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SV 시즌에 태어난 우리 아기, 예방주사 필수인가요?




벌써 가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한쪽에선 가을날씨를 즐기지만 소아과 의사는 행여 신생아실에 RSV 유행이라도 돌면 어쩌지, 가슴이 철렁한다.  아이를 가진 부모들도 혹시라도 아이가 본격적인 호흡기 감염병 유행 시즌에, 병이라도 걸릴까 봐 걱정이 커진다. 가을철 독감 예방주사는 이제 흔하디흔한 연중행사가 되었지만 올해부터는 아직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RSV(호흡기 세포융합 바이러스) 예방접종이 시작되었다. RSV는 흔하게 걸릴 수 있는 바이러스지만 영유아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감염병이라는 점에서, 예방할 수 있는 접종이 나와서 영유아 진료를 보는 필자 같은 소아과 의사에게도, 부모들에게도 감사한 일이다.


사실 RSV는 1세 미만 영아 3명 중 2명이 감염될 정도로 흔한 바이러스다. 초기에는 감기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지만, 증상이 악화할 경우 모세기관지염이나 폐렴 등 하기도 감염으로 진행될 수 있다. 이 경우 입원 치료가 필요할 수 있으며 실제로 RSV는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영유아 호흡기 감염의 가장 흔한 원인으로 꼽힌다. 더욱이 RSV에는 치료제가 없어 예방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됐다.


작년까지만 해도 RSV 예방을 위해 부모가 실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개인위생 관리뿐이었다. 손을 30초 이상 씻고, 식기를 소독하는 등의 방법으로 RSV 감염 위험을 줄일 수 있었지만, 전파력이 강한 RSV의 특성상 이러한 방법만으로 완벽히 차단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RSV 예방이 보다 적극적으로 가능해졌다. 첫 RSV 시즌을 맞은 모든 신생아 및 영아를 대상으로 접종할 수 있는 RSV 예방 항체 주사 베이포투스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베이포투스는 RSV에 대항할 수 있는 항체를 직접 체내에 주입해, 자녀의 몸속에 ‘바이러스 방어군’을 보내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주입된 항체는 최소 5개월 동안 체내에서 유지되어, RSV가 가장 유행하는 동안 영유아를 보호한다. 1회 투여만으로 한 시즌 전반에 걸쳐 RSV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베이포투스는 항체를 직접 투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다른 백신의 면역 반응을 방해하지 않아 정기 예방접종과 동시에 맞을 수 있다. RSV가 유행하고 있는 지금(10월~3월) 출생한 영아의 경우, 출생 직후 베이포투스를 접종받을 수 있고 올해 4~9월 출생한 영아도 시즌이 막 시작한 10월에 접종이 가능하다.  


이처럼 베이포투스는 RSV 시즌 중 출생한 영아라면 출생 직후 접종이 가능하기에  이 시기 태어난 신생아는 분만병원에서 베이포투스를 접종받는 것이 효과적인 RSV 예방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생후 6개월 미만의 영아는 중증 RSV 질환 및 사망 위험이 가장 높은 고위험군으로, 선제적 예방의 중요성이 크다. 또한 국내 대부분의 신생아가 출생 직후 산후조리원에 입소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베이포투스 접종 후 조리원에 입소할 경우 RSV 감염 위험을 줄이고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개별 영아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물론, 산후조리원 내 RSV 감염 관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몇 년 전 근처 산후조리원에서 생후 1달 미만 신생아들이 RSV에 집단 감염되어 필자의 외래에 아픈 아기들 10여명과 보호자 수십명이 한꺼번에 몰려온 적이 있었다. 7명은 검사 및 진찰 후 외래에서 치료 및 경과관찰 하였고, 나머지 세 명은 상태가 좋지 않아 대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로 진료의뢰서를 작성했다. 신생아 중환자실 입원이 여의치 않아 부모님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광경을 보고 여기저기 중환자실에 전화를 돌려 겨우 입원을 시켰던 아찔한 기억이 떠오른다. 넘쳐나는 외래진료에 감정이 메마른 소아과 의사 같지만 엄마가 울기 시작하면 필자도 가끔은 마음이 흔들린다.


해외에서는 베이포투스를 통한 RSV 입원 감소 효과가 이미 확인되고 있다. 특히 세계 최초로 베이포투스를 국가예방접종프로그램(NIP)에 도입한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의 자료에 따르면 베이포투스를 투여받은 6개월 미만 영아의 RSV 입원율은 미투여군 대비 82% 감소했다. 칠레에서도 접종 프로그램 시행 이후 RSV 관련 영유아 사망이 전년 동기간 13명에서 ‘0명’으로 줄어드는 성과를 보였다.


올해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베이포투스 도입 후 첫 RSV 시즌’이다. RSV는 오랫동안 많은 영유아와 보호자에게 부담이 되어온 바이러스였지만, 이제는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신생아가 태어난 직후부터 안전하게 첫 겨울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이번 RSV 시즌은 국내 영유아 건강관리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종종 1살이 훌쩍 넘은, 태어나서 두 번째 RSV 시즌을 맞는 건강한 아이들의 RSV 접종을 문의하는 보호자들이 있다. 선천심장병, 면역저하, 신경 근육질환 등 기저질환이 있는 고위험군인지 물어보고, 진찰 후 건강한 아이라면 필자는 보호자에게 이렇게 말씀드리는 편이다.


“어머님, 소고기 사드세요.”


어머니가 방긋 웃으며 진료실을 나서신다. 대신, 1살 이하 보호자들에겐 RSV 예방주사 전도사가 되어 베이포투스 안내 책자도 드리며 열심히 설명 중이다. 신생아실에서 조리원에서, 그리고 집에서 RSV 접종률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유행할 가능성도 줄어들 것으로 필자는 기대하고 있다.


“소중한 우리 아가야, 아프지 말아야지.”  


포미즈여성병원 소아청소년과 성현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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