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웹툰 원작 영화, 흥행과 실패의 필요충분조건 


'좀비딸' 웹툰과 영화 포스터.
‘좀비딸’ 웹툰과 영화 포스터.


한국 영화계에서는 지난 몇 주간 ‘웹툰’이 화제였다. 웹툰 원작인 영화 <좀비딸>과 <전지적 독자 시점(이하 전독시)>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해 전혀 다른 행보와 흥행 결과를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귀멸의 칼날>에게 자리를 내주기 전 몇 주간 극장가는 <좀비딸>의 전성시대였다. 웹소설의 성공을 바탕으로 웹툰을 거쳐 영화까지 이어지는 화려한 시간을 보낸 <전독시>와 다르게 기대와 주목이 크지 않았던(?) <좀비딸>의 흥행은 여러모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더불어 네이버웹툰에 연재되고, 화려한 캐스팅과 제작진이라는 후광에도 불구하고 참패를 기록한 <전독시>는 영화 자체의 평가를 넘어 한국 콘텐츠의 제작 생태계에 대한 문제제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웹툰 원작 영화 흥행성적.
웹툰 원작 영화 흥행성적.


사실 웹툰이 영화나 드라마로 된 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그중 성공한 것도 실패한 것도 적지 않으니 영화 두 편으로 웬 호들갑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마 이번 실패에 담긴 이유가 어쩌면 우리 K-콘텐츠의 장점과 단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전독시>가 가진 상징성이다. <전독시>는 웹소설에서 놀라운 성공을 기록했다. 인기도 그렇고, 기존 판타지의 다양한 떡밥에 한국의 공간과 역사를 적절히 버무리는 그 방대한 세계관과 분량은 당시 독자들의 감탄과 공감을 불러일으킨 작품이었다. 그 판권이 <신과 함께>의 제작팀으로 넘어갔다고 했을 때 웹소설 독자들은 저 방대한 세계관과 스토리를 어떻게 영화로 만들지 궁금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기대와 함께 그만큼의 불안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 기대는 웹툰에서 만족할 만큼은 아니더라도 화제성의 유지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이제 대망의 영화 개봉이 이루어졌고, 이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비롯한 콘텐츠 기획과 제작의 최근 몇 년간 가장 대표적인 경로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결과는, 가장 안전하다는 경로가 배신당한 것이다. 


'전지적 독자시점' 웹툰과 영화 포스터.
‘전지적 독자시점’ 웹툰과 영화 포스터.


두 번째는 이 결과가 최근 몇 년간 쌓인 불만 아닌 불만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영화와 웹툰 그리고 게임 관련 글을 쓰는 한 평론가를 만난 적이 있었다. 최근 <광장>을 보았다면서, 국회 앞 폭력배들의 난투극을 삭제한 건 웹툰과 한국 정치와 폭력에 관한 서사를 통째로 날린 것이라면서 분노에 가까운 아쉬움을 토로하였다. 


사실 영화와 웹툰은 전혀 다른 미디어이다. 그런데도 웹툰을 영화가 왜 좋아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면, 영화라는 시각매체의 스토리보드와의 같은 유사성, 검증된 대중성과 접근성 등을 답으로 듣게 된다. 과연 비슷한 매체일까? 


아니면 스토리와 기획의 빈곤, 침체의 돌파를 위한 대중과 시장으로의 손쉬운 합승을 위한 선택이었을까? 


'킹덤' 1편 영화 포스터.
‘킹덤’ 1편 영화 포스터.


문득 일본의 영화를 생각하게 된다. 


최근 만화 원작 영화인 <킹덤> 시리즈를 보았기 때문이다. 목과 어깨에 너무 힘을 준 전형적인 캐릭터가 역사의 전장을 누비는 게 취향은 아니지만,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이제는 배우로 돌아온 ‘나가사와 마사미’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2편, 3편 이어지면서 좀 부드러워질 줄 알았던 힘과 목은 더욱 딱딱해지고 차분히 보기 힘든 불편함마저 느껴졌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다. 그렇지만 예전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화면에 집중하게 만들었던 일본 영화들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에게 70~80년대의 일본영화는 영화의 새로움과 기괴함을 보여주던 신선한 엔터테인먼트였기 때문이다. 


할리우드를 감동시킨 초창기 명장의 시대는 아니더라도, <키즈리턴>, <간장선생>, <셀위댄스> 등으로 이어지는 블랙 코미디와 폭력의 서사들은 <모노노케히메>, <공각기동대> 등의 애니메이션처럼 충격과 은근하고도 엉뚱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간장선생' 포스터.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간장선생’ 포스터.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일본영화를 보지 않고 있었다. 물론 캐릭터와 배우들이 신나게 화면을 찢고 나오던 한국영화들이 줄을 서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일본영화만의 매력을 찾지 못했던 듯하다. 


