 존재였고, 나로서는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바꿔보고 싶었다. 딸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오를 때마다 먼저 인사를 건네면서, 자연스럽게 모두가 인사를 나누게 됐던 변화와 경험이 떠올랐다. 작은 인사 하나가 사람을 밝게 하고 공동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걸 장학관에서도 보여주고 싶었다. (웃음) 지금은 장학관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졌고, 서로 인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잡았다.


– ‘리틀 신격호’를 만들기 위한 상생의 방법은?


▲전문적인 판단과 실행이 필요한 영역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맞다고 본다. 재단이 그들의 전문 영역까지 직접 관여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래서 재단의 역할은 직접 실행하는 주체라기보다는, 필요한 연결고리를 만드는 교량 역할에 가깝다고 본다. 전문성을 갖춘 업체와 청년 기업가를 연결하고, 그들이 조언과 투자, 개발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재단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이것이 ‘리틀 신격호’를 만들기 위해 재단이 맡아야 할 가장 현실적이고 책임 있는 역할이라고 본다.


– 인도네시아·베트남 글로벌 장학금 및 도서관 지원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글로벌 장학금은 학생들이 졸업 이후 받은 교육을 얼마나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단순한 학업 성과보다, 바로 사회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지, 취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본다. 반면 도서관 지원은 보다 기본적인 학습 환경을 채워 주는 데 초점이 있다. 현장에서 가장 필요했던 것이 바로 학습 자료,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회성 지원으로 끝내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2차, 3차로 이어지는 추가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


장혜선 이사장은 인터뷰 내내 모든 질문에 성실하게 답하면서, 재단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회상하기도 했다. 실제로 취재진에게 현장을 설명하는 그의 모습은 얼마나 진중하게 장학 사업에 임하는지를 알게 됐다.


재단복도. [롯데재단]

재단복도. [롯데재단]


 

실생활에 유용한 정보를 쉽고 정확하게 전하는 생활정보 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