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리뷰] 네거티브한 ‘민주주의’ 속앓이…’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배만섭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이 책의 지은이 ‘일리야’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나 2016년에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러시아계 한국인이 된 저자는 이 책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정치’는 경제발전을 위한 시스템, 그래서 ‘한국’



‘한국인’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한국에서 살기 위해서’라고. 그는 한국에서 인생의 반 이상을 살아오면서 그에게 인생의 목표가 정해진 것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에게 한국은 개개인의 정치 참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어 있고, 그 정치 체제 안에서 저자는 재산을 모으고 일을 하고 싶다고 한국 귀화의 목적을 언급했다.


저자의 언급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필자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러시아에서 선거는 정치 쇼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그는 ‘푸틴은 헌법을 바꿔 가면 20년 넘게 장기 집권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말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 다시 러시아와 한국이 친해지는 바라는 저자, 그는 본인이 한국인인 게 언제 자랑스러워했을까. 그가 처음으로 자국이었던 러시아 사람들 앞에서 한국 국적을 이야기하면서 ‘국적’ 자체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을 때 이는 러시아에서는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회고한다.


[사진=이톡뉴스]

[사진=이톡뉴스]


 


‘민주주의’ 이름으로 사라진 국가 예산 & 푸틴



책 차례를 훑어보다가 눈길이 가는 챕터가 있었다. ‘자유를 혐오하는 러시아식 민주주의’. 저자는 2021년 러시아 최대 설문조사 기관인 레바다 센터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소련 해체를 후회합니까?”라는 질문의 조사에서 63%가 “그렇다”고 응답했다는 믿기 어렵다고 하면서, 이는 질문 문항을 조작 설계했거나 조사 자체가 조작했다는 의심을 가지게 된다고 말한다.


또한 노벨 평화상을 수상(1990년)한 고르바초프(소련 유일한 대통령)에 대한 ‘위인’이라는 한국을 비롯한 서방의 시각에 대해서는 저자는 이는 마치 ‘이완용을  투사로 묘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라고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도 적었다. 저자는 고르바초프는 아무 대책도 없이 개혁(페레스트로이카)과 개방(글라스노스트)으로 경제와 사회를 붕괴시키기만 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


1989년 북경 대회의장에서 고르바쵸프(좌)와 회담전 악수 나누는 등소평 주석. [사진=연합뉴스]

1989년 북경 대회의장에서 고르바쵸프(좌)와 회담전 악수 나누는 등소평 주석. [사진=연합뉴스]


이후 1990년 헌법이 개정되고 1991년 6월 간선제로 첫 대통령으로 선출된 보리스 옐친은 8월19일 탱크를 끌고 와 의회를 장악한 보수파(공산당)와 군부의 쿠데타를 맨몸으로 막아서면서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진보(급진적 개혁)적인 옐친의 개혁에, 의회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고, 두 진영의 사태가 폭력적으로 흐르자, 옐친은 군대를 호출해 의회 건물을 압박, 결국엔 농성 중인 의회를 굴복시켰다. 이후 대통령 권한이 강화되면서 러시아는 외국 자본이 밀물처럼 들어와 러시아 국내 기업들은 모두 도산하는 사태를 겪었다. 자국 기업들이 모두 망해 경제가 휘청이고 세금도 부족해 국가채무는 폭발했고 공무원들은 급여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어려운 경제가 지속되다가 경제적 혼란이 점점 옅어질 때쯤 등장한 인물이 바로 푸틴이다. 2000년대 산유국 러시아는 치솟은 석유 가격으로 경제 호황을 맞게 되고 푸틴은  역사 교과서를 폐지하고 스탈린식 애국심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여론은 철권통치자 스탈린을 ‘성과 높은 부장’으로 포장(선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0년대의 ‘주체 민주주의(러시아식 민주주의)’ 용어가 이때부터 나오기 시작한 것이라고 저자는 언급한다.


‘정치’는 ‘경제’를 이길 수 없다…배급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오늘’



저자는 말한다. 소련 시절을 살아왔던 당시 경제의 주체였던 30~40대 소련의 기성세대는 당시 사회적·경제적 성숙자였지만 소련 붕괴의 시대 변화 속에서 희생자가 되어 가진 걸 모두 잃었기에 그 시설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그렇다. 결국엔 ‘경제’였던 것이다. 그 시대의 정치는 국민 경제·서민 경제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가 하는 것. 그 시절을 읽어버린 러시아의 현 부모 세대는 희생양이 되었다. 하지만 반면에 ‘자유’라는 키워드를 얻었으니, 저자 아버지의 목소리처럼 사고 싶은 전자제품을 국가 배급을 한없이 기다리지 않고 땀 흘러 번 돈으로 ‘오늘’ 살 수 있는 장점. 저자의 아빠는 말한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장점은 “부족한 것이 없다”라는 것.


러시아에 대한 히스토리와 실상, 그리고 여행 정보까지 이 책에는 소련~러시아의 흐름 속에서 한국서 바라온 러시아계 한 인물의 마음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벨랴코프 일리야(지은이), 도서출판 틈새책방, 2025-12-23 발행, 376쪽, ISBN 9791188949861)


[사진=본인 제공 from 연합뉴스]

[사진=본인 제공 from 연합뉴스]


< 일리야 벨랴코프 >

1982년생.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2016년에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러시아 극동국립대학교 한국학과를 졸업한 뒤에 연세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교에서 사회언어학 박사 과정을 밟았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가 현재는 수원대학교 외국어학부 러시아어문학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양한 채널에서 한국과 러시아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방송과 유튜브를 넘나들며 러시아와 한국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있고, 한국 및 러시아 문학 작품을 양국에 소개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을 러시아어로 번역했고, 러시아 그림 에세이 《어딘가엔 나의 서점이 있다》를 한국에 소개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러시아의 문장들》이 있다.

<차례>

PART I. 편견을 깨고 본 러시아

•러시아인들은 같은 하루를 살지 않는다

•불쌍한 자 vs 나약한 자

•스킨헤드는 인종 차별을 하지 않는다?

└Box | 러시아인과 한국인 사이

•‘피의 철도’에서 여행자의 로망이 된 시베리아 횡단 열차

•웃음에 진심을 담는 사람들

PART II. 붉은 제국, 그 이후

•기억 속에만 남은 사회주의 국가 소련

└Box | 러시아 안의 다른 나라, 모스크바

•자유를 혐오하는 러시아식 민주주의

•‘독재자’ 푸틴이 인기 있는 이유

•올리가르히, 그들이 사는 세상

•러시아는 북한의 친구인가?

•러시아는 한반도의 통일을 찬성할까?

└Box | 푸틴의 ‘동슬라브 민족주의’가 초래한 디스토피아

PART III. 러시아의 일상

•러시아에는 네 종류의 인간관계가 있다

•스무 살이면 어른

•“배려 받아야 할 여자 대통령을 어떻게 감옥에 보내나요?”

•감히 시궁창에서 백작으로 올라가다니

•한국에 비해 느릴 뿐이에요

•러시아식 이름, 어렵지 않아요

•사투리가 없는 러시아어

•러시아의 크리스마스는 1월 7일입니다

•러시아인의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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