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면역세포의 유전자 조절 장치인 ‘슈퍼-인핸서’를 겨냥해 염증 유발 단백질 TNFα의 발현 억제에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류머티스성 관절염, 건선 등 만성 염증성 질환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류머티스성 관절염, 건선, 패혈증과 같은 만성 염증성 질환은 면역세포가 과도하게 활성화하면서 ‘종양괴사인자 알파(Tumor Necrosis Factor alpha, 이하 TNFα)’라는 염증 단백질이 지나치게 분비돼 증상이 나빠진다. 치료에는 단백질을 차단하는 항체 치료제를 사용하는데, 가격이 비싸고 일부 환자에게는 반응하지 않거나 감염 위험 등의 한계가 있다.
연세대 의대 의생명과학부 김락균 교수, 김수민 박사(의사과학자), 조민정 박사 연구팀은 미국 예일대 의대 리처드 플라벨 교수 연구팀과 공동연구를 시행했다. 연구팀은 슈퍼-인핸서와 그 전사 산물인 eRNA에 주목했다. 슈퍼-인헨서와 eRNA는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분자 스위치로, 질환 시에만 활성화되는 특성이 있어 선택적 치료 타깃으로 주목받는다.
연구팀은 쥐 면역세포에서 TNFα를 조절하는 핵심 유전자 스위치인 TNF-9 슈퍼-인핸서를 찾아냈다. 이를 위해 첨단 유전체 분석 기술을 이용해 유전자 활성화를 조절하는 62개의 eRNA 생성 슈퍼-인핸서를 규명했다. 그 중 TNFα의 핵심 슈퍼-인핸서인 TNF-9 eRNA를 우선 타깃으로 선정했다. 이 부위를 제거하거나 여기서 만들어지는 eRNA를 억제하자 TNFα가 줄고, 쥐의 관절염과 건선 증상이 완화됐다.
‘슈퍼-인핸서’ 표적 치료로 염증 완화
환자 유래 세포 대상 실험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연구팀은 인간에서 쥐의 TNF-9에 해당하는 DHS44500 슈퍼-인핸서가 류머티스성 질환 환자의 면역세포에 활성화돼 있음을 확인했다. ASO(antisense oligonucleotide)를 이용해 환자 혈액 면역세포에 DHS44500 eRNA를 억제하자 TNFα 발현이 유의미하게 감소했으며 염증 반응도 진정됐다.
연구에 활용한 ASO는 특정 RNA의 발현을 조절하는 차세대 치료 플랫폼이다.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인 스핀라자가 대표적인 ASO 기반 신약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ASO를 통해 염증 특이적으로 활성화되는 TNF-9 eRNA를 정밀하게 억제함으로써 정상 면역 기능은 보존하면서 병적 염증만 선택적으로 차단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연구를 주도한 김락균 교수는 “이번 연구는 슈퍼-인핸서 유래 eRNA를 ASO로 직접 표적화해 TNFα 발현을 정밀하게 억제한 최초의 사례”라며 “기존 항체 치료제는 TNFα 단백질 전체를 무차별적으로 차단해 감염 위험이 뒤따랐다. 이번 연구가 부작용은 줄이고 치료 효과는 높인 차세대 만성 염증 치료제 개발의 기반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Advanced Science’ 최신호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