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컷의 물음 05] 이름이 존재자를 잠식할 때 : 데스노트 


 


[한 컷의 물음 05] 만화에서 만나는 동서양 인문학

이름이 존재자를 잠식할 때 : <데스노트>

작품 :  <데스노트> ∣ 철학 : 미셸 푸코  

대덕대학교 안소라 교수




“이름과 얼굴을 알고 그 이름을 노트에 적으면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데스노트>의 설정은 단순하다. 우연히 ‘데스노트’를 얻게 된 야가미 라이토는 노트의 힘을 이용해 정의의 실현이라는 논리로 범죄자들을 처단하며 세계를 심판하는 신이 되고자 한다. 심판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노트에 펜으로 이름을 적으면 된다. 이름이 적힌다는 사실만으로 아무런 물리적 접촉 없이 이름이 적힌 사람은 죽는다. 그 사람의 ‘기호(이름과 얼굴)’만으로 생사가 좌우되는 것이다. 이 독특한 설정이 이번 칼럼의 주제이다. 


하나의 기호, 즉 이름이 정말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 누군가의 ‘이름’을 안다는 것이 정말 ‘그’를 안다는 것인가? 


 


기호의 폭력


<데스노트>는 우리가 즐겨보는 일반적인 수사물이라 보기 어렵다. 이 작품은 기호의 권력이 어떻게 현실을 재편하며 통제하고 심판하는지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푸코는 <말과 사물>, <지식의 고고학>에서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결국 이름 붙이기, 즉 분류와 정의라는 표상의 체계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중요한 것은 이 체계가 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이름은 단지 ‘대상’을 지시하는 수단을 넘어 그것을 규정하고 제한하며 궁극적으로는 다르게 존재할 가능성, 그 자체를 배제하는 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 라이토가 ‘데스노트’를 통해 사람을 죽이는 방식은 바로 이러한 기호의 권력을 극단적으로 구현한 형태라 할 수 있다. 


흔히 ‘기호’라고 하면 우리는 글자를 떠올리지만, 철학이나 기호학에서는 훨씬 더 넓은 의미를 갖는다, 어떤 대상을 대신하거나 지시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이름, 주민번호, 전화번호, SNS계정, 사진 등 우리를 표현하는 모든 것이 기호이다.


라이토는 상대를 직접 만나지도 않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른 채, 그저 이름과 얼굴만으로 사람을 죽인다. 이때 ‘이름’이라는 기호 속에서 그 대상의 감정과 기억, 가족과 친구와의 관계는 모두 배제된다. 죽여야 할 대상을 오직 기호만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이때 이름은 단순한 표상이 아니라, 판단의 근거이자 권력의 조건이 된다. 이름이 우리를 대신하며 나아가 이름이 우리를 결정한다. 라이토가 이름을 쓰는 행위는 단순한 기록이 아닌 생사를 결정짓는 판단이 된다. 이 순간 기호는 권력이 되는 것이다. 


만화 '데스노트'. 일본의 만화로 스토리는 오바 츠구미, 작화는 오바타 타케시가 담당했다. 2003년 12월에 발매된 주간 소년 점프 2004년 1호에서 연재를 시작하여 2006년 24호에서 108화, 단행본 12권으로 완결. 캐릭터 설정집까지 포함하면 13권이다. [교보문고 갈무리]
만화 ‘데스노트’. 일본의 만화로 스토리는 오바 츠구미, 작화는 오바타 타케시가 담당했다. 2003년 12월에 발매된 주간 소년 점프 2004년 1호에서 연재를 시작하여 2006년 24호에서 108화, 단행본 12권으로 완결. 캐릭터 설정집까지 포함하면 13권이다. [교보문고 갈무리]


이름을 아는 것과 그를 아는 것은 다르다.


<데스노트>가 독특한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역시 비슷한 구조 위에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는 이름, 주민번호, 얼굴, SNS계정, 사진 등 수많은 ‘기호’들로 재단된다. 이러한 기호들은 우리를 설명하고, 평가하거나, 배제하고, 선택한다. 과연 우리는 그 기호를 벗어나서 존재할 수 있을까. 이 작품에서 이름을 안다는 것만으로 타인의 생사를 결정하려는 라이토가 보는 것은 사람이 아닌 기호일 뿐이다. 악한 사람인지 선한 사람인지 어째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데스노트' 만화 이미지 갈무리.
‘데스노트’ 만화 이미지 갈무리.


 


재현의 한계, 기호의 위험


푸코는 마그리트의 그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언급하며 재현의 한계를 지적한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그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쓴다. 실제로 파이프를 그린 그림은 파이프가 아니다. 그것은 파이프의 이미지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이름은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그 사람을 지시하는 ‘기호’일 뿐이다. 하지만 종종 우리는 그 기호가 곧 그 사람 자체라고 착각한다. 이름을 알고, 사진을 보고, 기사를 읽는 것만으로 그 사람을 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누군가의 관점에서 기술된 ‘기호’들일 뿐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데스노트>는 우리가 누군가를 알고 있다는 것이 단순히 기호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름과 얼굴이라는 기호만으로 죽음을 호출할 수 있다는 설정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대상을 단순화하고 판단하는지를 드러낸다. 


 


기호 너머를 바라보는 시선


라이토는 자신을 신이라 믿지만 그가 다루는 것은 인간이 아닌 기호일 뿐이다. 그는 사람의 삶과 고통을 보지 않고, 이름과 죄목이라는 특정 부분만을 본다. 사람을 지운 것이 아니라, 기호를 지웠을 뿐이다. 


이쯤에서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지금도 누군가를 ‘이름’만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을까? 기호를 넘어 그 사람의 맥락, 역사, 말하지 못한 서사까지도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말이다. 이름과 사진, 기록만으로 한 사람을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기호의 폭력에 참여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데스노트>는 우리에게 기호로 재단된 세계 속에서, 우리는 정말 ‘사람’을 보고 있는지 묻고 있는 듯하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상가로, 권력, 지식, 언어, 주체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인물이다. 푸코는 사회가 인간을 어떻게 분류하고 통제하는지를 탐구했으며, 정신병원, 감옥, 병원, 학교 등 제도적 공간 속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권력의 메커니즘에 주목했다. 저서로 <광기의 역사>(1961), <말과 사물>(1966), <지식의 고고학>(1969) 등이 있다. 

 

'말과 사물', 민음사, 현대사상의 모험 27 / 미셸 푸코 저자(글) · 이규현 번역 · 2012년 02월 29일 [교보문고 갈무리] 
‘말과 사물’, 민음사, 현대사상의 모험 27 / 미셸 푸코 저자(글) · 이규현 번역 · 2012년 02월 29일 [교보문고 갈무리] 

 

 


필자 안소라 교수

공주대학교 만화예술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웹툰의 컬러 역할 연구> 로 석사를, <찰스 슐츠의 분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만화영상진흥원 웹툰창작체험관 심화과정 교육 교재 집필 및 조안 한국어 교재 삽화, 웅직백제역사관 일러스트 , 한중일 문화교류 일러스트 등을 제작하였다. 공주대학교, 배재대학교, 한국 영상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현재 대덕대학교 K-웹툰과에서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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