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2 “개발 철학과 장르적 특성 정리할 때가 왔다”

그라인딩 기어 게임즈 ‘패스 오브 엑자일 2’ 0.3.0 패치 ‘세 번째 칙령’ 업데이트 이후 유저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이것저것 많이 바뀌는 것 같아 다시 게임을 찾았지만, 근본적인 문제점은 바뀌지 않은게 원인이다.

POE2 유저가 이렇게 볼맨소리를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게임의 지향점과 현실간의 괴리감이 심하기 때문이다. 쉽게 얘기하자면 전체적인 큰 틀은 POE1의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왔음에도 요구되는 게임 플레이는 완전히 상반되기 때문이다.

신규 시즌이 시작된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빠른 속도로 유저가 이탈하고 있다. 오픈 당시 35만 명까지 올랐던 스팀 최고 동시접속자 수는 벌써 12만 명이 빠진 23만이다. 시즌제 게임인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유저가 빠지는건 당연하지만 속도가 매우 빠르다.

게임의 재미는 주관적이고 재밌게 즐기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유저들이 현재 POE2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유저들은 왜 게임을 빠르게 접고 있을까. 그 이유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 정체성의 충돌 “핵슬이냐 소울이냐”

- 큰 틀은 핵앤슬래시지만 전투는 액션게임처럼 정교하게 진행된다 
– 큰 틀은 핵앤슬래시지만 전투는 액션게임처럼 정교하게 진행된다 

총괄 디렉터 조나단 로저스는 POE2를 핵앤슬래시가 아닌 ‘액션슬래시’ 게임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구르기(회피)를 추가하고, 공격 중 자유롭게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등 액션 게임의 요소를 다수 가져왔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POE1의 틀 즉, 핵앤슬래시는 어떤 게임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말그대로 ‘자르고 베는’ 장르다. 수많은 몬스터 무리에 뛰어들어 한 번에 터트리고, 아이템이 우수수 떨어지는 데에서 쾌감과 재미를 느낀다.

중요한 키워드는 ‘속도’다. 캐릭터가 강해지고 빌드가 완성돼 갈수록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맵을 휘저으며 게임을 즐기게 된다. 여기서 느껴지는 ‘시원함’이 핵앤슬래시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POE2로 돌아와 보자. 현재 POE2는 틀 자체는 POE1과 동일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으니 바로 ‘느리다’는 점이다. 의도적으로 느리게 만들었다. 이동기를 극도로 제한하고, 몬스터의 공격을 ‘대응’하게 만들고, 무적으로 인한 체류 시간도 길다.

- 몬스터의 공격을 '대응'하게 만들고, 무적으로 인한 체류 시간도 길다 
– 몬스터의 공격을 ‘대응’하게 만들고, 무적으로 인한 체류 시간도 길다 

빠른 템포와 다수의 적을 자르고 베야하는 시스템 안에서 소수의 몬스터를 상대로 신중하고 세밀한 공방을 주고 받게끔 만들었다. 이 같이 상충되는 시스템으로 게임에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액션이나 소울라이크 게임은 적의 위치나 패턴, 대미지 등 여러 요인을 신중하게 고려해 조정하고 배치한다. 하지만 POE2는 레어 및 매직 몬스터가 온 맵에 산발적으로 다수 등장한다. 세밀한 설계 아래 배치됐다기 보단 랜덤성이 강하다. 

이로 인해 맵핑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수많은 몹팩 속에 숨어있는 ‘대응’이 필요한 몬스터에게 사망하게 된다. 이는 곧 게임의 피로도를 증가시키고, 결과적으로 플레이의 불쾌감을 올리는 원인이 된다.

개발진이 지향하는 소울라이크식 전투는 몹팩이 적은 액트 단계, 혹은 보스전에서만 가능한 형태다. 결국 이런 패턴을 현실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우니 ‘데드아이’ 등 몹을 화력으로 삭제시키는 빌드가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는 형태가 됐다.

- 현재 데드아이 점유율이 상상이상으로 많은 상황이다 
– 현재 데드아이 점유율이 상상이상으로 많은 상황이다 

 

■ 본게임 시작 전부터 게임이 지친다

- 액트 4장은 정말 피곤함의 연속이다 
– 액트 4장은 정말 피곤함의 연속이다 

POE2는 이동속도가 느리다. 그에 비해 맵의 크기는 매우 방대하다. 앞서 소울류 게임의 전법을 지향하다 보니 이동기도 극도로 제한된 형태라고 지적한 바 있다. ‘구르기’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형국이다.

그러다 보니 시스템 충돌과 더불어 게임의 템포를 더욱 느리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액트 단계 문제와 연결돼 유저 피로도를 가중시킨다. 정말 유저를 진빠지게 만드는 구조가 현재 POE2 액트다.

액트는 매 시즌 동일하게 반복되는 구간이다. 처음에는 재밌을 수 있다. 고되고 힘들고 지루한 과정도 이겨낼 수 있다. 하지만 다음 시즌은? 그리고 그 다다음 시즌은 어떨까. 아마 새 시즌을 시작하기 전부터 액트 밀 생각에 한숨부터 나올 것이다.

- 이동속도는 매우 느린데 맵은 너무나도 넓다 
– 이동속도는 매우 느린데 맵은 너무나도 넓다 

하지만 이런 지루함을 이겨내서라도 유저들은 아틀라스로 간다. 게임의 콘텐츠가 있기 때문이다. ‘빌드를 완성해나가는 재미’, 즉 핵앤슬래시 장르의 근본적인 재미가 아틀라스에 집약돼 있다. 그리고 득템에서 느껴지는 도파민도 크다. 

이런 이유로 유저들은 액트를 빠르게 끝내고 엔드게임인 아틀라스로 진입하고 싶어한다. 액트 단계에서는 제대로 된 빌드업이 어려운데다가 제대로 된 아이템도 드롭될 확률도 극히 낮기 떄문에 도파민을 얻기도 어렵다. 

액트에서 얻는 아이템 99%가 아틀라스에 들어간 순간부터 의미 없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유저들은 액트 단계에 큰 보람과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전체 게임 플레이로 봤을 때 ‘찰나’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개발진 입장에서 액트도 소중한 콘텐츠일 것이다. 하지만 유저들이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게임을 즐기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유저들이 불평하는 이유를 파악하고 이를 게임에 반영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