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땐 누구나 막막합니다. 어느 병원, 어느 진료과를 찾아가야 하는지, 치료 기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어떤 치료법이 좋은지 등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아파서 병원에 갔을 뿐인데 이런저런 치료법을 소개하며 당장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주변 지인의 말을 들어도 결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알아두면 쓸모있는 의학 상식과 각 분야 전문 의료진의 진심어린 조언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Q. 고등학생 아들을 키우고 있는 50대 초반 워킹맘입니다. 올 봄에 온 가족이 독감에 심하게 걸려 크게 고생했습니다. 독감 백신은 매년 맞아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비용 부담이 커 잘 접종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아들도 중학생이 되면서 국가필수예방접종 대상에서 제외돼 고민하다가 이제 많이 컸다는 생각에 작년엔 그냥 넘겼고요. 코로나19때도 이렇게 아프지 않았는데 하루종일 기력이 없고 전신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통증이 심했습니다. 열도 39도까지 오르니 머리가 어지러워 침대에서 일어나 밥을 챙겨 먹는 것도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절기에는 가족 모두가 독감 백신을 접종하기로 하고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독감 백신은 4가가 아닌 3가로 바뀌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독감 백신은 4가여야 예방 효과가 더 좋다고 알고 있는데, 이렇게 바뀐 3가 백신을 맞아야 예방 효과는 크게 차이가 없는 건지 알고 싶습니다.
순천향대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유병욱 교수의 조언
독감(인플루엔자)는 매년 유행하는 바이러스가 바뀌는 감염병입니다. 그래서 매년 독감 백신을 접종합니다. 특히 ’24-25절기에는 이례적으로 독감이 크게 유행했습니다. 독감 환자 수도 2016년 이후 최대 규모였습니다. 늦은 봄까지 독감이 유행하면서 보건당국에서 독감 백신 무료접종 기간을 4월 말까지로 연장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아시는 상식이겠지만 독감 확산을 막으려면 손씻기, 기침 예절 같은 개인 위생 수칙을 지키면서 독감 백신 접종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국가에서도 생후 6개월부터 13세, 임신부, 65세 이상 고령층에게 독감백신을 국가필수예방접종(NIP)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뉴스를 통해서 아시는 것처럼 25-26절기 독감 백신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공식 권고에 따라 3가 독감 백신으로 전환됐습니다. 이런 변화의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WHO 감시 시스템에서 야마가타 B형 계통 바이러스가 4년째 전혀 검출되지 않아서 입니다. 백신 효과가 떨어져서가 아닌 현재 상황에 더 최적화된 백신을 만들기 위한 과학적 결정입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유럽의약품청(EMA), 한국 질병관리청 모두 3가 백신 전환을 공식 권고하고 있습니다.
본래 독감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는 매년 바뀝니다. 그래서 WHO는 다음 시즌에 유행할 바이러스를 예측해 후보 백신 바이러스를 권고합니다. 독감 바이러스는 크게 H1N1, H3N2 같은 아형을 가진 A형 바이러스와 빅토리아, 야마가타 계열의 B형 바이러스로 구분합니다. 이런 이유로 독감 백신도 지금까지 이들 4종류의 바이러스를 모두 포함한 4가 백신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B형 야마가타 독감 바이러스가 전세계적으로 사라진 상황에서 굳이 독감 백신에 이를 포함해야 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독감백신구성자문위원회 역시 B형 야마가타 계통 항원을 더 이상 백신에 포함시킬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4가가 당연하다고 생각되던 독감백신이 올해부터 3가로 바뀐 이유입니다. 코로나19 이후 독감 백신에 나타난 뉴노멀인 셈입니다.
독감 백신은 실제 유행하는 바이러스에 맞춰 최적화된 것으로 접종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3가 백신은 현재 활발히 유행하는 A형 2종과 B형 1종에 집중적으로 대응하도록 설계됐습니다. 유행하지 않는 균주 항원을 제외하고 꼭 필요한 항원만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3가 백신의 안전성과 예방 효과는 기존 4가 백신과 동일합니다. 3가 백신의 제조 공정과 품질 기준은 4가 백신을 기반으로 조정되었고, 임상 데이터를 통해 H1N1, H3N2 두 종의 A형과 B형 빅토리아 계통에 대한 예방 효과와 안전성이 이미 확인됐습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항원이 제거되면서 부작용 위험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올해 국내 독감 NIP 역시 3가 백신으로 이뤄집니다. 유료 접종도 마찬가지 입니다. 대부분의 제약회사에서 3가 백신으로 품목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3가 백신으로 통일될 예정입니다. 특히 이런 변화는 한국만의 독특한 상황은 아닙니다. 미국은 이미 우리보다 빠른 24-25절기부터 3가 백신 공급을 시작했습니다. 유럽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올해부터 3가 백신으로 전환할 예정입니다.
독감은 단순한 감기가 아닙니다. 고령자나 만성질환자, 임산부, 어린이는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최근 독감 환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예방접종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감 백신을 접종하는 것 그 자체입니다. 3가보다 4가가 더 낫다는 등의 비교는 소모적인 논쟁일뿐입니다. 무엇이든 그냥 맞으면 됩니다. 독감 예방 효과도 크게 차이가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독감 백신의 역할은 현재 유행하는 독감 바이러스를 막는 것입니다. 물론 오랫동안 4가 백신을 기본으로 생각하다 3가로 바뀌니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3가 백신은 WHO를 비롯해 전세계 보건 당국이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전환을 결정해 생산·공급하는 제품입니다. 관련 안전성 ·유효성도 확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감을 예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백신 접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정리=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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