지금도 영화채널이나 OTT에 방영되는 일본 작품들을 보면 <기생수>, <바람의 검신>, <데스노트>, <진격의 거인>과 같은 만화 원작의 영화들로 채워져 있다. 모두 내가 사랑했던 만화들이다. 만화 원작이라고 안 볼 이유는 없다. 오히려 ‘어떻게 구현되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몰입이 되지 않았다. 만화가 가진 고유의 분위기가 실종되고, 서사적인 맥락을 만들어가는 드라마가 삭제되니 과장된 만화 캐릭터와 사건만이 현실세계를 휘젓고 있었다. 나에게는 영화도 만화도 아니었다. 그 이질감과 유치함에 안타까워하던 마음과 함께 그 흥행과 평가의 결과가 그대로 한국 웹툰과 영화로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만화 '진격의 거인'.
만화 ‘진격의 거인’.


언론에서 연일 주장하는 한국 영화판에서 ‘오리지널 시나리오 발굴해야’하고, ‘영화 매체 특성 못 살렸’으며,  ‘오리지널 시나리오 발굴 위한 제도적·산업적 투자 병행해야’ 한다는  제안과 비판에 공감하는 이유이다. 


다만 그게 영화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이다. 영화와 드라마의 원천 콘텐츠 역할을 하는 ‘웹툰’과 웹툰을 몇 년간 먹여 살리는 웹소설 기반의 노블 코믹스가 유사한 고민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웹소설>웹툰>영화와 드라마 등으로 이어지는 K-콘텐츠의 글로벌 진출에 대한 찬사와 독려는 여전하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을 보면 K의 구조와 전성기는 한동안 계속될 것 같은 장밋빛 비래로 가득하다. 


“웹툰에 대한 관심은 쉽게 사그라 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는 최근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25억 원을 추가로 투자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이 중 상당수가 웹툰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될 것이다.” _ 미국, 포브스, ’23.9.14.

[로알드 말랑카이, 호주국립대학교 교수]

“수십만 명이 웹툰에 평점을 매긴다. 만약 충분히 인기가 있다면 해당 웹툰은 K-드라마로 제작 가능한지 테스트될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K-드라마는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_ 호주, The Australian Financial Review, ’23.3.31.

“영화나 드라마를 만드는 데는 많은 노력이 든다. 따라서, 투자 대비 수익(ROI) 관점에서 웹툰은 위험부담이 적은 방식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탐구할 수 있는 좋은 플랫폼이다.”

_ 미국, Puck, ’23.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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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독자들이 참여하고 커뮤니티 기반으로 이루어지며 다양한 이야기 형식, 시각적 스타일 및 스토리텔링 기술을 제공하는 것”

_ 인도, 삭시 포스트, ’23.5.20.


하지만 최근 산업 현장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넷플릭스의 성공이 한국 콘텐츠 산업계의 활성화를 뜻하는 게 아님을 이제 모두 알고 있다. 또 일본 기업과의 교류가 한국 웹툰의 글로벌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비록 한국적인 문화와 아이콘이 글로벌 소비가 된다하더라도 그 실질적인 제작과 최종 종착지가 한국의 사람들에게로 되어 있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걸 성공의 화려한 광고 이면에서 조용히 이야기 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IP이자 ‘오리지널리티’라는 게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새로운 창작과 대중적인 트랜드가 보여주는 기술적, 문화적 장벽과 속도에 대한 해답을 창작계와 산업계는 어쩌면 대중에게서 찾고 있다고 보여 진다. 그리고 웹소설과 웹툰으로 이어지는 생태계는 개인들의 집중과 투자가 모여 K-콘텐츠 성공의 산업적인 구조와 원천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러나 산업적인 욕구와 논리가 우선시되면서 웹툰은 양산형 시스템으로 바뀌었고, 웹소설은 마니아 중심의 복제산업으로 이동을 시작하고 있다. 이런 문화적 젠트리피케이션 상태에서는 웹툰이 가진 대중적인 검증 자체가 어려워진다. 웹툰의 인기가 대중적인 인기를 반영하지 못하는데, 산업은 제작과 유통을 그대로 유지되니 결국 실패의 빈도와 충격이 커지는 악순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한국 무역과 문화의 가장 어두운 시절인 하청공장화의 그림자가 시작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중견 웹툰작가와 기업 관계자들 사이에서 서서히 지분을 늘리고 있는 이유이다.  


웹소설에서 웹툰으로, 웹툰에서 영화와 드라마로 연결되는 이 구조적인 생태계의 또 하나의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그건 고질적인 장르적 편협성이다. 예전 만화 <프리스트>가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기대에 차서 기다렸던 적이 있다. 그리고 개봉을 했을 때 다른 작품인가 하면서 자료를 찾아봤던 기억도 생생하다. 도대체 그 판권을 왜 구입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전혀 다른 작품이 만들어졌다. 


‘만화’를 모르지만 자기 식대로 영화를 만들어도 된다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은 자기가 더 잘 알고 있다는 독선과 편협과 무지가 깊은 곳에 똬리를 틀면 그 결과는 비슷해질 것이다. 특히 한국은 협소했던 시장의 영향 때문인지 그런 장르적인 벽이 다른 곳보다 더욱 단단한 편이다. 


‘만화’를 보고 재미있다고 느꼈다고 만화에 대해 아는 것은 아니다. 각 장르와 미디어는 자신들의 독자와 관객층에게 소구하기 위한 고유의 서사와 표현방식을 비롯한 스킬과 노하우를 갖추고 있다. 디지털코믹의 새로운 형식인 웹툰의 미학을 구축하는데 우리가 10여 년의 시간을 필요로 했고, 아직도 일본이나 해외 국가들은 웹툰을 그려내거나 교육시킬 사람이 없다는 현실이 바로 그 독자성의 증거인 셈이다. 


결국 존중과 협업의 방식이 필요한 것이다. 


최근 베르나르 베르베르 <개미>의 웹툰화가 발표되었다. 유달리 한국에서 인기가 높은 프랑스 출신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이 웹툰으로 서비스된다는 건 무척 기대되는 일이다. 그렇지만 국내에도 놀라운 완성도와 인기를 자랑하는 작가들과 작품들이 적지 않다. 특히 SF의 젊은 작가들은 한국적인 감성과 독특하면서도 탄탄한 스토리로 문학계를 넘어 영화, 연극까지 진출하고 있다. 하지만 웹소설에서의 쉽고 빠르게 넘어오는 작품에 대한 관심과 다르게 그런 문학에 대한 관심과 행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웹툰 스튜디오는 많지 않다. 스토리가 없다고 한탄을 하면서도 말이다. 


'전독시'와 '좀비딸'의 흥행성적.
‘전독시’와 ‘좀비딸’의 흥행성적.


그렇다면 <전독시>의 실패와 <좀비딸>의 성공 사이에 미디어의 차이를 고유의 장르적 시선으로 고집하는데서 오는, 독자와 서사의 불일치에서 오는 문제라고 봐야 할 수도 있을 듯하다. 아니면 독자와 관객층의 일치와 장르별 접근방식의 차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제 유명 웹툰 원작이라고 모두 흥행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뻔한 결론은 확고히 인정된 듯하다. 필요한 건 답을 찾기 위한 움직임이다. <전독시>와 <좀비딸>의 흥행 비교는 웹툰 IP와 이후 산업적 전망에 기준이 될 수 있는 좋은 물음을 사회와 콘텐츠산업계에 던져준 것이다. 


문득 레드세븐 이현석 대표가 2024 한국만화웹툰평론가협회 ‘글로벌 웹툰 산업 세미나’에서 했던 당부가 생각난다. 


“한국의 웹툰은 웹툰 방식으로 일본 말을, 일본 시장을 이해하려고 하고, 반대로 일본에서는 자기들 방식의 만화 방식으로 한국 웹툰을 이해하려고 해요.” 


그리고 그 지역과 종목의 특징에 맞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면서 중간에 유능한 ‘인터프리터’가 필요하고 말했었다. 


단지 옮겨오는 것만으로 성공할 수 없고, 서로의 문화를 비교하고, 융합 또는 조화할 수 있는 중재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역뿐만 아니라 장르와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이 가능한 이야기이다. 존중과 협업을 위한 중재자가 과연 한국콘텐츠와 엔터산업에 존재하는가? 단지 경험해봤다는 명성과 주장만으로 거대한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요행을 바라는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중재자의 개입은 또한 오리지널리티의 확보라는 시선과 가능성을 만들어줄 것이다. 창작이 도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회가 되었을 때만이 제대로 된 다양성이 확보될 수 있고, 또한 중재를 통한 유통의 전문화로 그 실현의 가치를 보장받아야만 산업화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이를 본격적으로 그 방법과 내용을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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